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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녀사 May 06. 2024

내 아이의 불안을 한 번에 알아보는 미술 활동

손톱을 물어뜯는 내 아이를 위한 미술 활동: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 아이의 불안을 한 번에 알아보는 미술활동

:높은 불안감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내 아이를 위한 미술활동,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겁이 많았던 7살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첫 모습을 기억하면 커다란 두 눈이 떠오른다. 나를 처음 만났던 날 아이는 우주를 담을 만큼 커다란 눈으로 주위를 이리저리 살피며 낯선 선생님을 탐색하기 바빴었다. 치료사로서 높은 불안을 가진 아이와 라포를 형성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적절한 톤으로 '안녕'이라고 가볍게 인사하며 아이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들이 바로 대답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이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곧바로 인사를 해주며 상담에 그린라이트를 밝혀주었다. 활기차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기대하며, 나는 책상 위에 다양한 미술도구와 팬시 제품들을 펼쳐 놓았다. 7살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인기 캐릭터가 그려진 물건들이라 이내 아이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들을 흥미롭게 바라볼 뿐 직접 만져보려 손을 책상 위에 올리지 않았다. 아이는 미술도구를 만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손을 책상 위에 올리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는 내가 다른 곳을 바라보는 틈을 타, 캐릭터가 그려진 미술도구를 재빨리 가져가서 책상 아래 자신의 무릎 위에서 관찰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는 일부러 자신의 손을 감추려 했다. 아이는 손톱을 물어뜯고 피부를 벗겨내는 나쁜 습관이 있어, 선생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자신의 손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쓴 것이다. 미술도구를 만져보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꾹꾹 누를 만큼, 아이도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는 문제행동을 힘겨워하고 있었다.



손톱을 물어뜯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떠올린다. 과거의 어린 시절 자신을 떠올리기도 하고, 지금 자신의 자녀가 마치 자신을 오마주하듯 비슷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생각하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은 대부분 부정적인 사건이 지배적일 것이다. 손톱을 뜯기 전 초조함이 몰려왔던 상황과 손톱을 뜯는 것을 부모님께 들켰을 때가 그러하다. 그럴 때마다 "또 손톱을 뜯으면 가만 안 두겠다"라며 폭언과 질책을 하셨던 부정적인 상황이 떠오른다. 그렇게 불안이 몰려올 때면 어린 자신은 부모님이 안 보이는 밤까지 기다렸다가 더 미친 듯이 손톱을 뜯곤 했던 가슴 아픈 경험들이 생각날 지도모른다.


솔직히 나는 손톱을 물어뜯는 행동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유년기에 불안을 경험하지 않아서 손톱을 물어뜯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불안이 다른 강박 행동으로 나타났을 뿐이며, 나 또한 내 안의 불안을 통제하려고 애썼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없었던 내가 이토록 이들을 어려움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손톱을 뜯고, 손톱 피부를 벗겨내는 문제행동 깊은 이면의 ‘불안’을 깊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우선 손톱 물어뜯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불안’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불안과 손톱 물어뜯기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흔히 부모님께 아이의 어려움을 설명할 때, '짝꿍'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해 부모님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 한다. 손톱을 물어뜯고 살갗을 벗겨내는 문제행동은 불안과 짝꿍이며, 눈을 깜빡이는 틱(tic) 역시 불안과 짝꿍이다. 이 외에도 아이가 불안으로 인해 신체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면, 역시 불안의 짝꿍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불안에 동반된 문제행동들은 다양하다. 어릴 때 나는 내 안의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무던히도 나의 몸을 괴롭혔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잘 보이고 쉽게 노출되는 나의 손이 주요 표적이었다. 


불안의 최고치에 달할 때는 아버지와의 식사시간이었다. 저녁 시간 어머니는 퇴근 전으로 주로 나와 동생 그리고 아버지와 저녁을 먹었다.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양육의 정석인 아버지는 퇴근 후 아무 말 없이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을 상에 차리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어린 나는 초조함이 몰려오며 애꿎은 손가락을 당기고 꺾어 대기 시작한다. 나의 시선은 오롯이 아버지가 담고 있는 밥을 주시한다. 한 번, 두 번, 밥주걱으로 밥을 밥공기에 퍼 담을 때마다 나의 손가락 관절 꺾이는 소리는 절정에 다다른다. 역시나 밥공기 위에 꾹꾹 눌러 담은 밥을 보고 나는 소리 없는 통곡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모른다. 나의 손가락이 빨갛게 부어있고 절망적인 표정을 모른다. 결국, 극 내향적인 어린 나는 다 못 먹겠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꾸역꾸역 꾹꾹 눌러 담은 밥을 먹어치운다.


어린 시절, 나는 항상 체중이 평균 이하였다. 식욕이 적고,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키 크고 마른 아이였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안쓰럽게 여겼고, 그 마음을 가득 담아 밥공기에 표현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달리,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저녁 식사시간이 불안하고 스트레스가 가득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밥을 꾸역꾸역 씹어 마른 목에 넘길 때 내 두 손은 밥상 아래에서 분주했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당기며, 각 관절을 소리 나게 꺾기 바쁘다. 한 손가락 당 2번씩, 총 20번을 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아버지는 밥을 먹는 동안 밥상 아래에서 손가락을 꺾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밥을 안 먹고 손가락을 꺾으며 장난치면 어쩌니?!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말아라. 만약 또 그렇게 하면, 혼낼 거야. 손 올려놔."


나 나름의 불안을 다스리는 의식이었던 손가락 꺾기를 하지 말라는 말에 한 번 더 불안이 밀려와 어린 나를 집어삼켰다. 결국, 꾸역꾸역 먹은 밥을 아버지 앞에서 분수처럼 토해내고 만다. 그런 날이면 모두가 잠든 밤 평상시보다 손가락을 당기고 관절을 꺾는 나만의 의식이 길어졌다.


모두가 잠든 밤 손마디를 꺾으며 느꼈던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첫째, ‘이제 손가락 마디를 꺾는 나쁜 습관을 고쳐야 하는데 또 저질러버렸네. 나에게 실망스럽다’라는 감정이다. 둘째, ‘부모님 앞에서 문제행동을 하는 것을 조절하려고 했는데 들켰네, 이제 실망하겠지?’라는 감정이다. 나를 훈육하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아닌 나쁜 습관을 또 해버린 자기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이 향한다.      


이처럼 불안에 동반된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은 속마음에 죄책감과 좌절감이 가득하다. 그러나 많은 부모는 이러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행동을 단순히 ‘나쁜 습관’으로 간주해 버린다면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일단, 앞선 나의 사례처럼 부모가 보이는 앞에서는 손톱을 뜯는 등 부정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그 어디에서든 손톱을 뜯어대고, 관절을 꺾어 댈 것이다. 만약 이러한 행동으로도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발톱까지 뜯는 습관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아이의 불안을 헤아리지 않고 강압적인 방식으로만 문제행동을 억제하려 하면, 이처럼 부정적인 행동이 강화될 수 있다.      


물론, 부모 관점에서 내 아이가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입으로 표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 내가 손가락을 잡아당기고, 손가락 관절을 꺾어 대는 것은요. 아빠가 담아주는 밥에 양이 너무 많아요. 다 못 먹을 것 같은 부담감이 커요. 항상 아빠랑 밥을 먹으면 결국 체하고 즐겁지 않아요.” 이렇게 말이다.      


그러나 이 장은 ‘불안’다룬다.  높은 불안감을 갖은 아이들은 이렇듯  자기표현에 어려움을 갖고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빠가 실망하려나? 아빠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냥 나는 밥양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인데?’라는 꼬리에 꼬리를 문 걱정이 가득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내 불안의 감정을 인식하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불안감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도 어려웠으므로 '불안감정표현'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듯 아이가 자신의 불안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면, 부모도 신이 아니기에 아이의 불안감을 24시간 내내 지켜보며 반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던한 미술치료사인 나는 미술활동으로 아이의 '불안'을  한번에 알아 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주고자 한다. 이러한 불안을 시각화하는 미술 활동들이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 불안해 하는 아이모두에게 도움이 될것이다.



내 아이의 불안을 한 번에 알아보는 미술 활동은 다음과 같다.      

활동 1. 불안 피라미드 활동으로 아동이 느끼는 불안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봄으로써 자신이 느끼는 다양한 불안 요인들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10장에서 20장의 작은 카드에 자신이 불안을 느끼는 상황을 적어본다. (치료사 또는 부모가 적어줘도 무관함) 다음, 도화지에 커다란 피라미드를 5단계로 그리고, 불안을 느낄 때 자신의 신체 반응을 표현하는 색을 각 단계에 채색해보도록 한다. 각 층에 가장 큰 불안 요인부터 점차 작은 불안 요인(카드)을 나열하도록 하여 불안의 크기와 상대적인 중요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미술 활동이다. 참고로, 불안 요인 카드를 작품에 붙이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아동의 불안은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으므로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발표를 앞둔 어제의 불안이 5단계였다면, 오늘은 3단계로 하향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발표를 앞둔 불안 상황에서 어떠한 신체적 반응이 나타났는지, 발표가 마무리되었을 때 불안감이 얼마큼 하향되었는지 또는 상향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불안피라미드1
불안피라미드2

활동 2. 자신의 불안을 그림으로 표현해주며 이름을 붙여 명명화해주는 활동이다. 실체가 없는 불안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며 실체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완성된 불안의 그림은 실체가 없는 허구의 것이 아닌 만지고 다룰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미술 활동이다. 완성된 작품으로 아동의 불안을 통제 가능한 것으로 인식했다면, 치료사 또는 부모와 함께 마주하는 놀이를 추천한다. 완성된 불안 그림을 떼어내어 접거나 가위로 자르며 “사라져!”라고 외쳐볼 수도 있다. 또는 완성된 불안 그림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변형하여 작업해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둠이 무서운 친구가 그린 까만 이미지 그림에 전등 그림을 추가해주며 긍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     

불안그림시각화

활동 3. 자신의 불안과 걱정을 돌봐줄 인형을 만들어 보는 활동이다. 일명‘걱정 인형’이다. 미술치료 상담현장에서 아동의 불안과 걱정을 살펴볼 때 자주 사용하는 활동 중의 하나이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만큼 다양한 인형 키트가 있으니, 아이와 함께 선호하는 키트를 골라 구매해보는 것도 좋다. 이 '걱정 인형'은 자신의 걱정을 인형에게 이야기하면 걱정이 사라진다는 믿음이 실제로 걱정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한다. 아이들이 인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불안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완성된 인형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걱정을 들고있는 인형

안타깝지만 지금까지 제시한 여러 활동이 아이의 불안을 100%로 줄여주고, 동반한 문제행동을 완전히 소거해주지 않을 것이다. 현재 나는 불안을 적절하게 다뤄낼 수 있는 성인이 되었지만, 어김없이 불안이 밀려오면 손가락을 당기고 깍지를 껴 우두둑 소리를 내곤 한다. 그러나 현재 나는 나의 불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인식하였고, 문제행동의 빈도를 크게 줄일 수 있었으며, 이를 깨달은 뒤 나의 불안도 많이 감소하는 긍정적 효과를 경험하였다. 사실 지금도 밥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많이 못 먹을 것 같은데 나를 위해 이렇게 많이 준비해줬네? 모두 맛있게 못 먹으면 실망하겠지?’라는 생각을 어김없이 한다. 그러나 과거의 나처럼 안절부절 손가락 관절을 꺾고 불안을 신체로 표현하며 꾸역꾸역 음식을 다 먹지는 않는다. 불안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적당한 표현으로 상황을 유연하게 넘길줄 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처럼 아이의 불안을 미술 활동을 통해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죄책감과 좌절감의 부정적인 경험을 줄여준다. 더불어 부모에게는 아이의 불안 징후를 인지하여 문제행동을 무던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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