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9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포기하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내려놓는 용기를 통한 전환의 기회

by 레마일 Mar 19. 2025

아무리 궂은 날씨여도 피곤한 상태여도 남산을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저 오르겠다는 강한 신념은 어느 것도 막을 수 없었다. 극한을 이겨내는 정신력의 박수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너무나 무모하며 효율적이지 못한 나의 행동에 우려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롤모델로 존경하기 시작한 현대 고 정주영 명예회장님의 자서전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군 훈련소에서 불가능은 없다는 극한의 훈련 때문인지는 몰라도 포기라는 걸 모르고 살아왔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 덕에 좋은 기회도 얻으면서 얻을 수 없는 행운도 잡았지만, 그 이면에는 망가진 몸에 더불어 고집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포기란 지는 것이 아닌 내려놓음

군 제대 후 스스로 나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말과 함께 준비도 되 있지 않은 채 사회로 뛰어들었다. 돈을 벌어야만 했고, 돈을 벌고 싶었다. 복무를 통해 태어나서 처음 내가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을 통해 견문을 넓히며 나 또한 성공할 거만 자만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직장을 다니며 인정받기 위해 미친 듯이 일했다. 잘 모르고 안 된다면 부끄럼 없이 물어보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 불철주야 반복해서 숙달하였다. 바닥부터 구르며 모은 자료와 경험을 통해 인정을 받아가면서 내 마음속에 오만함도 같이 자리 잡았었다.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했고, 인생에서도 나름 경험치가 높다는 생각에 거만하게 훈수를 두기도 했다. 내가 실행해서 얻은 실패는 거의 없었기에 잠시나마 기고만장한 건 아니었을까? 안 봐도 어떻게 흘러갈 거란 예측에 더 이상 예전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았고, 긍정적인 생각보단 늘 상대 의견에 비판하며 사회의 사춘기가 온 느낌이었다. 삶은 어느 정도 공평하다고 했던가? 기회를 이루기 직전 난 무너졌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분야로 넘어왔고, 살고 싶어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가기 힘들면서 무작정 오기로 버틴 나의 과오였다. 그러면서도 잠시 숨을 고르고 복귀할 거란 나의 아집은 언제든 복귀하기 위하여 준비를 한다는 명분으로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남산을 오르고 나를 돌아보면서 고집만 남은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던 나의 행동은 이제 무식하게 보였다. 젊은 때는 패기로 봐줄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계획 없는 추진은 패배만은 안겨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포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남산을 오르내리며 처음으로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다시 본래의 분야로 가지 않을 수 있고, 새로운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에 속이 뻥 뚫리듯 나 자신이 가벼워졌다.

야경 속 다양한 불빛은 삶의 다양한 길이고 답일 수 있다.야경 속 다양한 불빛은 삶의 다양한 길이고 답일 수 있다.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남산을 내려가다 보면 서울의 다양한 야경을 맞이한다.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는 듯하게 보이는 정체된 한남고가대로, 수많은 불빛을 내고 고층 성냥갑 건물이 보이는 강남, 그리고 다양한 모습과 불빛으로 하루의 마무리를 맞이하고 있는 수많은 주택까지. 내가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자만과 오만함으로 뻣뻣했던 나의 목은 조금 부드러워졌다. 나이가 들고 한 분야에 오래 있을수록 절대 고개를 굽히지 못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처럼 보인다. 그만큼 전문성과 경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신입이 볼 수도 있고, 타 분야에 사람이 잡아낼 수도 있다. 직업적 목표도 내 아집도 내려놓아보니 몸이 가벼워지고 잦았던 두통이 사라졌다.

내려놓는 용기를 통해 어둠이 밝히고 새로운 날을 맞이 한다.내려놓는 용기를 통해 어둠이 밝히고 새로운 날을 맞이 한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생각지도 못했고,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이었지만, 그 안에서 또 나름 목표를 잡고 나아 간다. 그리고 이제 어떠한 조언도 하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의 삶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미래는 예측이 불가하기에 내 경험담을 이야기해 줄 뿐 어느 누구의 선택에도 훈수를 절대 두지 않게 되었다. 그저 응원한다는 말과 함께 실패를 하더라도 새로운 교훈이고 길이 아니라 생각하면 내려놓고 다시 새 길을 찾으면 된다고 응원을 해줄 뿐이다. 어느 한 분야의 수많은 경험들과 높이 가기 위한 공부까지 마치고 임원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던 나는 조립 완성을 마친 후 발사만을 앞둔 로켓 같았다. 몇몇 사람들에겐 발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혀있다. 하지만, 발사하여 얼마 못 가 터질 상황을 알았다면, 발사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한 것이 현명한 결정이다. 상황이 아깝다고 할 수 있지만,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내려놓는 용기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무모하게 남산을 오르지 않는다. 잠시 내려놓기도 하며 어느 정도 허용되는 날 더 내려놓기 위해 남산을 찾는다.


나는 포기하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내려놓은 그 순간, 새로운 길이 보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요일 연재
이전 19화 나는 끊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