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감자와 개나리

by 하얀

따듯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가정통신문에 감자심기가 있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아이들도 텃밭에서 몸도 풀고 간식도 먹는 시간이었다. 몽 선생님이 교과서 대신 장갑 네 켤레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은 교실 말고 밖으로 나갈 거야. 우리 텃밭에 감자 심으러."

"오늘 드디어 감자 심는 날인가요?" 마루가 눈을 동그랗게 만들며 물었다.

"저 감자튀김은 좋아하는데, 심어본 적은 없어요." 텃밭 활도인 처음인 누리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아이들은 킥킥거리며 교실 뒤편 텃밭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비닐 소리를 들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풀 냄새를 맡으며 새로운 놀이터에 나온 것 같았다. 텃밭에 도착하자 검은 비닐이 단정하게 덮인 세 개의 고랑이 아이들을 맞았다. 그 옆으로 씨감자와 모종들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와, 이거 누가 준비해 놨어요?" 누리가 신기한 듯 물었다.

"우리가 미리 정리해 뒀지." 마법사처럼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 네 분도 함께 걸어오셨다. "일주일 전에 흙도 뒤집고, 비료도 주고, 비닐까지 깔아 뒀어. 오늘은 너희가 직접 심기만 하면 돼."

"얘들아~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해야지~" 몽 선생님이 소개했다. " 그리고 앞으로 텃밭 활동은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함께 도와주실 거야."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90도로 인사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해요!" 넉살 좋은 누리가 아이들이 인사하는 동안 큰 소리로 사랑고백을 했다.

"그래그래, 잘 왔다. 자, 그럼 오늘은 감자랑 파, 상추를 심어볼 거야." 한 할아버지가 씨감자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너네 씨감자가 뭔지 아니? 이게 씨감자인데, 감자를 그냥 심으면 나중에 더 키워서 먹을 수가 없어. 그래서 씨감자를 심어서 재배용으로 심는 감자야. "

"그럼 씨감자는 못 먹어요?" 감자를 좋아하는 도담이가 코를 찡긋거리며 여쭤봤다.

"씨감자도 먹을 수 있단다. 이따가 다 심고 남으면 선생님께 삶아달라고 해라." 할아버지가 아이들의 질문에 하나씩 답해주셨다. 설명해 주시는 할아버지와 아이들 곁에서 도와주시는 할머니의 손길로 한 명씩 비닐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반장 할아버지가 조금씩 떨어져 있는 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싹이 난 부분이 위로 가게 해서 심어야 해."

"싹이요?" 마루가 씨감자를 이리저리 돌려봤다. "아, 이 볼록한 거요?"

"맞아. 똑똑하네. 그게 싹이 나올 자리야." 할아버지 말씀에 따라 싹이 난 부분이 위로 가게 심으면서도 밑으로 심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장난기가 발동한 마루는 새온이를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새온이도 알았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할머니 한 분이 시범을 보이며 설명했다. "이렇게 구멍에 넣고, 흙을 살짝 덮어주면 돼.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게."

새온이 먼저 씨감자를 집어 들었다. 조심스럽게 구멍에 넣고 흙을 덮었다. 생각보다 간단했지만, 왠지 조심스러웠다.

"잘했어, 새온이." 할아버지가 옆에서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딱 좋아."

"저도 할래요!" 누리가 씨감자를 집어 들었지만, 어느 쪽이 위인지 헷갈렸다. "할머니, 이게 맞아요?"

할머니가 부드럽게 씨감자를 돌려줬다. "이쪽이 위야. 봐, 이렇게 싹이 나오는 부분이 있잖아."

"네! 알겠어요." 누리가 환하게 웃으며 감자를 심었다.

도담은 묵묵히 할아버지의 손놀림을 따라 했다. 한 개, 두 개. 점점 익숙해지자 속도가 붙었다. 마루는 제일 빠르게 감자를 심어나갔다. 새온이와 무언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빠르게 끝내야 했다. 새온이도 마루와의 눈빛약속을 지키기 위해 텃밭 일부를 남겨두었다. 모두들 씨감자 심기에 집중한 사이 새온이와 마루는 마무리하는 듯 보였지만, 남겨두었던 자리에 결국 싹을 거꾸로 심으며 둘이 킥킥거리고 있었다.


예상보다 빨리 감자심기가 끝이 났다. 시작할 때 할아버지가 아이들 먹으라고 먼저 빼둔 씨감자만 남아있었다. 몽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간식시간을 주고 싶었다. "이건 바로 쪄 먹어도 되는데. 우리 감자 쪄서 먹자."

"진짜요?" 도담이의 눈이 반짝였다.

잘 자란 감자로 감자튀김을 해 먹겠다고 이야기했던 누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선생님... 저 사실은 감자를 못 먹어요. 저는 꽃을 먹을게요."

"누리야? 꽃을 먹는다고? "몽 선생님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안경을 올리며 누리를 보았다.

"누리야, 감자 안 먹고 다른 거 먹어도 돼. 선생님이 사이다랑 간식 가져올게."

"아니에요~ 선생님 저는 텃밭 옆에 있는 개나리를 먹을게요." 누리는 개나리를 한 움큼 따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몽 선생님은 가끔 엉뚱하고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 누리라고 생각했지만, 감자대신 개나리를 먹는 누리가 괜찮을까 걱정이 들었다.

작은 탁자와 캠핑의자를 꺼내서 둘러앉아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서로의 손바닥을 비교했다. 새온의 손엔 자그마한 물집이 잡혀 있었고, 마루는 손톱 사이에 낀 흙을 파내느라 바빴다.

"가을에 우리가 심은 감자 먹을 수 있겠지?" 도담이 텃밭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연하지. 우리가 심었는데." 새온이 담담하게 답했다.

"새온이랑 거꾸로 심은 감자는 어떻게 자라게 될까?" 마루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땅속으로 들어가는 거 아냐?" 누리가 농담반 진담반 말했다.

아이들의 농담 같은 진심스런 이야기가 이어져 가고 있을 때, 몽 선생님이 김이나는 감자를 들고 나오셨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이들은 호호 불어가며 감자를 입에 넣었다.

모두가 말없이 감자를 씹었다. 특별한 양념도 없는데, 이상하게 달고 고소했다.

"선생님, 이거 진짜 맛있어요!" 도담이가 환하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너희가 오늘 진짜 열심히 했나 보다. 감자가 이렇게 맛있다고 느끼는 게." 몽 선생님이 사이다를 나눠주며 말했다.

아이들은 감자와 사이다로 즉석 파티를 열었다. 햇볕 아래서 캠핑의자에 앉아 각자의 방식으로 감자를 먹었다. 껍질까지 먹어야 맛있다는 마루는 입가에 팔자주름을 만들며 먹었고, 먹는 것도 우직해 보이는 도담이는 감자를 입에 넣고 손가락으로 살짝 소금을 찍어 먹었다. 새온이는 감자에 소금과 설탕의 최고의 궁합을 찾아야 한다며 소금과 설탕을 여러 번 찍었다. 세 아이들과는 다르게 따온 개나리 잎을 하나씩 입에 넣고 음미하는 누리까지. 몽선생님은 전교생 4명이 모두 제각각이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감자 개나리 먹방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의 모습에 가끔 놀라기도 하지만, 오늘 하루도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는 것에 선생님의 하루 역시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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