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맞이하는 끝
추운 겨울이 지나고 변덕스러운 4월의 눈과 추위를 지나 드디어 봄이 왔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색이 들어서고 새싹이 나기 시작하면서 길었던 겨울은 끝을 맞이하였다. 그렇게 하나의 계절이 끝나고 새로운 계절은 시작했다.
남산을 오른 후 나만의 의식이 되어버린 남산타워 인증샷은 운동의 끝을 알리는 나만의 알림이다. 그렇게 오늘도 남산을 등반했다는 사실과 꾸준히 하겠다는 재작년 나의 다짐의 변화가 없다는 것을 몸소 깨우치며 집으로 향한다. 운동이 끝난 후 보통은 집으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출근을 할 때도 있고, 친구와 번개 모임을 가질 때도 있다. 날씨가 너무 좋거나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국립극장까지 걸으며 그날의 하루를 마음속으로 마무리한다. 과거 모든 일을 잘 시작하지만 마무리를 못하던 나의 삶에도 작은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시작과 끝을 배우기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의 정 반대되는 삶을 살았다. 늘 시작은 창대하지만, 끝은 불분명하게 이도 저도 아닌 일들의 연속이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맺고 끊음의 경계도 없었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살며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늘 어려웠다. 변화의 시작은 고등학교 영어 시간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고, 항해 생활을 하면서 끝을 알게 되었고, 꾸준하게 오른 남산을 통해 끝을 배우고 시작을 깨닫기 시작했다.
유독 영어로 질문을 하고 답을 할 때면, Yes or No로 정의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Maybe,는 통하지 않는 언어이며 문화였다. 얼마나 좋건 싫건 간에 한쪽을 정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 이 후로는 최대한 애매한 대답은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20대에는 배를 타면서 맺고 끊음과 함께 시작과 끝을 정확하게 배울 수 있었다. 육지가 아닌 해상에서 생활하다 보니 시작과 끝은 명확했다. 출항과 입항을 통해 시작이 있다면 그 끝은 입항이라는 사실이 힘든 순간도 그저 덤덤하게 넘기는 경우를 제공하기도 했다. 지금도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고, 그 일을 해야만 한다면 새로운 출항이 시작되었다고 마음먹음과 동시에 이 일의 종료지점을 향해 묵묵하게 나아간다. 오히려 감정은 고요한 바다처럼 요동치지 않는 바다가 되고 입항하는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나아간다.
나이가 들수록 예기치 못한 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안타깝게도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들이 더 많아지는 듯하다.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 생각지도 못한 진급 누락과 사직, 그리고 지인 혹은 나의 건강 또는 마음의 상처처럼 생각지도 못하는 일은 언제나 깜짝 손님으로 위장하여 나를 찾아온다. 변수를 싫어하는 나의 인생에 있어 가장 취약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늘 계획하고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에서 사는 것을 선호하는 나로선 나이가 들수록 삶이 더욱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끝이 났어도 미련과 후회에 갇혀 사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기도 했다.
여섯 번의 계절 변화를 남산에서 맞이하며 걷다 보니 시작과 끝이 항해 생활을 하던 때보다 익숙해졌다. 계절처럼 내가 막을 수 없는 일은 대부분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시작을 막을 수 없다면 어찌 되던 앞으로 나아가야 끝을 볼 수 있다. 끝을 맞이해야 상황이 바뀌거나 바꿀 수 있다. 끝을 냄으로써 때론 재시작하여 내가 원하는 결과를 향해 다시금 도전할 수 있다.
미비하거나 어설프게 시작했던 일들은 모두 끝을 보았다. 또한, 두렵고 아플 걸 알면서도 미래를 위해 더욱 냉정함을 유지하여 끝맺음을 만들기도 했다. 한동안은 끝을 낸 나 자신이 싫었고, 실패한 건 아닌지 하는 사실에 후회에 사로잡혀 살기도 했다. 하지만, 미련과 후회를 한다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끝을 맞이하였고 새로 시작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젠 현명해 보인다.
얼어붙어있기만 하던 겨울이 지나가고 벚꽃의 계절인 봄이 왔다. 내 인생에도 봄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직도 겨울에 있고 겨울의 끝을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끝이 있다는 걸 이제는 몸소 깨우쳤고, 나만의 봄이 시작되는 순간을 희망하며 그저 묵묵히 오늘도 나아가야 할 뿐이다.
나는 끝을 배우려 남산을 오른다. 끝을 이해함으로써 자유롭게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