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아이는 주의집중력이 낮고 충동성과 과잉행동이 높은 예비 초등 남자 아동이에요. 평소 행동이 크다 보니 유치원에서 몇 차례 주의를 받았던 경험이 있어요. 아이의 문제행동을 수정하고 연습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이제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니,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가족 모두 도왔어요. 물론, 단번에 아이의 문제행동이 줄지는 않았지만, 과거보다는 또래들과의 갈등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최근에는 아이가 학교에서도 자기를 조절하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연습을 해보려 하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물감 놀이와 미술 활동을 좋아했던 아이를 위해 그림을 그려 완성해볼까 했어요. 과연 방에서 물감을 활용한 미술 활동이 가능할지 걱정이 앞섰지만, 최근 긍정적으로 변한 아이를 생각하며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와.
정말로 모든 순간순간이 고비였고 전쟁이었습니다. 하라는 종이에는 하지 않고 책상에 붓질하는 것도 모자라 모든 물감을 종이에 가득 짜더군요. 잔뜩 짠 물감을 손으로 비비고 그 손으로 저에게 장난친다고 다가와 묻히고 저는 소리 지르며 피하기 바빴습니다.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그만하고 손 닦자!”라고 했고, 아이는 물감 묻은 손을 작은방 손잡이를 덥석 만져 열고 화장실 스위치에 물감을 바르는데, 결국 화가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집에서 미술 다신 안 해!”를 외치며 전쟁 같던 물감 활동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 예비 초등학생인데 언제까지 아기처럼 화장실 벽에 다만 물감 활동을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물감 활동을 떠나 학교에 입학하면 수업시간에 그림을 완성해서 내는 경우도 분명 있을 텐데 우리 아이가 과연 협조가 될지도 걱정이에요. 그렇다고 지금과 같이 전쟁 같은 상황을 감수하며 방에서 연습시키며 활동할 수도 없고요.
주의집중력이 낮고, 충동성과 과잉행동이 높은 예비 초등 아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이 있을까요?
최근 ADHD 경향을 보이는 아동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반드시 ADHD로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주의집중력, 충동성, 그리고 과잉행동과 관련된 어려움을 호소하는 아동들이 늘어나며 현장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아동을 자주 만나게 된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전문가이지만 나조차도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아동에게 물감 활동은 꽤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니 어머니들이 얼마나 당황하고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큰 틀 안에서 무던하게 대처한다면 얼마든지 주의집중력, 충동성, 그리고 과잉행동이 있는 친구들도 물감 활동은 가능하다.
무던하게 물감 활동을 하는 첫 번째는 바로 큰 틀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ADHD 경향이 있는 친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제한설정’이다. 이 제한설정이 없으면 물감 활동을 떠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일이 매끄럽게 흘러가긴 어려울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제한설정이 3가지를 넘기지 않도록 하며 활동을 시작하기 전 몇 차례 반복해 언급해줘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제 곧 물감 활동을 할 거야, 하기 전 엄마랑 몇 가지 약속하자.
1. 책상 안에서만 물감 활동을 할 것,
2. 물감 묻은 손으로 엄마에게 장난치지 않을 것,
3. 물통을 책상에 쏟지 않는 것이야. 만약,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물감 놀이는 바로 그만할 거야. 알겠지?”
라고 제한설정을 언급해주면 된다.
큰 틀을 제세하고 서로 합의된 약속을 아이와 공유했다면, 이제는 즐겁게 활동할 때다. 이때 중요한 것은 ‘큰 틀 안에서 문제행동에 대해 무던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종이 위에 거칠게 붓칠을 하거나, 물감이 책상에 묻으면 어떠한가. 규칙 1번을 준수하면서 활동하면 그만인 것이다. 활동하다 보면 손에 물감이 묻기도 한다. 이때는 고의든 아니든 물감이 묻은 손으로 엄마에게 장난만 치지 않는 규칙 2번만 지키면 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쓱 물티슈를 제시해 줘도 되고, 아이가 불편해하지 않다면 활동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켜보는 것도 무관하다. 핵심은 부모가 큰 틀을 정하고 아이와 합의된 약속을 지키면서 나머지 모든 상황에 대해 무던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둘째, 자기조절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풍족한 재료는 독이라는 것이다.큰 틀을 제시했다면 다음은 재료에 대한 고민이다. 옛날 사람인 나 때와 다르게 12색이 고작이던 물감이 48색으로 넘쳐나며, 튜브 타입뿐만 아니라 고체형 물감도 다양하게 나와 있다. 과거에는 화방에서만 구할 수 있던 미술 전문용품들이 대중적인 가게인 다이소에도 갖춰져 있어서, 일반인들도 손쉽게 미술용품에 친숙해질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내가 요즘 아이들을 만나러 가정에 방문하면 나의 재료 가방이 초라해져 보일 만큼 다양한 미술용품이 준비되어있다. 그러나 자기조절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아동에게 다양한 미술 재료는 과도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책상 위의 재료를 계속해서 살펴보고 싶은 충동으로, 종이에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48가지 색을 사용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작업에 집중해야 하지만 시간 대부분을 재료탐색에 사용하며 실제 작업에 필요한 주의력이 부족해진다. 따라서 자기 조절력이 떨어지는 아동에게는 무던한 물감 색 선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3개에서 5가지의 색깔로 제한하여 활동하는 것이 좋다. 5가지의 색을 사용하더라도 충분히 창의성을 촉진하고 멋진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다만, 이 사례의 아동은 7살의 예비 초등학생이므로 완성에 대한 집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동이 5세 이하인 경우, 미술 활동은 재료탐색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여 창의성과 상상력을 즐겁게 발휘할 기회로 삼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나 5세를 넘어선 아동이라면 이제는 주의 집중하여 미술 활동의 과정을 즐기며 완성의 성취감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완성된 작품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핵심은 아이가 모든 주의력을 재료탐색에 소진한 뒤, 유치원과 학교 선생님의 완성압박에 서둘러 1초 만에 완성하는 그림만 아니면 되는 것이다.
활동 1. 물감은 보조적인 재료로 활용해보기.
모든 그림을 물감으로 채색할 필요는 없다. 더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단단한 매체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통제 가능한 매체로는 연필, 색연필, 사인펜, 매직 등이 있으며, 물감은 상대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매체임을 기억하자. 자기조절이 어려운 아동일수록 단단한 매체를 활용하여 세부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리고 배경과 같은 넓은 면적은 물감으로 채색하여 전체적인 작품을 완성해보는 것이 좋다. 물감으로 모든 그림을 완성할 필요는 없으므로 물감을 보조적인 재료로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 그리기
활동 2. 스펀지를 활용해보기.
붓이 물감 활동에 필수적이지는 않다. 사실, 붓은 모든 미술 도구 중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편에 속한다. 활동 1에서 언급했듯이 물감 자체도 통제하기 어려운 매체인데, 이런 물감과 함께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붓을 사용하는 것은 작품을 완성하는 데 굉장한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스펀지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스펀지에 물감을 묻혀 종이에 두드리며, 아이들은 자신의 힘을 조절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강하게 두드리면 물감이 진하게 뭉쳐나오며, 약하게 두드리면 물감이 연하게 나타나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아이가 과거에 물감만 사용하면 그림이 망치는 것 같아 좌절감을 느꼈다면, 이제는 스펀지와 물감을 활용하여 완성도 높은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아이의 자기조절기능 향상뿐만이 아닌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가을낙엽
나만의 상상동물
그러므로 주의집중력이 낮고 충동성이 높은 아이들도 가정에서 즐겁게 부모와 함께 물감 활동을 할 수 있다. 다양한 재료가 아닌 무던하게 제공된 재료만으로도 아동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정리할 수 있다. 부모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아이의 창의성과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주의집중하는 모습을 존중하고 격려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규칙이 정해져 있는 큰 틀 안에서 무던하게 활동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