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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직하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금의 순간 즐기기

by 레마일

독감의 유행을 한참 지나 소멸되고 있는 시기인데 난 A형 독감을 통해 38.5도의 고열과 몸살로 처방받은 약과 수액을 맞으며 일주일간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지독한 독감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수액을 맞고 나서도 한동안 시름시름 앓았고, 정신을 차리니 내 인생에 일주일은 삭제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준비한 일과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실 몸 상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체념하고 회복하는데 집중했다. 약을 먹고 누워있을 때마다 지난날 오르내렸던 남산 사진들을 보니 그저 그립기만 했다. 그렇게 열흘 만에 오른 남산은 유독 기억 속에 오래 간직될 것만 같았다.

고민거리의 연속인 현재

유독 장례식이 많았던 2024년은 참 힘든 한 해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하루하루 소중하게 잘 간직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했음에도 그저 바쁜 하루를 끝내느라 급급했다. 아파서 누워있는 순간이 오니 이제야 소중한 순간을 잘 간직했는지 늦게나마 확인하게 되었다. 정신없이 흘러간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일을 생각하고 준비하다 보니 어느덧 올해 1분기가 끝나고 2분기 중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간직하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기록하기 위해 남긴 올해의 남산 인증 사진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바쁜 와중에 오르는 남산이라 그런지 그 순간을 간직하기보단 기록만 하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성격도 한 몫하는 듯하다. 늘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미래의 두려움과 현재의 행동을 통한 결과에 집중하다 보니 현재는 늘 고민거리만 가득했다. 또한, 극한의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기 싫어서 오랜 기간 준비한 업계를 떠났는데, 여기서도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는 걸 보면 심사숙고한 나의 결정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인생은 되감지 못하는 영화 필름과 같다고 하던데, 매 순간이 하나의 명장면인데 그저 필름만 낭비하는 건 아닌지 싶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즐기면서 추억 속에 잘 간직하는 것도 인생을 잘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Carpe diem. 라틴어로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간직하는 방법

출장도 취소되고, 해야 하는 월말 마감 업무도 하지 못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에 자포자기하며 이젠 매 순간을 잘 간직하면서 즐기는 건 어떨까 문득 생각에 잠겼다. 독감에서 어느 정도 회복하고 오랜만에 오른 남산은 유독 다르게 느껴졌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내가 되돌릴 수 없는 선이라면, 그 순간 최선을 다하는 걸 떠나, 조금은 웃고 즐기면서 그 상황을 나아가보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마음가짐의 변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독 오늘 인증 사진은 배경이 너무나 밝게 느껴진다.


남산을 오른 지 어느덧 220회가 넘어가는 시점, 현재를 시작으로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이제 잘 간직해보려 한다. 지난날 경험했던 다양한 순간 속에서 좋은 추억을 잘 간직하며 남산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나의 순간을 마음에 잘 담아본다. 가까이서보는 비극도 거리와 시차를 두고 보면 희극으로 보인다고 한다. 피하지 못하면 즐긴다는 얘기처럼 주어진 순간 속에서 좋은 기억을 간직하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현재를 잘 나아갈 수 있게 용기를 주리라 믿는다. 이젠 피하지 않는다. 실패가 두렵고 계획과 벗어날까 봐 걱정했으나 지금 순간을 잘 간직하고 즐기면서 당당하게 발을 내딛는다.



나는 간직하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매 순간을 간직하다 보면 감사는 늘고 후회는 줄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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