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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해지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솔직해진 나인 나로 살기

by 레마일

초미세먼지가 아주 나쁨을 가리키는 4월, 마스크를 끼고 계단을 오르면서 보는 남산은 먼지 때문에 흐릿하게만 보인다. 인증 사진을 찍어도 뿌연 먼지 덕에 꼭 필름 카메라로 찍은 듯 한 오래됨이 묻어난다. 마치 남산을 오른 지 수 십 년이 흐른듯한 묘한 감정이 올라온다. 문득, 내 마음도 세월이 지나면서 뿌옇게 흐려져서 그런지 이젠 솔직한 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아진다.

솔직하지 못한 감정과 증명하기 바쁜 나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면 가장 먼저 소식을 듣고 앞장선 지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 간다. 그저 벌어진 일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면,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내 모든 감정을 숨긴다. 또한, 다양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공과 사의 경계를 명확하게 경험할 수 있었고, 철저히 구분 지기 위해 실제 내 감정을 숨겼다. 감정의 동요가 없으니 겉으로는 공감을 잘하지 않았고, 모든 일에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감정에 있어 솔직하게 못하게 십 수년을 지내보니 표현이 서툴어지게 되었고 어색하기만 했다. 이젠 솔직하게 내가 어떤 감정인지도 모호하다. 조금 더 나아가면,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선호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감정을 숨기는 동시에 늘 나는 증명하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을 과장되게 이야기하거나 포장하기 바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는 길을 선택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증명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조금이라도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실패를 맞이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다른 길은 곧 매 순간 내 길이 맞다고 증명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성공해야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포장은 과해지고, 거품이 생기면서 때론 가식적인 내가 되어갔다.

뿌연 날씨 속 도시는 꼭 솔직하지 못한 내 마음과 같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때로는 과감히 내려놓기도 하며 나 자신을 되찾기 위해 오르던 남산 속에서 솔직해지는 연습을 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감정을 포함하여 남산을 오를 때만큼이라도 나 자신에게 더욱 솔직해지려 했다. 감정을 감추고 사는 것만인 삶의 능사는 아니라는 걸 남산에 내려놓으면서 자연스레 마음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연히 친구와 이야기 중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라는 책 내용을 공유하게 되었다. 세상에 비친 것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인데, 난 너무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처음 시작은 창대했고, 자유로웠다. 시가이 지나고 시행착오 속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주변의 우려 섞인 목소리를 수년간 듣다 보니 눈치를 보게 되었다. 어떠한 일에 진행 상황 속에서도 늘 나 혼자 예상한 결과를 이야기하며 증명하려 했다.


솔직하지 못한 내가 지친 와중, 남산은 나에게 잠시 쉬어가는 고속도로의 휴게소가 되었다. 짊어진 근심을 내려놓기도 하고, 고민과 결정을 솔직한 마음속에서 곱씹기도 하며, 내가 선택한 길을 되짚으며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지난 20개월간 남산을 오르다 보니, 이젠 나 자신을 남에게 증명하기 위해 포장하지도 과장되게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증명하지 않음으로써 몇몇 사람에겐 이미 실패자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지만, 이젠 상관하지 않는다. 아직 내가 가고 싶은 길 위에 걷고 있으며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도 성공도 아닐 뿐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돼 보니 나와 같이 일반적이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내 꿈을 위해서 진심으로 난 솔직해지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포장없는 솔직함으로 더이상 증명하지 않고 그대로 받는다.

감정도 더 이상 너무 숨기지는 않는다. 사회에서는 아직도 공과 사의 경계로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가족과 친한 친구같이 내 사람들에게는 이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니 오히려 서로의 관계가 돈독해진 듯하다.


나는 솔직해지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솔직해진 감정을 통해 나는 나로서 자신 있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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