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뭐야?
아직도 먹고 있어?
도대체 몇 시간이나 먹고 앉은 거야?
당신 이렇게 죽치고 앉아 술 먹는 거 정말 지겹다.
식탁이 더러워 죽겠네!
뭐 이렇게 더럽게 먹은 거야?
좀 치워가며 먹어!"
힘든 헬스를 끝내고 돌아오니 남편과 아이들이 먹은 족발과 쟁반국수 흔적으로 식탁이 지저분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그 순간 남편과 아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당신 배 좀봐
심각한 거 못 느껴?
곧 터질 것 같아!
그렇게 허구한 날 술이나 먹고 운동도 안 하니 점점 배가 더 나오잖아!
다른 남자들은 자기 관리도 잘하던데,
아휴!
이제 당신하고 같이 다니기도 부끄럽다."
평소에는 잘 참다가 오늘은 필터도 거치지 않고 속에 있는 말을 적나라하게 다 해버렸다.
있는 대로 짜증을 내고 나면 속은 좀 시원한데 시간이 지나면 미안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다음에는 감정을 좀 죽이고 예쁘게 말해봐야지 하고 다짐을 해도 잘 안된다.
아무한테나 그런 건 아니다.
유독 남편한테만 퍼붓게 된다.
전형적인 강약약강!
내가 이렇게 분노와 짜증을 낼 때 남편은 침묵한다.
나는 불안형이고 남편은 회피형이 맞다.
나는 추격자형이고 남편은 도망자형인 것도 맞다.
누가 먼저 불안했고 누가 먼저 회피를 했는지
누가 먼저 추격을 하고 누가먼저 도망을 다녔는지
그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우리 부부는 이런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부부싸움 끝에 서로의 성향을 알게 되었고
서로의 분노 발작버튼을 누르지 않으려 노력한 결과 지금은 예전보다 잘 살고 있다.
아버지는 평생 엄마의 짜증과 분노를 받아주셨다.
일방적으로 퍼붓는다는 말이 정확하다.
자신의 불행에 대한 한과 화를 온순한 아버지에게 다 쏟아내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한계에 다다르면 극한부부싸움이 일어나곤 했다.
엄마도 나도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버지가 엄한 가장이었다면
남편이 강한 남편이었다면
그래도 엄마와 내가 이렇게 맘껏 화를 낼 수 있었을까?
누울 자리보고 다리 뻗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아버지와 남편이 원인제공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했으며
남편도 여러 가지 이유로 나의 분노를 유발케 한다.
그렇다고 내 분노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분노해 봤자 나만 손해라는 것이다.
남편이 원인제공을 했든 어쨌든 필터를 그치지 않은 나의 감정표현은 남편에게 결국 상처를 남기고
억압하고 회피했던 감정들은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나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불행하고,
아이들이 불안해하고 잠재적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손실일지도 모른다.
남편이 가장의 중심을 잘 잡도록,
가장의 권위가 서도록
내가 먼저 존중하고 싶다.
남편이 왕이 되어야 내가 왕비가 될게 아닌가?
유약한 남편이 아니라 부드러운 남편이라서 소중하다고 고마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