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PD
[책을 덮고 삶을 쓰다]
정혜윤, 녹스, 2025년 10월, 볼륨 180쪽
정혜윤 님을 처음 알게 된 게 2023년 8월 이슬아 작가의 책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2019)]를 읽고부터입니다. 18편의 책에 대한 서평인데, 슬아 작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라 소개하더군요. 궁금증을 참지 못해 즉시 [아무튼, 메모(2020)]를 읽었습니다. 메모라는 주제로 책 한 권을 채웠는데, 메모의 중요성과 방법, 도구들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 예상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2차 대전 전범중 한국인 포로감시원 故 이학래 님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이 분께서 손에 꼭 쥐고 있던 메모지엔, 포로감시원으로 일하다 戰犯으로 기소되어 사형당한 23명의 이름과 고향, 사형집행 일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저도 사실 잘 알지 못했던 내용인데요. 일제는 약 3천 명의 조선 젊은이들을 태국, 자바,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전선 포로수용소 감시원으로 보냈더군요. 이중에 당시 17살이었던 이학래 님이 있었고, 종전 후 B급 전범으로 분류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포로대표였던 던롭 중령의 탄원 덕분에 20년형으로 감형된 분입니다. 싱가포르 창이교도소 수감 중 한국전쟁 발발로 미군이 한국전선에 투입되면서 일본으로 이감되었고, 1956년 석방되어, 2021년 3월 96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최고령 조선인 전범입니다. 살아생전 일본, 한국 어디로부터 인정받거나 보상받지 못하고, 전쟁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신분으로 평생을 산 분인데, 이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 읽어보니 솔직히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정혜윤 님은 이를 바탕으로 <조선인 전범 75년 동안의 고독>이란 작품을 만들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정혜윤 님은 CBS 라디오 PD입니다. 세월호 참사,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삶, 앞에서 언급한 조선인 전범 등 각종 다큐멘터리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다수 제작한 의식 있는 분입니다. 소설도 썼고, 에세이스트 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제가 가입해 활동 중인 某 밴드 신년 맞이 이벤트에 당첨되어(1/36의 확률) 리더로부터 선물 받은 책입니다. 책을 보내준 리더님이 “좋은 책입니다” 한마디 보태 주시더군요. 마음은 기쁜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제대로 읽어 독후기록을 남겨야 함에 대해 부담 백 배 ㅠㅠ
총 일곱 편의 글이 실려있습니다. 작가가 읽었던 책으로부터 파생된 생각의 조각들이 주를 이룹니다. 야마오 산세이 [시지포스], 존 버거 [초상들 : 존 버거의 예술가론], 허먼 멜빌의 [모비딕], 제프 다이어의 [그러나 아름다운], 버지이나 울프 [등대로] 등 많은 책이 나옵니다.(저는 대부분 읽어보지 못한 책입니다)
시지포스 신화를 재해석한 일본 시인의 詩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네 번째 글인 <슬픔, 아름다운, 운명>에선 2024년 12월 29일 일어난 제주항공 무안공항참사로 이어집니다. 제게도 친구 배우자가 하늘나라로 간 사고였는데요. 이곳에 세월호 유족분들이 자원봉사를 나옵니다. 이 분들은 이태원 참사현장, 고공농성장, 산불 현장 등 거의 모든 재난 현장에 나타나는데요. 소중한 사람을 먼저 잃어 본 사람으로서 타인의 슬픔을 다독여 주기 위한 모습이 감동스럽습니다. 왜 가느냐는 질문에 “곁에 있어 주고 싶어서”라는 말보다 더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요?
다섯 번째 글 <내 인생 이야기하는 법>에 나온 세월호 축구단 사연도 인상적입니다. “누구도 슬픔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128쪽).” 그들에게 축구는 자신처럼 혼자일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 사람이 혼자서 슬퍼할까 봐 사랑을 전하는 방법입니다.
작가는 스스로를 ‘책과 자연을 사랑하는 라디오 피디’로 소개합니다. 책, 자연, 라디오 피디, 이 세 단어의 공통점으로 “두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사라지게 만드는 순간을 만나게 한다”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무아지경이 되는 순간을 너무나 좋아한다고.
문장들이 따스합니다. 여성 특유의 감성이 가득합니다. 작가는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110쪽)로 규정하면서, ‘본인에게 글쓰기는 되돌려주기의 글쓰기’(174쪽)라 말합니다. 書名 [책을 덮고 삶을 쓰다]는 책을 통해 느낀 내용을 삶에 직접 행한다는 의미이지 않을까요? 굳이 한자어로 정리한다면 知行合一.
“읽기는 우리 인류의 특별한 존재 방식이다. 우리가 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날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어떤 일인가를 겪을 것이다. 어떤 일을 겪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고 삶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 인간은 크고 작은 상처투성이고 살기 위해 계속 힘을 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책은 바로 이럴 때 필요하고 이런 마음에 스며든다. 우리는 읽는다. 외롭고 괴롭기에. 우리는 읽는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희망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길을 찾길 원하므로. 읽기는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아름다움이 있는 채로 살아낼 수 있다. 독자인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책 너머, 쓰인 책 너머, 아직 읽히지 않은, 쓰이지 않은 우리의 삶이 있다(179~180쪽).”
“독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책을, 마르고 닳도록 읽은 책을, 늘 곁에 두는 책을 닮아간다(177쪽).”
올해 4번째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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