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준비는 없겠지만, 준비가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소식을 들었다!
간혹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말을 일상에서 사용하는데, 이는 소식이 없다는 것은 곧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기쁜 소식이나 다름없다는 좋은 의미로 표현되는 말이다.
여기서 표현하고 있는 희소식(喜消息)이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을 뜻하고 있다. 이와 반대되는 슬픈 기별이나 소식을 뜻하는 단어는 비보(悲報)로 표현한다.
이틀 전, 같이 근무했었던 팀장님의 부친상 소식을 들었다.
불과 3개월 전까지 같이 근무했었던 팀장님이었다. 아니, 이 소식을 전해 듣기 하루 전,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때까지는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니 느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출근길에 부서 단톡방에서 부친상을 당하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지? 원래 병환이 있으셨나? 그런 얘기 들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장례식장에 찾아갈 상황도 되지 않았다.
이건 핑계일 수 있다. 외국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대한민국 어디든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기에...
어쨌든, 소식을 들은 후 연락을 취하기는 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드려야 될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병환이 있으셨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보다 수월하게(?)
얘기를 꺼낼 수 있었을 테지만,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상황이라면 어떤 말로 시작해야 될지...
괜히 무언가를 더 물어봐야 될 것만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까 싶어 더 연락은 하기 힘들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상대방은 이런 고민은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경황이 없으셔서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할 시간조차도 없을 테지만...
업무 내부 전산망을 보면, 직원의 경조사에 대해 알려주는 화면이 있다.
인간관계가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니기에 딱히 아는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간혹 같이 근무하셨던 분들의 이름이 올라오면 한 번씩 들어가서 챙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특히, 결혼이나 돌잔치 같은 경사보다는 조사가 눈에 더 들어오는 게 사실이다.
얼마 전에는 같이 근무했던 과장님의 남편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팀장님의 부친상...
이런 소식은 정말 듣기 싫은 내용이다. 그냥 만날 '잘 지내고 있다더라'는 밝은 소식만 들었으면 좋겠다.
괜히 마음이 쓰이고, 찹찹한 심정이 든다.
한 편으로는 솔직히 우리 가족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매 순간 들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건, 실제 상황을 마주한다는 것도 무섭겠지만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소름감이 돋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다.
죽음, 이별, 헤어짐, 안녕(끝인사로서의 의미), 잘 지내, 잘 살아...
이런 종류의 단어와 인사말은 듣기도 싫고, 별로 하기도 싫은 말이다.
시작이 아닌 끝을 달려가는 듯한 의미의 단어와 인사말...
직접 꺼내는 것도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 자체도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것 같다.
무언가를 대비해서 준비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별에 대해서는 경험을 해봤다고 해도 익숙해지는 일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이별에 대해서는 준비 자체가 하기도 힘들고, 제대로 되지도 않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고 하지만...
그 만남 자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이별 또한 그렇다.
이 두 가지 공통점 또한, 특정 누군가를 위해 맞춤형으로 준비할 수는 없다는 것 같다.
만남의 대상을 미래의 배우자로 예를 든다면...
이상형은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꼭 이상형을 만나리란 법도 없고, 그 이상형이 나타난다고 해도
누군지는 전혀 예측불가하다. 그렇기에 특정인과의 만남을 위한 준비는 애초에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별 또한 마찬가지다.
같이 살아가기도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인데... 왜 그 사람과의 이별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
되는 건지...
여기서 말하는 이별은 단순한 연인과의 헤어짐 보다는 죽음에 대한 의미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태어나면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볼 수 있긴 하지만, 예측도 불가하고 굳이 이런 준비를....
상대방이 시한부 인생을 판정받지 않는 이상 행복하게 살아갈 시간도 부족한데 왜 우울하게 헤어짐에
대해서 미리 고민을 하고 준비를 해야 되는 걸까?
과연 이러한 준비과정은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일까?
남아 있는 사람들이 보다 심적으로 편안해지기 위함은 아닐까?
돌아가신 후에도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시간도 주어지기에, 예측하기도 힘든 이별에 대해 미리 준비하기
보단, 생전에 더 많은 추억과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가는 게 더 좋은 건 아닐까?
이별, 헤어짐...
평소 생각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단어이지만 가끔씩, 한 번씩 꽂혀버리는 순간이 있으면
꽤 길게 엉뚱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불안한 생각들이 이어지는 경험들을 하는 편이다.
절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도 않을 그런 헛된 상상들을...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런 이별에 대한 준비 과정은 소모적이란 생각을 더 가지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만남, 기다림, 설렘
이런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 단어가 참 좋다.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고,
나뿐만 아니라 주위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더해 주는 것 같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오늘 하루... 이번 주... 이번 달... 올해...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지낸다면 하루가 즐겁고, 한 주가 새롭고, 한 달이 기대되고, 일 년 동안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