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기록하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기록을 통한 나의 기억

by 레마일

남산을 오르던 초창기에는 힘들게 오른 후 깜빡하고 인증 사진을 남기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별거 아닌 걸로 집으로 향하는 날도 있었지만, 힘들게 오른 나의 노력을 남기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다시 올라 인증샷을 남기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찍은 남산이 담긴 사진은 일반적으로 찍는 남산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반복적으로 찍은 사진이 모이며 하나의 추억이 됨과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는 사진 다이어리가 되었다. 새싹이 나고, 매미가 울며, 단풍이 지면서, 보슬보슬 내리는 눈의 계절을 담기도 하며, 떠오르고 지는 태양을 보며 마음을 다지기도 한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 나의 습관은 어느덧 기록을 넘어 추억을 선사하기도 하며 기록 속에 뜻하지 않는 해답을 찾기도 한다.

기록의 시작

성인이 되고 군복무를 거쳐 숱한 알바와 다양한 직업을 거치다 보니 한 손에는 늘 핸드폰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펜과 수첩을 들고 다녔다. 물론, 이제는 핸드폰 앱을 활용하여 수첩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지만, 아직까지도 수첩에 해야 할 일이나 까먹지 않기 위해 적는 습관이 편하다. 태생적으로는 늘 덤벙되고 실수가 많은 나이기에 기록의 필요성을 다른 사람보다 크긴 했다. 꼼꼼하지 않다는 말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들었던 나였지만, 타의적으로 이른 나이에 일을 하면서 꼼꼼하지 않은 결과와 대가가 얼마나 처참하고 감당할 수 없는 지를 사회 초창기에 많이 깨우칠 수 있었다. 한 단어의 오역으로 의미가 달라져 서로가 곤란해지고, 한 순간의 주문 수량 또는 품목을 잘 못 기입함으로써 수십 배에 달하는 시간을 투자하여 해결하기도 했다. 셀 수 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기록은 나에게 필연적인 존재가 되었고, 이제는 인생의 동반자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젠 업무적인 거 외에도 인생에서 해야만 하는 일들을 적기도 하고, 좋은 글 주제나 문장을 적어두며 다양한 순간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오늘도 새로운 수첩을 구매하고 오래 사용한 수첩은 작은 상자에 다시 넣어둔다.


기록의 중요성

단순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중요한 부분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적기 시작한 나의 행동은 본래의 성향을 많이 보완해 주며 이제는 전보다 꼼꼼해진 사람이 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기록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숨은 의미를 깨달았다.

얼마 전 깨달은 사실이지만, 어떤 일이던 적어둔 일은 적지 않은 때보다 책임감을 더 가지고 일을 하고 있었다. 쓰여 있는 일을 꼭 이루겠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해야 하기 때문에 적었다는 사실에 묵묵히 실행에 옮기는 경우도 많았다. 이제는 업무를 뛰어넘어 내가 말로만 했던 나만의 꿈이나 내가 그린 미래도 적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전보다는 시도하는 기회가 더 많이 지리라 믿고 오늘도 이루고 싶은 목표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기록을 하다 보면 문자보다는 숫자와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모든 걸 숫자로 최대한 적으면서 지난날 내가 일한 업무를 수치화하였고, 숫자를 보면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단순히 몇 건의 현장을 담당했다고 표현하기보단, 얼마의 계약 속에서 몇 개의 제품을 판매했는지를 알다 보니 정확하게 내가 얼마만큼의 일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관리해야 했던 부품의 재구매나 문제사항을 적었던 기록을 보면서 반복적인 부분을 찾으며 해당 부분에 대한 주기를 찾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를 잡기도 했다. 적는 그 순간에는 귀찮을 수도 있고, 까먹지 않을 거란 나의 확신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적어도 10초 이내에 이루어지는 작은 습관이 10일을 아끼게 해주는 기적을 선사하기도 한다.

기록을 되돌아 보며 늘 마음을 다잡는다.

기록을 통한 돌아보기

인증을 남긴 시간을 돌려볼 때면, 수많은 감정 속에서 남산을 오르던 나의 모습을 회상한다. 기분이 좋기도 하며, 결의에 찬 모습에 당당하게 오를 때가 있다면, 힘에 겨워 어찌어찌 오른 날까지. 내가 남긴 인증 도장을 보며 지난날을 돌아볼 때면,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의 길잡이까진 아니더라도 어디로 가야 할지 정도의 방향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200회 300회 오르면서 자신감을 더 얻음과 동시에 건강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오늘도 인증샷을 남기면서 나는 이 순간을 기록하며 기억한다. 아직 멈추지 않고 잘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모하게 시작한 도전이 그래도 나의 인생의 선순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나는 기록하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기록하며 기억한 남산과의 모든 추억은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의 작은 해답의 열쇠를 선물해 준다.

keyword
이전 23화나는 깨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