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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Feb 27. 2024

0도씨

목숨 걸고 달려야 하는 온도

3시간을  그냥 앉아 있으면 되는데  가만있지를 못하겠다. 아이가  스키수업을 2시간째  하고 있다. 중간에 아이를 빼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저번주에 눈이 쏟아지는 길 위를 달렸다.  겁도 없이  눈발이 휘몰아치던  대관령을  넘어 양양으로 오고 있었다. 자동차 사고가 아니라  심장마비가 올 것 같았던  저번주가  생각이 났다.  저번주도 스키강습이 끝나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을 때 출발했었다.  분명 눈이 와도 고속도로는 괜찮다고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 둘과 아이 친구까지. 3명의 아이를 태우고 스키장을 출발할 때만 해도 빨리 양양에 도착할 생각뿐이었다. 도착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라탕집에서 몸을 녹이며 마라탕을 먹자고 했었다.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알게 되었다.  안개상습구간이라는 것을. 안개로 인해 앞차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들 비상등을 켜고 40킬로 정도로 달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앞차조차도 안 보이지?'

뒤에서 스키가 재미있어졌다는 아이친구의 말도 무시하게 되었다. 도착하면 마라탕을 오늘 먹을 거냐는 체리의 말에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럼 언제쯤 도착하냐는 찰리의 말에도 빽 소리를 질러버렸다. 

"엄마 지금 운전에 집중해야 하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줄래?"

사실 소리를 지른 것이었는지,  화를 냈었는지, 조금 큰 소리로 상황을 설명했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났다. 다만 너무 긴장해서 벌벌 떨면서 운전했던 기억뿐이었다. 

가는 동안에 눈이 펄펄에서 펑펑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나름 운이 좋았는지 제설차 뒤에 뒤에 붙어서 40킬로라는 속도로 가고 있었다. 제설차 뒤에라도 가서 다행이라고 계속 생각했다. 차선을 바꾼다는 것은 어림없는 소리였다. 50분이면 올 거리를 1시간 40여분이 걸려서 양양 톨게이트 표지판이 보였다. 

'제설차가 그냥 직진하면 어쩌냐... 톨게이트 나가서 제설 안 돼있으면 어째.... '

심장이 쫄렸다 펴졌다 하면서 그렇게 톨게이트 방향이 보였다. 제설차가 내가 갈 방향으로 먼저 가고 있었다. 속으로 다행이다를 외치며 더 거북이 같은 속도를 냈다. 

"얘들아. 아무래도 오늘 마라탕은 못 먹겠다.  각자 집에 가서 알아서 먹는 걸로 하자."

평소 같으면 마라탕을 안 먹는다고 난리를 부렸을 아이들이 군소리 없이 알았다고 했다. 본인들도 중간에는 좀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컵라면을 먹게 하고 하루종일 누워있었던 저번주였다. 


'아 또 똑같은 목요일이야... 목요일만 눈이 오게 설정이라도 한 거냐...'

'3시간짜리 스키수업에서 1시간을 빨리 빼야 하는 하는 게 맞을까?'

최대한 시킬 수 있을 때까지 시켜야겠다. 도저히 안 되겠다. 가야겠다. 분명 저번주도 비슷한 시간부터 눈이 왔다. 그렇다면 12시까지 시켰을 때 눈이 쌓이고 가면서 또 고생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도로 영상을 확인해 봐야겠다. 역시나 안개구간은 잘 안 보인다. 그래도 아침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다. 안개 때문에 긴장하게 되는 게 더 많으니 안개라도 덜 할 때 가야겠다. 


"강사님. 찰리엄마예요. 아무래도 찰리는 지금 가야 할 것 같아요. 눈 때문에 더 이상 수업을 못할 것 같아요."

찰리를 만나자마자 역시 못하는 1시간을 아쉬워한다. 

"찰리야 1시간에 우리 목숨 걸지 말자."

이제 막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차에 도착하니 뒷 유리에 살짝 눈이 쌓여있다. 가지고 있던 종이로 빨리 눈을들 치워버리고 시동을 걸어본다. 

'아.. 오늘도 제발 무사히'


생각해 보니 아까 강사님한테 전화를 걸면서 날씨상황을 봤다. 1도에서 0도로 넘어가는 시간이 12시로 보았다. 눈이 오더라도 얼지만 않으면 되니까. 맞다. 내가 찰리를 데리고 중간에 뺀 이유는 0도가 되기 전에 양양에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0도가 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0도가 되면 눈으로 오고 그전에는 비로 온다더니 그것도 다 거짓말이다. 아까 분명 3~4도 정도였을 때도 눈으로 왔다. 앞도 잘 안 보인다. 그래도 저번주에 경험했다고 대관령 구간을 조심히 넘어가 본다. 

'저번주에 분명 여기쯤에서 제설차가 보였던 거 같은데.. 오늘은 왜 안 보여'

반대편에 제설차가 보인다. 이제 우리 쪽도 보일 것 같다. 영동고속도로를 나와 동해고속도로로 진입해도 제설차가 안 보인다. 내 앞에 제설차 두고 운전해야 마음이 편안한데 진짜 안 나온다. 머리에서 제설차와 0도가 아직 안 됐겠지? 생각하며 달린다. 내 옆으로 제설차정류소 같은 것이 보인다. 

'왜 차들이 그냥 있어? 이렇게 눈이 오는데 가만있는 거야?' 

고속도로에 눈이 쌓이다 못해 미끄러지는 느낌이 난다. 제설차들이 그냥 주차되어 있는 걸 보고 지나가면서 화가 난다. 아무래도 오늘은 제설차 뒤에 따라가기는 안될 것 같다. 어떤 차 뒤로 붙어야 좀 나은지 찾아보자. 

오늘은 트럭뒤에 멀찌감치 떨어져 가야겠다. 그나마 트럭이 앞에서 달려줘야 눈길에 바퀴자국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 아까 바로 쌓이는 눈을 달리다 보니 차가 살짝살짝 미끄러진다. 핸들을 꽉 잡아서 가슴팍과 팔이 아프다. 아무리 달려도 아직 집이 멀었다. 내비게이션에 빨간불이 보인다. 

'네비에 눈이 와서 천천히 달려도 그게 반영되나?'

눈이 반영된 것이 아니다. 사고가 났다. 하조대를 지나면서 사고차량이 보인다. 역시 심장이 쪼여온다.  그래도 저번주 눈길을 다녀봤다고 오늘은 아들이 조용하다. 괜히 엄마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걸 배웠는지 아이도 가만히 있는다.  나도 저번주 눈길을 다녀봤다고 오늘은 심장이 덜 쪼그라드는 것 같다. 

이제 곧 지하주차장이다. 

집 입구도 눈으로 난리가 아니다. 그나마 눈이 아직 얼지 않았다. 주차를 하고 아들을 보았다. 

"1시간 일찍 나와서 아쉽지만 그래도 그때 안 나왔음 어쩔 뻔했어. 눈 얼기 전에 와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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