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플댄스반을 개강하고 나니 금남의 집 아니 금남의 학원인 우리 댄스학원에도 남성 수강생들이 물밀듯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여성비율이 높긴 하지만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서 그런지 이 셔플반은 서로 수줍어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남성들의 나이대는 40대 중반이나 50대 중반사이였는데 모두 삶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피곤에 찌든 얼굴은 황토빛으로 푸석푸석하고
흡사 둥근 구릉 같은 배는 가파른 곡선을 이루었다.
하체근육은 재빠른 스텝을 소화해내지 못할 정도로 약하고 비실거려서 그동안 운동을 도외시한 티가 만연했다.
그런데 2주 차, 3주 차가 지나고 나니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 배우는 셔플댄스가 재미있는지 안색은 밝아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연신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리고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얼굴엔 윤기가 흐르고 가파른 배의 곡선도 점점 완만해지는 것이었다.
차츰 동작의 폭도 넓어지고 제법 셔플댄스 태가 났다.
이렇게 저녁 술자리의 유혹을 이기고 많은 여성들 틈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팔짝팔짝 뛰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집에 있는 남편생각이 났다.
오늘도 치킨을 시켜 소주를 마시고 있는 건 아닌지....
결혼기간 내내 운동이라곤 숨쉬기운동이 전부인 남편이다.
술을 진탕 먹고 나면 곧바로 침대로 달려가 대자로 뻗어 바로 드르릉 코 골며 자는 남자......
갑자기 자기관리하는 멋진 남자들과 비교되어 불룩한 술배를 자랑하는 남편이 한심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며칠째 남편이 묻는 말에 툴툴거리고 비아냥대는 말투로 대답해오고 있었다.
남편은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루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남편이 꼴 보기 싫기 시작하니 모든 게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말투, 행동, 습관, 수입, 시댁문제......
결혼하기 전 남편에게 반했던 장점들이 단점으로 다가온 지는 오래되었지만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온 세월이었는데 어느 한순간 종이 한 장차이로 밉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며칠 동안 자기 관리도 하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하다 갑자기 드는 생각,
'나는 그럼 과연 완벽한 사람인가?'였다.
남편이 보기에 나는 못마땅하고 미숙한 점이 없을까?
낮밤이 바뀌어 가족들 밥도 못 챙기고
우울과 무기력한 날이 많아
집안 청소상태도 엉망이고
주식에 즉흥적으로 투자해서 돈을 잃기도 했다.
그리고 맞벌이할 능력과 체력이 되질 않아 혼자 외벌이로 고생해 온 남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큰 불만을 가지거나 타박하지 않는 사람이다.
술을 좋아하고 긴장을 술로 달래는 것일 뿐 술주정도 없고 술 때문에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성실한 사람이다.
학원에서 춤추는 남자들을 보고 순간적으로 남편과 비교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된 내가 부끄럽다.
학원에서 돌아오니 안방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내일 남편의 얼굴을 마주 보면 따지고 훈계하듯 말하지 말고 부드러운 말투로 이제 당신의 건강도
좀 돌보라고 내 진심을 전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