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번 남산을 오르며...
2025년 3월 31일 월요일, 나는 남산을 오르겠다고 다짐한 날로부터 575일 만에 총 200번 남산을 올랐다. 3일에 한 번 남산을 오른 지난 1년 7개월간 내 삶의 작은 변화가 있었고, 이제는 그저 덤덤하게 남산을 향하게 되었다. 꾸준히 남산을 오르겠다는 다짐을 시작으로, 남들이 오르지 않는 순간을 즐기고, 다양하게 오르면서 깨달음과 내 감정을 지난날 글로써 남기니 요동치던 나의 인생이 조금은 잔잔해진 듯하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때로는 잊기 위해, 멀리 보며 희망을 주고 싶기도 했고, 돌아보며 강해지기 위해 남산으로 향하기도 했다.
불꽃같이 뜨겁게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무언가를 끈기 있게 해 본 적이 없었고, 항상 초창기에는 의욕이 넘치나 단시간에 급격하게 식기도 했다. 급한 성격까지 더불어 쉽게 포기하고 자기 합리화를 위한 명분을 찾은 후 새로운 도전을 숱하게 모색했다. 다양한 경험과 경력으로 넓은 이해력을 가질 수 있었지만,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가질 수 없었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장점과 단점이 늘 존재하기에 후회는 따른다. 후회하기 시작하니 미련이 남았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채 현재에 정체되어 있는 삶을 살았다. 방향타가 부서진 채 항해를 하니 방황하고 있는 난파선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남산 또한 흐지부지 되며 소멸되는 과정 속에서 유독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이 2024년에는 많았다. 힘든 상황 속에서 잠시나마 잊기 위해 도전을 이어나갔다. 또한, 사랑했던 사람의 수년간 외침에도 바뀌지 않는 내가 싫어 더욱 나 자신을 몰아붙이기도 하면서 지속적인 도전을 이어나갔다.
남산을 오른 200번의 성공을 위해 난 375번 실패를 맛봤다. 숙취로 인해, 몸살로 인해, 때론 바쁜 근무로 핑계를 대며 남산을 포기하는 날도 많았지만, 아예 내려놓지는 않았다. 본래의 나라면 여러 번의 실패를 맛본 후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른 목표로 환승을 했겠지만, 남산 앞에서는 실패와 성공을 떠나 그저 묵묵하게 오르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이 흐르니 실패와 재도전에 익숙해짐과 동시에 포기와는 점점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무언가를 장기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덤덤하게 받아들이기
생활이 엄청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체중변화도 근육 변화도 크지 않았다. 안 좋은 습관을 다 떨쳐 버리지도 못했다. 다만, 묵묵하게 남산을 오르면서 인생의 템포가 조금은 늦춰진 듯하다. 모든 일에 조급하기도 했고, 조급함 속에서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남산을 오르기 위해 맛본 실패와 오른 후 잠시 쉬면서 바라본 풍경을 보며 인생에 많은 부분에 조금은 너그러워진 듯하다. 칼 같던 결단력과 냉정함도 조금은 따듯해지며 무뎌졌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그 누구보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던 나였지만, 이제는 조금 덤덤하게 상황을 맞이한다. 덤덤해지니 이해하려는 시간이 많아지고, 감정의 기복도 더욱 잠잠해지는 선순환을 맞이했다. 그렇게 201번째 남산을 오르기 위해 오늘도 준비한다.
숯불 같은 삶
불꽃같이 번쩍이고 화려한 것만 추구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오랜 시간 뜨거움을 유지하는 숯불같이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도전해보려 한다. 2023년 9월 3일 일요일을 시작으로 10번만이라도 남산을 꾸준히 오르고 싶었던 나에서 이제는 1,000회를 목표로 천천히 나를 다스리며 도전을 해보고 싶다. 100회, 200회를 오르면서 짧게 반짝이던 불꽃에서 이젠 어떠한 상황에서도 꺼지지 않는 숯불로 변화하며 도전을 이어나가고 싶다. 지난날 말로만 삼았던 목표도 아직은 미미하지만, 이제는 실행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젠 일회성으로 끝나는 무언가를 추구하기보단, 일관성 있게 오랜 기간 지날수록 가치를 더욱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덤덤하게 남산을 오른다. 불꽃같던 나의 삶은 남산을 통해 어느덧 숯불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