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일 - 1일 = 339일

시작은 항상 끝을 향해 달리는 것과 같다.

by 관돌

시작이 있다는 것은 곧, 그 끝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은 아버지 기일이다.

횟수로 33번째...


어머니께서 줄곧 도맡아 준비를 해오셨다.

형한테 1~2년 정도 넘긴 적도 있었지만,

특수한 사정으로 다시 어머니께서 모시게 되셨다.


이제 올 추석 차례상을 끝으로

어머니는 다시 형한테 제사를 넘기기로 예정되어

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오늘이 이제는

아버지의 마지막 기 제사인 셈이었다.


평일이라는 좋은 핑계로 누나와 난

출근을 이유로 제사 준비를 도와드리지 못했다.

형 또한, 아직은 타지에 있다 보니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건 랜선을 통한 제사 참여가 현재까지는

전부였다.


죄송한 마음이 컸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에...

대신에 최대한 퇴근을 빨리해서 제사에 임하는 게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막내 꼬맹이 덕분에 흐뭇하기도 하면서

뭔지 모르겠지만 가슴 뭉클해지는 느낌도 받았다.


이 녀석은 외할아버지를 실제 본 적도 없었다.

(참고로 이 녀석 = 누나네 막내딸)

외할머니를 정말 좋아하고 잘 따르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외할머니가 힘들어하는 건 질색해서

이제 고작 11살임에도 마음 씀씀이가 깊어 보인다.


오늘도...

학교를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유가 외할아버지 제사 준비를 위해 외할머니

혼자서 준비하시기 힘들고, 본인도 제사 준비에

꼭 있어야 된다고 우긴 끝에 결국 하루 땡땡이를.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휴~ 요놈 학교 가기 싫으니깐 별 핑계를 다 대는구먼'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큰 오산이었다.


요 녀석은 외삼촌이 민망해질 만큼 그 말에

진심이었다. 진짜 외할아버지 제사 준비에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혼자 준비하시는 외할머니의 수고를 덜어드리고자..

정작 자식인 난 회사 핑계로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했지만, 이 녀석은 장 보는 것부터 전 준비하는

것까지... 그리고 할머니의 말동무도 되어드리고

커피 준비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챙기는 모습이 흡사

11살 꼬맹이가 아닌 30살은 더 지난 경험 많은

어른의 모습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제사상에 올릴 술을 사러 같이 데려갔는데..

"삼촌! 외할아버지는 맛있는 술 사드려야 될 것

같아요."

라면서, '백화수복'이라는 청주를 골랐는데...

'얘는 뭐지? 진짜 외할아버지 본 것처럼 얘기하네?'

ㅋㅋㅋ 대견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어머니의 마지막 제사상 차림.

그리고 제사가 끝난 뒤에는 정말 아는 건지...

아니면 본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외할머니 옆에 달라붙어 애교를 부린다.

적적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 기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 형이 귀국하면 다시 본격적으로

모실 예정이기에...


시원섭섭하신 모양이시다.

음복을 하시는 어머니의 표정이 썩 밝지만은

않으셨다. 준비를 하실 때는 힘들어하시지만

막상 끝내려니 시원 섭섭...

아니 어쩌면 마음의 준비가 아직도 덜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33년 전부터 의도치 않게 준비해 오신

제사상이었다.

그 끝을 맺는 시기는 정해져 있기에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맘처럼 쉽게 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훌훌 털어버리고 편안하게 놓아줄 수 있는 것 또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당분간 마음은 허전할 수 있을지 몰라도...

33년 동안 한결같이 지켜온 당신의 정성과 노력이

물거품 되지 않도록 자식들 또한 잘 모실 예정이니

편안한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지방이 활활 잘 태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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