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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수레 Nov 25. 2021

개인주의자의 엄마 표류기

-임신 3개월, 입덧이란 게 말이야.. 

나는 술을 좋아했다. 아니 사실 좋아하는 척했다. 술을 마시면 평소에 점잖은 캐릭터로 밀고 나가던 내가 약간 삐끗 해도 사람들은 너그럽게 이해해주었다. 목소리가 커져도, 몇 번의 실언을 해도 말이다. 나이가 어려서 간도 쌩쌩했는지 내 마음과 같이 몸에서도 술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소맥을 말아먹어도,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어마셔도 다음날엔 숙취가 뭔가요? 하며 멀쩡하게 출근하곤 했다. 


그러던 내가.. 임신을 하고 술을 마시지 않고도 술 마신 사람처럼 토하고 숙취가 뭔지! 그 술 마시고 죽을 것 같은 게 뭔지 제대로 알게 된다. 


입덧, emesis gravidarum, 임신 초기에 계속되는 소화기 계통의 증세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임신 초기뿐만 아니라 막달까지 할 수도 있고, 소화기뿐만 아니라 온 몸의 모든 곳이 제정신이 아니거든요.. 


나는 미처 임신을 확인하기 전부터 입덧을 했더랬다. 비록 그게 입덧인지 몰랐지만.. 꾸준히 체한 느낌, 머리가 팽팽 돌아 일하기가 힘들기도 하고 잘 먹던 음식의 냄새가 갑자기 미치게 비위 상하 기도 하고. 그래서 임신 5,6주 차에는 소화제를 수 없이 들이붓기도 했다.. (모르고 먹은 약은 괜찮다고 하는 모두의 이야기가 있습죠) 알고 보니 그게 입덧이었지만 말이다. 


입덧은 마치.. 전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식사 때마다 느끼한 안주에 소맥, 막걸리 섞어마시며 반주하다가 밤엔 본격적으로 소주를 엄청 마셔서 소화불량과 숙취가 있는 상태로 히터 세게 튼 엄청 흔들리는 관광버스 타고 국내여행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혹자는 술 많이 마시고 아주 작은 통통배 타고 끝도 없이 뱃멀미 하는 느낌이라고 하는데 배는 바다라도 보이지 입덧은 앞이 보이질 않는다. 


나는 약 5주 차에 시작해서 32주 정도까지 입덧을 했다. 주요 증상이야 뭐 말해 뭐 할까..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고 토하기 싫지만 토하게 되고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모든 냄새가 나는 것 같은 24시간을 보내는 것이 증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 거기다 가끔 한 여름에 갓 구운 붕어빵이 먹고 싶거나? 한 겨울에 털이 복슬복슬한 여름 복숭아가 먹고 싶은 뜬금없는 입맛까지 곁들인 것이 입덧의 묘미라 할 수 있겠다. 


한 알에 3천 원 하던 그때의 그 백화점 자두


입신 초중 말기를 입덧으로 보낸 나는 임신기간 동안 8킬로가 빠지고 4킬로가 쪘다. 고로 아이를 가지기 전보다 아이를 낳을 때가 더 날씬했다는 슬픈 이야기. 이렇게나 입덧은 보통일이 아니다. 운동을 꾸준히 해서 체력 하나는 자신 있던 내가 입덧을 하며 한 여름을 누워서만 보냈더니 가을이 올쯤에는 종아리 근육이 다 빠져버려서 한동안 걷기조차 힘들었다. 이런 모든 애로 사항을 접어두고 그래도 가장 힘든 점을 꼽으라면 이 모든 고통을 나만 느낀다는 점이다. 


어느 쇼프로에 패널로 나온 중년 게스트가 한 말이 있다. "남자가 애 낳는데 뭐 한일이 있어? 기분 한번 내고 끝이지".. 이 말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알 수 있게 저기 어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 팻말이라도 세우고 싶은 마음이다. 


남편은 유순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이지만 내가 한여름에 붕어빵을 먹고 싶어 하거나 콩가루 묻힌 인절미를 찾아 헤매는 그 마음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붕어빵 파는 곳이 없으니까 냉동 붕어빵을 먹자거나 인절미가 없는데 다른 떡은 안되냐고 묻는 자체가 입덧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뜻이겠지. 그 조차도 이 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먹고 싶은 부대찌개를 먹자거나 내 앞에서 마음대로 냉장고 문을 횅하고 열어서 냉장고 냄새 때문에 나를 화장실로 달려가게 만든 것은 두고두고 꿀밤을 아주 세게 때려주고 싶은 기억들이다. 


입덧이 언젠간 끝날 거라는 기대와 누구처럼 아이 낳으러 갈 때까지 토하면서 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 배에 튼살 크림을 바르던 시간들. 그렇게 하루가 너무나도 길던 임신 초기가 지나고 배가 조금씩 불러오면서 나는 임신 중기를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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