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부분에서는 동의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면 나는 특정 손가락이 더 아플 때가 있기 때문이다. 상담하다 보면 모든 아이가 소중하고 애틋하지만, 유독 마음이 더 가는 아이가 있다. 나에게는 과잉행동을 보이는 한 아이가 그런 존재였다.
이 아이는 ADHD 성향으로 과잉행동을 보이는 7살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주의집중력과 충동성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유독 과잉행동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또래보다 큰 체격은 아이의 문제행동에 더욱 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친구들과의 갈등상황에서 몸싸움이 일어나면, 갈등을 조성한 가해자가 아니었음에도 결국, 상대방 아이가 다치며 가해자가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며 아이는 여러 곳의 어린이집에서 강제퇴소를 겪게 되었다. 아이를 처음 만나기 전에 부모님께 전화로 일련의 사건들을 전달받았을 때, 미술치료사로서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가방에 위험한 도구가 없는지, 오늘의 활동에 아이를 자극할 만한 매체가 없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이를 만나며 그러한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아이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활동을 참여했고, 높은 주의집중력으로 멋진 작품도 완성하며 초기 만남을 긍정적으로 마무리해 주었기 때문이다. 초기상담뿐만 아니라, 아이는 다른 활동도 무리 없이 잘 해냈고, 나와 함께하는 과정에서도 긍정적인 기대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여전히 어린이집에서 화가 나면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해 친구를 때리거나 선생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모든 면에서 일반아동과 동일한 행동 특성을 보이며, 심지어 일반아동보다 우수한 집중력을 보이는 이 아동이 왜 그렇게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지 걱정스러웠다.
한 해 두 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나는 아이의 ‘욱’을 다스릴 수 있도록 무던히도 노력하였다. 함께 겪어온 시간이 길다 보니, 부모님과 함께 울고 고민했던 순간들이 더욱더 내 손가락을 아프게 한 것 같다. 이번 장에는 아이의 '욱'을 무던하게 다스리기 위해 우리가 겪었던 여러 좌절과 아픔, 그리고 성장해 나갔던 과정들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욱 버튼’은 존재한다. 나에게 욱 버튼은 ‘폭력’이다. 특히, 아동에 가해지는 폭력에는 가차 없이 불같은 욱이 표출된다. 일단 어른에게 아동이 꿀밤이라도 한 방을 맞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면, 나의 얼굴은 분노에 홍당무처럼 변한다. 지인이던, 길가에 있던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던, 나는 분노를 감추지 않고 표출한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흥분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고, 마치 기차 화통을 먹은 듯이 큰 육성으로 욱하며 상대를 압도한다. 이전에 언급한 것처럼, 작가가 극 내향적인 성향을 지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상황이 어떻게 나를 얼마나 욱하게 했는지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욱은 상담 일을 하면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어느 날은 바쁘신 부모님이 없이 아동만 함께 가정에서 상담을 진행하였던 적이 있었다. 즐겁게 활동을 하던 중, 아동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효자손을 발견하게 되었다. 책상 위에 효자손의 조합은 그리 긍정적인 조합은 아닌 것 같은 추측이 들었고, 그래서 아동에게 효자손의 진위를 확인했다. 역시나 결과는 ‘훈육 용매’라는 답변을 들으며 나의 욱 버튼이 눌려버렸다. 곧 나의 얼굴은 홍당무로 변신하였고 호흡이 가빠지며 두근거리는 신체 반응특성이 나타났다. 나는 효자손을 덥석 들고 내 가방에 넣으며, “아가야, 부모님이 이 효자손이 어디 갔는지 찾거든 선생님이 가져갔다고 전해드리렴!”이라고 외쳤다. 분노감정에 이글거리는 나와 달리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을 구세주처럼 바라보았다.
이렇게 나에게 욱이라는 것이 촉발되면 신체 반응이 공격적으로 표출된다. 예를 들어 거친 말투와 커다란 목소리가 그렇다. 또한, 분노에 찬 표정과 동반된 과잉행동들이 나의 대표적인 욱의 반응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공격적인 반응들은 상담사라는 직업을 만나며 정당한 대처로 탈바꿈하게 된다. 만약 상담사라는 직업이 아니었다면, 그저 정의감에 불탄 길 가던 화가 난 아줌마일 뿐이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나의 욱한 행동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이러한 공격적 반응은 옳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나의 폭력이라는 욱 버튼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청소년기에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어릴 적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남성상은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서 내 안에 각인되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어린 나는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내 욕구와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했다.
어느 날 중학교 때였다. 나는 하교 후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시간이 아직 남아 있어서 나는 터미널 안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에 들려 우유와 에너지바를 고르고 있었다. 그때 6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온 듯 보였고, 과자코너에서 서성거리며 먹고 싶어라 하는 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냉담한 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고 자신의 담배만 계산하고 슈퍼를 나갔다. 나는 아이의 처지를 연민하게 여겼을까? 나는 그 순간, 에너지바를 내려놓고 아이의 시선이 머물렀던 과자를 집어 계산했다. 아이를 놓치기 싫어서 서둘러 쫓아나가 아이의 손에 과자를 쥐여주었다. 그때, 아이의 얼굴에는 당황과 행복의 감정, 그리고 아버지의 무관심한 냉담한 감정의 표정이 교차했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해야지”라고 아버지는 아이에게 투박하게 말을 내뱉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나는 아이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는지 기억이 남지 않는다. 단지 부끄러움 때문에 버스 대기 장소로 서둘러 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을 것이다. 나는 우유를 빨대로 마시며 멀리서 아이와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며 오가는 사람을 관찰하기 바빠 보였다. 아이는 아버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과자를 먹기 위해 과자봉지를 열려고 애를 썼다. 양손으로 쥐고 비틀어 보기도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한 손으로 봉지 끝을 잡고 찢으려고도 했지만 실패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과자봉지를 열려고 애를 썼지만, 6살짜리 아이의 손으로는 어려워 보였다. 결국, 아이는 이빨로 뜯어내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 펑 소리와 함께 과자봉지가 뜯겼다. 하지만 너무 많이 뜯긴 과자봉지로 인해 팝콘 모양의 하얀 과자들이 아이 발밑에 눈처럼 흩어져버렸다.
그 재서야 담배만 피우던 무관심한 아버지가 일어난 일들을 바라보았고, 말일 새도 없이 거친 손을 번쩍 들어 아이의 뺨을 후려갈겼다. 짝! 소리가 버스터미널에 울려 퍼졌다.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도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도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 또한 벌어진 일로 놀랬다. 아이는 우둑하니 서서 울지 안았다. 그리고 그 공허한 시선의 끝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그 시선을 마주 볼 수 없었고, 그 도움을 갈구하는 시선은 중학생의 나에게는 버거웠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이를 도와줄 어른은 없는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누구도 도와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이후에는 기억이 없다.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버스를 탔는지, 바닥에 흩어진 팝콘 모양의 과자는 치워졌는지 아니면 그대로 두고 갔는지에 대한 세세한 기억은 없다. 그저 나에겐 커다란 죄책감의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는 것만 깊게 기억될 뿐이었다.
'나는 도와달라는 아이의 시선을 무시했다. 내가 무능한 겁쟁이여서 도와주지 못했다. 역시 집에서와같이 내가 하고 싶던 행동을 용기를 내 하지 못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그 날의 기억은 팝콘 모양 과자처럼 기억 언저리를 나뒹굴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해결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이 내 연민을 자극했다. 연민은 과거에 내가 자책하던 일들을 떠올리며 나를 괴롭히고, 욱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가정에서 처리되지 않은 내 안에 남아 있는 부정적인 욱이라는 감정이 학교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작가가 활동 1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지만, 아동이 학교에서 욱하는 감정으로 또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면, 학교생활에서의 어려움만이 욱을 촉발한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욱이라는 감정표현의 배경에는 가정에서의 미해결된 사건이 함께 작용한다는 것이다.
앞선 나의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나의 욱 버튼에는 가정과 학교생활, 일상생활에서 연결점이 있다. 과거에 강압적인 아버지로부터 나의 자기표현이 어려웠던 경험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분노를 억누르며 지냈었다. 이런 감정은 학교나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아이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수동적인 공격으로 대응했다. (아이와 아이아버지에 동의를 얻지 않고 일방적으로 나의 감정을 투사하여 과자를 사준 것) 또한, 긍정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사건에 죄책감을 느끼며 이런 열등한 감정은 나의 욱을 더욱 촉발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 아이는 절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공격적인 아이가 아닌데. 오히려, 그 행동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의 영향으로 인해 화가 나 더욱 욱하게 된 것 같아요.”라고 생각하는 욱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욱 버튼에는 가정과 학교생활, 일상생활에서 연결점이 있다.’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아동의 욱 버튼이 가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였다면, 다음은 아동의 욱을 탐색하고 그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가 욱하는 상황을 가정과 학교에서 함께 찾아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분명히 이 욱에는 연결점이 있으므로 부모와 함께 절절하게 상황을 매치해보며 탐색해보는 과정이 아동의 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아이가 이 욱이라는 폭발적인 감정은 짧은 몇 초면 사라지는 것임을 이해하게 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참을 수 있는 짧은 감정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줄어든다. 부모와 함께 욱하는 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이를 꾸준히 훈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내 아이의 욱하는 감정을 살펴보고 도울 수 있는 미술 활동은 다음과 같다.
활동 1. 욱하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활동이다. 이 활동은 아동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동은 주로 가정에서 미해결된 감정과 사건을 학교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아동의 문제행동을 촉발하는 요소를 면밀하게 파악하는 데 효과적이다. 우선, ‘가정’과 ‘학교’로 세션을 나누고, 포스트잇에 자신이 욱했던 사건을 적어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작품을 완성해본다. 작업 후 치료사와 함께 완성된 작품을 보며 가정과 학교의 유사점을 찾아보는 경험을 해보고 자신의 문제행동을 시각화하여 자각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활동 2. 활동1에서 확장된 프로그램으로 동서남북 종이접기와 치료사와의 통제 연습을 통해 욱하는 감정을 조절하는 즉각적인 방법을 훈련하는 활동이다. 이 활동은 자신이 감정을 촉발하는 상황과 그 상황을 다루는 방법을 적은 두 동서남북 종이접기를 이용한다. 두 종이접기와 상황을 다룰 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두고 동서남북 게임을 통해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는 연습을 한다.
※동서남북 게임 방법_ 아동이 완성된 종이접기를 손에 착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치료사는 아동이 욱을 촉발하는 동서남북 종이접기에 '동쪽에 5번'이라고 외치면 아동은 그 지시를 따라가며 종이접기에서 제시된 항목을 읽어본다. 예를 들어, '다른 친구들이 나를 비웃을 때' 등이 될 수 있다. 그런 다음, 치료사는 아동이 욱을 다스리는 방법을 담은 종이접기에 '남쪽 3번'을 외치면 아동은 해당 지시에 따라 종이접기를 펼치고, 그 안에 적힌 내용을 읽고 실행합니다. 예를 들어, '물 한 잔을 마시며 분노를 다스린다' 등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한 회기에서 다루는 것이 아닌, 매 회기마다 본 활동을 들어가기 전 예비활동으로 다루며 훈련하여 통제감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활동 3. 아동이 욱하는 감정이 들 때 자신의 신체 반응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이다. 자신의 신체상을 도화지에 그려보고 욱을 촉발하는 사건들을 적어본다. 욱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신체가 반응하는 것에 관해 치료사와 이야기를 나눠보며 색으로 표현하며 작품을 완성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욱’이라는 감정이 나의 몸에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와 이와 더불어 이 감정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활동이다.
일곱 살이었던 아픈 손가락 남자아이는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형님이 되었다. 여전히 욱하는 감정으로 또래들과 갈등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책상 위에 동서남북 종이접기를 꺼내 들고 무던하게 욱을 통제하는 연습을 한다. 성인도 욱하는 순간이 오면 눈감고 심호흡하며 진정시키는 행동이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을 고려하면, 이 아동이 대견스럽다. 앞으로 나와 함께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해서 연습해 본다면, 욱을 다스릴 줄 아는 더 훌륭한 형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