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by 김 예나


가끔 그런 말들이 들린다.

자. 준비 됐어. 이제 떠날 시간이야.

누군가의 이름 모를 말들이 내게 서성인다.

이리 와서 울어요.

이리 와서 내게 쏟아내요.

이제 당신 차례예요.

난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는다.

두리번거리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려 애쓴다.

찾는데 별 어려움은 없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나니까.

내 내면이 내게 말을 건넨다.

너의 상태를 정확히 직면하고 직시하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나도 안다.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 떠나야 한다. 울어야 한다.

“문을 찾을 수 있어 그 앞에서 울 수 있는 자는 아직 행복하여라. “ 기유빅 시의 구절처럼.

하지만 겁이 난다.

눈치가 보인다.

사실 좀 귀찮기도 하다.

무언가 더 나은 것을 찾기를 갈망하는 마음을 뒤로하고 출근길 버스에 오른다.

매번 이상의 것을 기다리며 삶의 발버둥을 치는 나.

하지만 정확히 모르겠다.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하지만 정확히 하나는 확실하다.

적어도 이런 삶은 아니라는 걸.

내 삶의 속도감, 도취감은 좀 더 맑고, 명량했으면 좋겠다. 도시 같은 삶. 때론 자연 같은 삶으로 살고 싶다.

치열한 삶을 살다가 훌쩍 조용히 사라져 버리는 삶.

동생의 존재가 내게 얼마나 유용한지. 삶을 청량하게 사는 법. 삶을 감각적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이야기가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사람.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사는데 무거워 보이기는커녕 되려 너무 가벼워 날아가 버릴 것 같다.

참. 해맑아 보인다.

속 편해 보인다.

이런 말들은 그녀에게 적용하면

욕이나 비꼬는 말이 아닌 칭찬이 된다.

나는 그 비밀을 동생을 보며 깨닫는다.

동생은 나와 달리 사람한테 적는구나.

동생은 편지를 꽤나 자주 쓴다.

아빠에게, 엄마에게, 그녀의 친구들에게, 나에게도.

그녀는 글로 사람을 울리는 재주가 있다.

웃기는 재주는 물론이고.

그녀는 환대의 기질을 발휘하여 그 대상자를 향해

자신의 조각 일부를 잘라주는데 매번 다르게 툭툭 떨어진다. 아주 멋들어지게 부서진다.

그렇게 매번 다르게 감동시킨다.

나는 못해내는 것을 그녀는 척척 해내는걸

나는 매번 감탄하며 지켜본다.

그녀는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조용히 쓱 다가와 지금 내게 필요한 걸 기가 막힌 타이밍에 건넬 줄 아는 사람이다.

그녀는 약간의 불편함, 약간의 진심, 약간의 부지런함으로 편지를 쓰며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에게 전한다.

그 마음은 퍽. 귀엽고 퍽. 쓰리며. 퍽. 사랑스럽다.

나는 그녀의 편지를 읽으며 그녀의 마음을 후원한다.

그녀의 진심은 매번 정확히 통한다.

분해되지 않고 정확한 모양 그대로 당도한다.

편지는 사랑을 전하는데 탁월하다.

사랑을 전하는 게 편지를 쓰는 일이라면

그녀는 사랑을 잘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녀의 편지에 매번 속수무책 당하는 걸 보면

그녀는 자신이 소각되어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자신을 내어주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다름 이의 멍에를 자신이 메고 다니는 것에 탁월한 사람. 나는 그녀에 사랑에 남몰래 눈물을 훔친다.

그녀의 존재가 내게 얼마나 유용한 존재인지.

난 덕분에 삶을 감각적으로 사는 법을 조금씩 배운다.

맑고, 청량한 보폭으로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녀는 명량한 사람이다.

삶을 어찌 저렇게 경쾌하게 사는지 감탄하게 한다.

다른 이들에게 친절하며 다정하다.

긍정적인 분위기를 가졌으며

다정한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사람.

무거운 문제도 가볍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

당당함으로 자신을 꾸민 사람.

그녀는 넉넉한 삶을 사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

나는 그녀의 명량함을 배우고 싶다.

글쓰기 없어도 삶을 감각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

나는 열심히 글을 쓰고 매달려도 매번 그녀에게

지는 것 같아 부럽고 질투가 난다.

삶을 어찌 저렇게 경쾌하게 사는지…

맑고, 청량한 보폭으로 걸어가는지…

언제나 나보다 한 걸음 빠르다.

난 부단히 써야 그녀와 비슷한 속도로 걸을 수 있다.

우린 얼마 전 서로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작은 그녀의 메시지였다.

언니의 구체적인 행복 5가지만 말해줘.

1. 새벽녘 요가하고 차 한잔 마시며 담소 나누기.

2. 아침 산책 하고 브런치 먹기.

3. 공원에 가서 벌러덩 누워 햇빛샤워.

4. 여름 수영.

5. 책상에 앉아 글 속으로 가장 먼 여행 떠나기.

그러다 나는 그녀의 행복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그녀의 구체적인 행복은 이랬다.

1. 새벽공기를 마실 때.

2. 집에 내가 좋아하는 걸 채워 넣을 때.

3.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느낄 때.

4. 웃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볼 때.

5. Anne(나)과 다니는 여행.

우리가 느끼는 행복의 부류가 비슷해서 놀랐고

자신의 행복 보다 가족의 행복을 더 생각해서 놀랐다.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그녀는 나보다 더 어른 같은 면모로 나를 부쩍 놀라게 만든다.

나는 그녀의 모습에 남몰래 눈물을 훔친다.

나는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 면모를 가지고 있어

나 아닌 다른 이를 생각하는 게 어려운 사람인데

그녀는 척척 잘도 해낸다.

비루한 조약돌은 아직 바위가 되기 글렀다.

아직도 철부지다.

그러니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

나는 그녀에게 또 한 번 사랑을 배운다.

나 아닌 타인을 위해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 가장 귀한 걸 내어 줄 준비를 한다.

나는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우리 징그럽도록 반복되는 똑같은 행복 속에

벌러덩 누워 있는 것보다 오만하더라도 겁 없이

유토피아적 환상을 찾으러 떠나며 살자.

우리의 경험이 이야기가 되는 삶을 살자.

맑고, 깨끗하게. 아주 근사한 여자들이 되어

남자들의 콧대를 짓누르는 그런 여자들.

그런 기대감을 안고 하지만 몸은 점점 힘들고

나이는 자꾸 먹어가서 좀 슬퍼.

그래도 이런 애기를 미주알고주알 나눌 수 있는 사람.

날 잘 아는 네가 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좀 난다.

초조하고 가망 없는 요즘.

방황하고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는 내게

너는 한 줄기 희망이야.

넌 매번 나를 살게 해.

넌 나에게 집 같아.

포근하고 편한데 때론 지루해서 벗어나고 싶은

하지만 떠나고 보면 집이 최고라는 걸 넌 아는 거지.

결국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행복에 벌러덩 누워보자고.

이제 당신 자신 안에 맘껏 적으세요.

이제 당신 자신 안으로 힘껏 들어가세요.

이제 당신 차례예요.

방문에는 자물쇠를 걸어두고

아무도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공유되지 않은 아름다움은 영원히 비밀인 채로 남겨두고 당신의 어린 시절 상상의 친구였던 모모와 함께

울고, 웃으며 자랐던 그 시절. 그 느낌으로

느리지만 한 발짝 씩 내디디며 자신 안으로 걸어가야지. 그리고 멋지게 성장해서 짠 하고 나타나야지.

새로운 자아의 옷을 입고 세상 밖으로 외출감행.

거북아. 그 속도로 쭉 가렴.

멈추지 말고.

거북아. 그 속도로 멀리멀리 가렴.

넌 토끼. 난 거북이.

느리지만 천천히 당도할게.

너의 아름다움에 가서 닿을게.

열심히 부지런히 걸어갈게.

조금만 기다려줘.

지치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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