림태주 님의 신작 에세이集입니다. 그런 분들 있잖아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고 읽게 되는 작가. 림태주 님이 저에겐 그런 분들 중 한 분입니다. 작가님은 <어머니의 편지>라는 장편詩로 알려지신 분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하셨지만, 시 보다 더 시 같은 산문을 주로 쓰십니다. 몇 해 전 강화도(작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숲 가까운 시골”)에 한옥을 구해, 직접 고쳐 살고 계십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수강생들을 간혹 모집해(경쟁률이 치열(?)합니다) 글쓰기 강의도 하시면서 꽃도 기르고 고양이들과 자연을 더불어 사시는 분입니다.
책은 지난달에 나왔습니다. [그리움의 문장들], [그토록 붉은 사랑], [관계의 물리학](이공계 도서 아닙니다 ㅎ),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에 이은 작가님의 다섯 번째 책. 숨, 색, 글, 별 4개의 大분류 아래 83편의 글과 편집자 분이 글과 어울리는 그림을 골라 실은 83개의 그림을 함께 배치한 구조입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것 만이, 오늘 사랑한 것만 사랑이다” 말하시네요. 어제의 사랑도 내일 할 사랑도 아닌, 현재 지금 하는 사랑만이 사랑이라고. ‘사랑한다’는 말은 ‘살아간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며 “’ 사랑한다’와 ‘살아간다’는 동의어”라는 문장은 책 전체에 서너 번 정도 반복해 등장합니다.
책 이름으로 정한 <오늘 사랑한 것> 보다 제 마음에 더 절실히 다가오는 건, 4部 ‘별’에 실린 <어른이란 무엇인가?>와 <어른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두 꼭지였습니다. 아마 제가 아직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경청할 줄 아는 사람, 어떤 삶이 옳은지 갈등하는 사람, 자신을 책임지고 외로움의 무게를 지게 될 때 진정 어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어른이 되어 줄 때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라는 말이 마음에 쑥 들어와 닿네요.
책에 수록되어 있진 않지만 작가님의 대표작인 <어머니의 편지>를 찾아 다시 읽어 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유품을 정리할 아들을 위해 유품 속에 넣어 둔 편지 형식으로 된 詩입니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수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는 구절에서 십여 년前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님을 그리워하게 되네요. 神께서 모든 곳에 위치할 수 없기에 대신 만든 게 어머니라는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주옥같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 직접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맛보기로 제가 밑줄 그었던 구절 몇 개만 옮겨 봅니다. 류시화 님 최근 시집에서 읽었던 “백 사람이 읽는 한 편의 시보다, 한 사람이 백 번 읽는 시를 써라”는 구절처럼, 이 책은 “뜯어먹듯이 읽는다”는 작가님 독서法을 차용해 여러 번 음미하며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인류가 直立을 선택한 이유가 ‘껴안기 위해서’라고 추정한다(25쪽)”
“똑똑한 머리 열 개가 따뜻한 가슴 하나를 못 이긴다(55쪽)”
“우리는 각자의 세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있다(75쪽)”
“나의 중심은 고집이 아니라 흔들림을 통해서 얻게 되고, 그 중심에는 너그러움과 넉넉함이 있다(105쪽)”
“미술 시간이 색채를 다루는 시간이라면, 감정을 다루는 시간이 인생이다(172쪽)”
“따지지 마! 손익계산은 장사에서나 하는 거지 사랑의 수확은 다르잖아. 주고도 다 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게 사랑이잖아(182쪽)”
“인간이 시를 쓴다는 말은 소리 없이 운다는 뜻이다(199쪽)”
“어른이 된 사랑은 있을 수 없고, 부단히 어른이 되어 가는 사랑이 있을 뿐(282쪽)”
“사람은 ‘나’에서, ‘보기 좋은 나’로 되어간다(286쪽)”
“느낌이 다르고 해석이 다를 뿐, 잘못된 삶이 있겠는가! 그래도 살아가야 하고,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다(336쪽)”
윤통의 45년 만의 계엄령 발동으로 긴 밤을 하얗게 지새운 날이 이어준 이틀 동안 읽은, 올해 86번째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