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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딛고 일어나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실패를 딛고 스스로 일어나는 용기와 힘

by 레마일

남산을 오르다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현저히 줄었다. 또한, 남산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안 가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이젠 습관이 되어서인가 자연스레 남산으로 묵묵히 올라가니 고통을 참으면서 오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나 날씨에 상관없이 이젠 남산을 찾고, 오히려 힘든 순간을 맞이할 때면 어김없이 남산을 찾는다.

나이에 비해 참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학업을 시작으로 한 분야의 경력, 숱한 도전들, 내 건강, 그리고 사랑까지. 다양한 삶 속에서 나는 실패를 경험했다. 20대 초반에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한 정신력을 군복무를 통해 얻은 후 실패가 두렵지 않았고, 건방지게도 세상이 무섭지 않았다. 이런 나의 오만한 판단이 잘 못 됐다는 것을 군 제대 후 5년을 넘지 못하고 처절하게 실패를 몸소 깨우쳤다. 그 이후, 실패를 마주하는 순간은 늘 괴로웠고, 다시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실패를 마주하는 나의 자세

어린 시절 내가 넘어질 때면 가족 혹은 친구들이 내 옆을 지켜주고 일으켜 세워준 적이 많다. 뿐만, 아니라 과제를 하거나 놀이를 할 때에도 나 스스로 일어나는 것보단 타인에게 잘 의지하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어려운 순간에는 누군가 나를 일으켜 세워줄 거란 막연한 생각에 잠겨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성인이 되어 한동안은 넘어졌음에도 스스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으면 나를 도와주리라 믿었기에 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패를 마주할 때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어느 순간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아예 실패를 할 것 같은 상황에 온갖 핑계를 만들어 피하기 바빴다. 심지어 경력을 버리면서까지 새로운 길을 택하면서 실패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실패는 언제나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오며 누구에게 온다. 준비가 안 돼서 실패가 오는 것도 아니고, 운이 안 좋아서 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금 딛고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숱한 실패 속에서 알게 되었다.


남산을 오르며 소소한 실패 속에서 다시금 도전하다 보니 이젠 실패 혹은 넘어짐에 익숙해졌다. 정확하게 넘어졌을 때 훌훌 털고 다시 나 스스로 일어나서 나아가는 것이 전보다는 덜 힘들다. 남산 오르기는 내 인생에 작은 도전과 그 안에 소소한 실패로 볼 수 있었지만, 어딘가 넘어졌을 때 혼자 짚고 일어나는 법을 배우기에는 충분한 무대가 될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이 천천히 계단을 오르다보면 어느덧 정상에 도달한다.

딛고 일어나는 용기

태어난 아이가 걷기 위해서는 2,000번 이상의 걷는 시도를 통해 걸음을 배운다고 한다. 지난 1년 8개월간 주 2~3회 남산 도전을 통해 꾸준히 오르며 오르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실패할 때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금 남산으로 향하기를 숱하게 시도하고 반복했다. 남산은 나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임과 동시에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마지막 도전같이 느껴져서 그런지 신기하게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다양한 분야에 도전과 실패를 맛봤고, 실패가 두려워 포기와 회피에 익숙한 지 10년이 흘렀다. 강산도 변하는 10년 동안 나는 포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더디게 나아가더라도 꾸준하게 오르며 극복하고 싶었고, 다시금 도전에 자신감 넘치는 나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 그렇다고 원대한 목표를 잡고 실행하는 것이 아닌, 포기만 하지 않고 무조건 올라보자라고 마음만 먹었다. 관절이 안 좋아 오르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긴 적도 있었고, 속이 좋지 않아 계단을 오르다 그냥 내려온 적도 있었다. 오전에 가겠다고 새벽부터 집을 나서고 정작 일몰이 다 되어 다시 남산으로 향한 적도 있었다. 그저 실패를 받아들이고 누구의 도움 없이 다시 내일의 도전을 위해 준비하고 마음을 먹는 거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시 도전하는 용기와 시도가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남산을 가지 않겠다고 포기했던 날보다 남산을 향하는 날이 많아지고, 이젠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남산으로 향한다. 고민이 있으면 어김없이 남산을 오르면서 고민과 생각에 빠진다. 그렇게 남산을 시작한 이전과 이후의 나의 생활은 조금 달라질 수 있었다. 실패가 두려워 쉽게 포기를 했던 나였다면, 이젠 시도하지 않은 내가 후회스러울 거 같아 밀려있던 도전을 정리하고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평생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정말 소소하지만 실행으로 옮겨보기도 했다. 그렇게 용기를 조금씩 내기 시작했다.


혼자 넘어지고 서른 후반이 되어서 혼자 일어나는 법을 배운 듯하다. 남들보다 늦게나마 배웠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제는 머무는 것이 아닌, 인생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마치 내가 내 신발끈에 넘어졌던 것처럼 이젠 스스로 신발끈의 매듭을 짓고, 내 힘을 이용해 일어나 다시 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적어도 혼자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에 성공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패, 다양한 시도,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 다시 달리는 집념이 모여 시간이 흘러야 내가 원하는 목표 혹은 성공에 도달할 수 있는 나침반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내가 겪는 이 넘어짐을 어떻게 넘기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오늘도 스스로 딛고 일어나 남산을 오르며 다짐한다.


나는 딛고 일어나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숱한 시도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딛고 일어난다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새로운 기회를 잡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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