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똥
<김녀사네 장미 이야기 3>
“애니웨이 똥”
:예전엔 아니었지만
반려인에게 날씨체크는 필수입니다.
오늘 날씨 상태에 따라 강아지의 산책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반려인은 부지런히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보고, 네이버에 ‘오늘의 날씨’를 검색해야만 하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가족은 1년 전부터 날씨를 체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혹시 무책임하게 산책을 안 시키는 거 아닌가요?”
라는 질문은 사양하겠습니다.
넣어두십시오.
견생 8년 차, 그리고 15년째 살고 있는 구축 아파트의 타일이 갈아 없어질 때까지, 장미는 오늘도 부지런히 발톱 타탁이며 산책 중입니다. 최근 아파트 보도블록 공사를 했는데요,
“우리 장미가 닳아 없어지도록 산책해서 교체한 거야.”
2년째 동대표를 맡고 있는 장미 애비의 말입니다. (사실 여부는 확인 불가)
우리 가족이 날씨체크를 하지 않게 된 건, 장미가 ‘애니웨이 똥’ 모드로 바뀌면서부터입니다.
장미는 언제부턴가 실내에서 응가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먹는 것에는 유독 예민했던 강아지였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참 무던한 성격이었는데 말이죠.
인간에게는 슬프지만 장미에게는 다행인 사실 하나.
우리는 15년째 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사 가고 싶다!)
그래서 장미가 우리 집에 오자마자 지금까지, 장미의 배변 화장실은 거실 한쪽, 정확히 8년째 같은 자리입니다. 쭉 이어져 온 패턴 덕분에 배변 문제없이 무탈하게 지내왔지요.
그런데 1년 전부터 장미는 집에서 소변만 보고, 대변은 절대 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반려인은 단번에 압니다.
이 친구들 항문만 봐도
‘아, 곧 응아가 분출되겠구나.’
하는 그 낌새 말이지요.
언제인가 부터 장미는 항문 시그널이 분명한데도, 절대로 응아를 싸지 않았습니다.
괴로워하며 낑낑대고, 저를 발로 긁고, 나가자고 간절히 졸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장미의 실외 배변 생활.
우리 가족은 1년이 넘도록 하루 두 번, 빠짐없이 산책을 나가고 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폭염으로 내가 먼저 녹아내릴 것 같아도
장미의 응아를 위해 온 가족이 출동 중입니다.
한 번은 제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눈이 쌓여, 걷는 중에도 우산 위에 쌓인 눈을 중간중간 털어내야 할 만큼이었죠.
온 가족이 베란다에 비친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우리 장미는 어김없이 애니웨이 똥 신호를 보냈고,
가족 회의 끝에—아니, 가위바위보 끝에—
중학생 아들이 당첨되었습니다.
아들은 눈을 뚫고 응아 산책을 다녀왔고, 산책이 끝난 뒤 눈사람이 된 아들과 장미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제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은,
인스타 하수인인 저에게 역대급 조회수를 안겨주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변한 장미의 실외 배변으로, 우리 가족은 지금도 하루도 빠짐없이 1일 2산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글로 쓰니 유쾌해 보이지만, 실상은 하루하루가 작은 전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미를 향한 마음이 크기에 온 가족이 군말 없이 시간을 나눠 산책을 해주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다만 한 가지 우려가 있다면, 이렇게 바뀐 장미의 ‘애니웨이 똥’이 혹시 소변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현재는 대변만 실외 배변이라 하루 두 번 산책이지만, 소변까지 실외라면…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장미가 완전히 노령견이 되어 소변까지 실외에서 보게 된다 해도, 아마 우리 가족은 하루 다섯 번이라도 나갈 겁니다. 모든 순간이 늘 기쁜 마음이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변해가는 장미를 위해 언제든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그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유주연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이제 우리 강아지도 나이를 먹고, 내 강아지가 노령견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마주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즘 장미의 달라진 모습들을 하나둘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변한 배변습관, 갑자기 늘어난 식탐, 활력의 변화, 잠의 패턴까지. 신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일상 속 습관들도 많이 달라졌더군요.
‘우리 장미 맞나?’
싶을 만큼 낯설 때도 있지만, 이 변화들은 지금의 장미와 우리의 현실을 점검하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신호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변화들을 외면하지 않고 하나씩 바라보며 노령견이 되어가는 장미를 조금 더 잘 이해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