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춤추는 여자들.

by 김 예나

뉴욕이라는 정글의 공기를 마시는 한.

너의 야생의 정신을 안락한 삶 속에 가두지 말지어다.

-뉴요커 중.-


플라뇌즈(flaneuse), 프랑스어에서 온 말로

보통 도시에서 발견되는 한량, 빈둥거리는

구경꾼을 가리키는 여성형 단어이다.

거리를 걸어 다니는 여자들.

도시를 걷는 여자들을 뜻 하는 말로

나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자신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보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눈을 돌릴 수가 없다는 뜻

그래서 나는 길 위에 서 있는 여자들

자신의 위치에서 우뚝 선 여자들

자신의 예술로

자신을 증명해 내며

자신을 과감히 드러내고, 목소리로 이야기를 낼 줄 아는 여자들 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세상에서 여자들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일궈내 가는지

그녀들의 춤으로 세상을 어떻게 매혹시키는지

나는 방랑자와 목격자 사이에서 그들의 행보를 증명한다.

자신 안으로 걸어가는 여자들.

그녀들의 자유로운 행보야 말로 플라뇌즈의 진정한 의미를 갖추기에 충분하다.

플라뇌즈 라는 단어에 적합한 인물들이 몇 있다.

이를테면 에밀리 디킨슨, 버지니아 울프, 조 앤 디디온, 수잔 손텍, 아니 에르노, 프랑수아즈 사강, 마르그리트 뒤리스.

여성에서 여 자를 빼내어 하나의 고유의 성으로

한 사람으로, 한 예술가로 자신의 이름으로 우뚝 선 여자들.

자신만의 것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자신만의 잔다르크가 되며

자신만의 충성심으로

자신만의 기사도가 되는 여자들.

콧잔등 위에 안경이 얹힌 여자들은 상상이 아니라 실제 존재한다.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예술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고

군중 속에서 자신만의 도피처를 만들어 내는 여자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 싸워 이겨낸 여자들.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삶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시키는 여자들에게 빛없는 후광이 드리운다.

앙드레 브트롱 <나자>에 이렇게 적혀 있다.

당신이 누구를 따르는지 알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고 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해 내며 새로운 역사를 적어 내려가는 여자들을 존경하고 믿고 따른다.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 방식에 얽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워내며, 자신을 그 틀 안에 가두지 않고 깨부수고 세상 밖으로 온몸을 내던질 줄 아는 여자들을 나만의 충성심과 기사도를 지닌 채 그녀들만의 잔다르크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자가 여자를 지켜주는 여자들만의 기사도가 있는 법이고, 이는 다른 어떤 충성심 보다 강력하다.

-도리스 레싱 <금색 공책> 중.


우린 서로의 잔다르크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자처한다.

우린 세상의 승리자가 되어 면류관을 머리에 얹고

우아한 손짓으로 세상을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갖은 부와 명예는 부수적인 것들이고

진짜 우리가 얻어낸 것들은 자유와 사랑과 꿈이다.

우린 자신 안에 영원히 빛난다.

검은 매가 되어 기꺼이 날아다닌다.

자신 안에 활기차게 활보하며

자유롭게. 날아간다.

자신의 세계 속으로

아무도 침범할 수 없고, 범접할 수 없는 세계 속으로

안락한 삶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야생적인 정신으로 무장한 채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주는 여자들과 그 속에 한 명의 일원으로서 춤을 추며 거리 구석구석을 활보하는 어릿광대가 된다.


나는 혼자 집 밖에 나갈 자유를 갈망한다.

가고, 오고 튀일리 정원 벤치에 앉고 무엇보다도 뤽상부르에 가서 상점마다 장식된 진열장을 구경하고 교회와 박물관에 들어가고 저녁에는 오래된 거리를 배회하고 싶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게 그거다.

이런 지유가 없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

<바시키르체프의 일기>중.


나의 침대 머리맡에 부푼 꿈을 가지런히 놓아두고

치기 어린 꿈과 놓치지 못한 자유는 진열장 한 구석 쾌쾌 묵은 먼지와 함께 진열되어 있으며

저녁이 되면 현실과 이상 사이를 돌아다니며 배회하고

웃음 뒤에 감추어진 얼굴은 끝끝내 눈물이 되어 세상 밖으로 진짜 얼굴이 되어 나온다.

나는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처럼 애처로이 바라본다.

그녀들의 아름다운 춤사위를

그녀들의 화려한 이력들 뒤에 숨은 진짜 아름다움을

글 위에서 활보하는 그녀들의 허름한 상상들을

그리고 나도 그녀들을 따라 빈약한 춤사위와

값싼 예술이지만 진실된 나만의 이야기로

나의 후진 꿈을 응원한다.

조용한 흥분을 뒤로하고 카페 안을 나선다.

나는 전에 본 적 없는, 이제는 새롭게 볼 줄 아는 또 하나의 눈이 생겼다.

나에게 그녀들과 같은 빛없는 후광이 드리워진다.

책 속에 파묻혀 있는 사람은 섹시하다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아름답고 섹시한 사람의 분류와 가까워진 듯하다.

나는 내가 아름답고 섹시하다고 생각되는 분류의 여자들을 찾아낸다. 내게 없는 아름다움으로 나 역시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첫 번째 아름다움은 치마는 싫어요. 를 외치던 괴짜 디자이너 이자벨 마랑. 자유로운 히피스러움의 정석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무심하게 툭 걸쳐도 멋스러운 태가 나는 그녀의 옷은 내게 어떤 상징과도 같다.

입는 것을 넘어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몇 안 되는 브랜드. 명품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그녀의 옷은 탐난다. 프렌치 시크, 보헤미안 이란 단어는 그녀와 빠질 수 없는 단어이다. 쿨한 척하는 브랜드가 아닌 그냥 쿨한 브랜드. 어쩌면 잘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아 멋스러운 옷들은 내 삶의 태도와 닮아있다.

그녀가 패션 유튜버 아미 송과 나눈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선생님께서는 유행을 안 좇는 것 같아요.

제 스스로 유행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또 자신의 뮤즈는 몇몇 모델들이 아닌 모든 여성이라고 답한 그녀.

난 그녀의 아름다움을 동경하며 또 다른 아름다움을 힐끔 거린다.

두 번째 아름다움은 케이트 모스.

큰 키에 S라인 몸매를 자랑하는 모델들 사이에서

금발의 헤어, 빼빼 마른 몸매, 170cm이라는 모델치고 작은 키. 주근깨 가득한 얼굴. 어느새 시크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가죽재킷, 데님바지, 레오파드는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템들. 멋있고 아름다운 모델들은 많지만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에 걸맞은 모델은 그녀가 유일했다. 내게 어떤 강렬한 인상을 주는 모델.

난 단순히 예쁜 걸 넘어서 자기 다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또 세 번째 아름다움은 전혜린.

그녀는 번역가이자 수필가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생의 한가운데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이 글을 번역한 작가.

그녀가 번역한 독일 소설들은 그녀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는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도 그녀의 공이 컸다.

난 작가 전혜린이 궁금해졌고 그녀의 작품을 읽고 그녀에게 매료된다. 니나 부슈만 같은 여자.

정말 생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여자.

짧지만 깊은 삶을 살다 간 여자.

불꽃처럼 사랑하고 사랑하며 죽어가리. 그녀가 남긴 말처럼 그녀의 순수하고, 진실한 자유정신은 내게 알 수 없는 뭔가를 남겼다.

문득 내 얼굴에 야생적인 얼굴이 사라졌다.

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자유를 찾기 위해 그녀의 글을 마구 찾아 읽는다. 정착하는 삶에서 떠나는 삶이 되기 위해. 그런 아름다움을 위해. 어쩌면 뭐든 아름다운 것들에서 지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가볍게 털어내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난 그녀들을 생각한다.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아름다움.

거침없이 드러내는 삶의 아름다움.

내가 생각하는 진짜 아름다움.

그렇게 난 그녀들을 닮은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며

거리를 거침없이 배회하는 여자들 사이에 조심스레 끼어 나도 거리의 어릿광대가 되어 본다.

책장 뒤에 숨은 진짜 아름다움이 거리에 존재하고 반짝인다.

나는 글 속에서, 삶 속에서 걷고, 뛰고, 춤추며 아름답게 활보한다. 나는 이제 웃음 보다 눈물이

낮 보다 밤이, 여럿 보다 혼자가 좋다.

카페 안과 밖으로 휘젓고 다니는 보이지 않는 상상력과 연기 없는 흥분들이 사랑이 되어 실제 한다.

펼쳐지는 페이지마다 아름다운 무표정과 함께 빛없는 후광이 뒤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자유, 꿈, 사랑은 먼지 묻은 진열장이 아닌 세상의 무대에 나와 자신들의 이름으로 거침없이 춤을 추며 아름답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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