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었던 조선의 네 군주들
[혼군(昏君)]
副題 :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었던 조선의 네 군주들.
신병주, 21세기북스, 2025년 4월, 볼륨 235쪽.
각자 좋아하는 분야는 다르겠지만, 역사 분야는 대부분 좋아하는 듯합니다. 조선시대 27명의 王중 역사의 오명을 남긴 네 명의 왕(연산군, 광해군, 선조, 인조)의 비틀어진 권력 이야기를 풀어낸 책입니다.
신병주 님은 건국대 사학과 교수입니다. 조선시대 왕실 연구의 권위자이며 다양한 매체에 출연하여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분입니다.
昏君.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라는 의미입니다. 반대되는 말로 聖君이 있는데 세종대왕, 영조, 정조대왕 등이 있습니다.
혼군의 독보적 1等은 연산군입니다. 성종의 아들이자 조선 최초의 탄핵 군주입니다. 경연을 폐지(공부 안 하겠다는 이야기)하였고, 생모인 폐비 윤 씨가 사약을 받아 사사된 데 대해 복수심에 불타오른 인물입니다. 조선 4大 士禍(사림이 훈구파에 의해 禍를 입은 사건)중 최초인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와 관련된 왕입니다. 무오사화는 유자광이 중심이 되어, 성종 사후 사관 김일손의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이 발단이 된 사화입니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에둘러 비난했다는 게 죄목이라면 죄목. 장녹수, 채홍사라는 관리도 이 시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흥청망청’의 유래 역시 연산군입니다. 왕의 악행을 보다 못해 환관 김처선이 “고금의 군왕中 이토록 문란한 군왕은 없었소이다.” 한마디로 직격 했는데, 죽임을 당합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재위 12년을 마감하고, 강화 교통도로 유배된 지 두 달 만에 사망합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광해군입니다. 무능한 아버지 선조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세자에 책봉되어 분조를 잘 이끌었던 모습과 왕위 등극 후 ‘폐모살제’의 악행을 저질렀고, 경희궁과 창덕궁 건설 등 무리한 토목공사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린 장본인입니다. 비선 실세인 김개시(후궁이 아닌 상궁) 부분을 읽으며, “권력이 부패하면 언제나 비선실세가 등장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떠올리게 됩니다.
왕좌에서 축출된 뒤, 연산군과는 달리 18년 귀양생활을 하다 제주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합니다. 광해군에 대해서는 성군이냐? 혼군이냐? 를 두고 상반된 두 주장을 하는 책을 여러 해 전에 읽었는데요. 명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는 성군 쪽으로, 전주대 오항녕 교수는 혼군 쪽이란 주장을 펼치더군요. 전반기에는 탁월한 업적을 이룬 반면, 후반부에는 권좌에서 축출될 만큼 혼군으로 판단함이 맞지 않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3等은 선조입니다. 조선은 개국 후 약 200년 동안 특별한 외침이나 전쟁 없이 평화를 누려왔습니다. 선조代에 사림의 정계진출이 왕성해지고, 1575년 동서로 분당되어 당쟁이 시작됩니다. 1589년 정여립 역모사건이 발발하고, 이 사건의 수사책임자(위관,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특별검사)가 국문학사에서 그 유명한 송강 정철입니다. 서인의 우두머리인데요. 이 사건으로 남명 조식의 제자가 주축인 남영학파와 화담 서경덕의 제자가 주축인 화담학파의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일본열도의 戰國시대가 정리되면서, 1589년 조선통신사를 일본으로 보냅니다. 정사 황윤길(서인)과 부사 김성일(동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인물평과 보고가 정반대인데, “눈이 쥐새끼를 닮아 조선을 침략할 만한 위인이 못 된다”는 김성일의 의견을 편의상 취사선택하는 바람에 ‘7년 전쟁’을 겪게 됩니다. 백성을 버리고 자기 한 몸 살기 위해 명나라로의 피신을 도모했고, 전후에는 공신책봉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논공행상을 하지 않은 임금. 혼군으로 불려도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광해군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른 능양군 인조. 인조반정 이후 1년도 채 되지 못해 반정공신 책정에 불만을 품은 이괄에 의해(이괄의 난) 왕실은 공주로 피난을 떠났고, 정묘호란 때엔 강화도로, 병자호란 때엔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 ‘피난 3관왕’에 오른 자입니다. 삼배구고두례를 행한 삼전도의 굴욕 주인공입니다. 이후 청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가 8년간의 심양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건만, 두 달 만에 아들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는 왕입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선진 문물을 접해 온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랐다면 조선(우리나라)의 발전은 100년 정도 빨라졌고,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도 당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합니다. 역사는 반복되고요.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왕은 아니지만 혼군에 버금가는 지도자를 경험했기에 리더의 자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답니다. 미래를 위해 일독을 권합니다.
올해 50번째 책읽기.
#신병주 #연산군 #광해군 #선조 #인조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독후기록 #혼군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