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들의 거취를 고민하며 일어나는 따뜻한 마을사람들 이야기
#모모와 루루
김홍신 문학관에 조그맣고 귀여운 진돗개 두 마리가 놀러 왔어요.
조각가 김용수 씨가 상월면 작업실에서 키우는 엄마 진돗개가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았데요. 자랑하려고 그중 두 마리를 데리고 왔어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하얀 털은 부드러운 바람결에 실려 온 순백의 새벽안개 같기도 하고, 땅 위를 떠다니는 작은 구름처럼도 보였어요.
김용수 씨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관장님과 직원들은 강아지들의 귀여운 애교에 홀딱 반하여 문학관 잔디밭 한쪽 구석을 집으로 내주고 말았어요.
‘이름을 뭐라고 부르지?’
관장님은 김홍신 작가님의 호가 ‘모루’니까 앞글자와 뒷글자를 하나씩 더 하여 암컷은 모모, 수컷은 루루로 이름을 지었어요.
모모와 루루는 문학관의 너른 잔디밭을 신나게 달리기도 하고, 자신의 작은 꼬리를 쫓아 뱅뱅 돌기도 했어요. 서로의 귀를 부드럽게 핥아주다가 가볍게 물거나 하면서 장난을 치며 놀기도 했답니다.
연못이 흐르는 작은 수로에서는 물장구를 치다가 배를 깔고 꾸벅꾸벅 졸았어요. 그럴 때면 누구든지 핸드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찍어댔어요. 관람객들마저 강아지들의 장난에 흠뻑 빠졌어요.
그들은 차츰차츰 문학관의 마스코트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주변 원룸과 주택에서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는 이웃들의 불만이었어요.
문학관 직원들은 회의를 했어요. 모모와 루루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지만, 불편을 겪는 이웃들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문학관 마당을 뛰어다니며 모모와 루루와 놀았던 시간이 추억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이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했어요.
많은 고민을 거쳐 루루는 문학관에 자주 오시는 상월 대명리에 있는 작은 암자의 광덕 스님이 데려갔어요.
모모는 관장님이 자택에서 키우기로 했어요.
#모모의 오아시스
모모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 먹골동 관장님 사택은 도심 한가운데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이었어요.
사택 주변은 높은 아파트들과 시청, 관공서 건물들로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지만, 사택 안은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처럼 고요하고 고즈넉했어요.
그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정원은 자연의 품에 안긴 작은 세계 같았어요. 정원의 중심에는 반듯하게 잘라놓은 듯 한 거대한 바위가 자리 잡고 있었어요.
바위는 대지의 힘을 응축한 듯 단단하고 묵직하며, 세월의 무게를 견딘 듯, 한결같은 존재감을 뽐냈어요.
거대한 바위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커다란 소나무는 집을 지키는 수호신 같았어요. 담장 밖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는 소나무 가지는 바깥세상이 궁금하기라도 하듯이 길게 가지를 뻗고 있었고, 가지 끝에 매달린 잎들은 바람 따라 하늘하늘 춤을 추었어요.
정원 주위로는 관장님이 정성껏 가꾼 작은 텃밭이 둘러싸고 있었어요. 이 밭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듯 다양한 색으로 변하며, 사택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어요.
모모는 그사이를 뛰어다니며 신선한 채소의 향기를 맡았어요. 방울토마토가 열리면 호기심에 코를 킁킁거리기도 하고 이빨로 깨물기도 했어요.
정원을 둘러싼 낮은 담벼락에 모모는 언제든지 두 발을 담벼락 위에 올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어요.
모모의 이런 행동들은 온통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어요. 사람들은 처음에 모모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거나 무서워했어요.
그러나 모모의 커다란 눈망울과 폭풍애교에 마음을 열었고, 가끔 간식을 가지고 와 모모에게 환심을 사기도 했답니다.
#루루의 고행
상월 대명리의 작은 암자. 그곳은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었고, 세상의 소음은 이미 산자락에서 사라지고 없었어요.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목탁 소리만이 이곳의 유일한 배경음이었어요.
그러나 그 평화로운 고요함은 루루에게는 낯설기만 했어요.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점점 예민해져 갔어요.
밤이 되자, 루루는 주변의 작은 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했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바깥에서 지나가는 짐승들의 발소리, 그리고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운에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어요.
결국, 루루는 밤새도록 짖어대기 시작했어요. 짖는 소리는 암자의 고요함을 깨트리며, 조용한 밤을 뒤흔들었어요.
광덕 스님은 루루의 마음을 이해하고 달래려 했지만, 매일 이어지는 짖음은 점점 더 큰 부담이 되었어요. 방문객들이 참선을 하거나 스님들이 수행하는 중에도 짖어댔어요. 절의 스님들과 방문객들은 이런 행동에 점차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결국 스님들은 모여서 루루의 짖는 소리에 대해 회의를 했어요.
마침, 절에 온 반야 식당 주인이 불쌍한 루루의 처지를 헤아려 자신이 데리고 가겠다고 말했어요.
#위안의 빛, 모모의 이야기
긴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하나로 묶은 상은이 골목길에서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어요.
핸드폰을 귀에 바짝 붙인 채 연신 길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쳐다보았어요.
마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관장님과 마주쳤어요. 그녀는 조급한 눈빛으로 다가가 말했어요.
“관장님… 어떡해요”
“어, 상은 씨, 무슨 일 있어요?”
관장님은 상은의 얼굴을 보자마자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어요.
“모모가… 사라졌어요.”
상은의 목소리가 떨렸어요.
“남편이랑 모모랑 같이 있었는데 갑자기 모모가 어딘가로 뛰쳐나갔어요. 지금 남편이 찾으러 다니고 있어요”
그 순간 상은의 핸드폰 벨이 울렸어요.
핸드폰을 급히 귀에 가져다 대며 말했어요.
“찾았어? 모모랑 같이 오고 있다고? 아휴, 다행이다, 관장님! 모모 찾았대요. 남편이 데리고 오고 있대요”
상은은 자신이 부주의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미안함과 불안이 뒤섞인 표정으로 말했어요.
“사실… 제가 갑상선암 판정을 받아 다음 주에 수술을 해요. 우울하고 두렵기도 한데, 모모를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가 돼요.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는데도 자주 보러 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이런 일이 생겨버려서…“
관장님은 상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어요.
“상은 씨, 많이 힘들었지요. 우리 대문은 언제든 열려있어요. 모모가 보고 싶을 때 찾아오세요”
“정말 고마워요, 관장님.”
언제나 반짝이는 눈빛과 쉼 없이 꼬리를 흔들어 반가움을 표현하는 모모는 상은의 마음을 환하게 열어주는 열쇠였어요.
#잃어버린 자유, 깊어지는 허전함- 루루의 이야기
루루가 상월 대명리의 작은 암자에서 반야 식당으로 입양된 후, 처음에는 식당 주인과 손님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듯 보였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반야 식당의 마당은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어요. 오가는 사람들 때문에 개줄에 묶인 채로 제한된 공간에서만 생활해야 했어요.
식당 손님들이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고 간식을 주기도 했지만, 그 순간은 금세 지나가고, 다시 혼자 남겨졌어요. 식당의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하루종일 같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점점 쓸쓸해져 갔어요.
루루는 어딘가 마음 깊은 곳에서 허전함을 느꼈고, 그 허전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져갔어요.
#꿈을 찾아가는 골목길- 모모와의 만남
종훈은 좁은 골목길을 터덜터덜 걷고 있었어요. 머릿속이 복잡했어요.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종훈아, 오늘까지는 결정해야 해. 교과 전형인지 종합 전형인지”
담임 선생님은 오늘 안으로 대학 전형을 선택하라고 했지만, 그게 정말 자신에게 맞는 길인지조차 알 수 없었어요.
대답은커녕 고개만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대학에 가야 할지, 그것조차 의문이었어요.
학교에서는 그저 성적에 맞춰진 하나의 숫자로만 존재하는 느낌이었어요. 진정한 자신으로서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어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듯한 공허함이 마음속에 점점 더 커져만 갔어요.
그때, 문득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았어요. 눈처럼 새하얀 털을 가진 진돗개 한 마리가 담벼락 위에 두 발을 올리고 조용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어요.
마치 오래전부터 종훈을 기다렸다는 듯 고요한 눈빛이었어요. 작은 귀와 둥근 눈, 그리고 살랑이는 꼬리는 그 개가 결코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어요. 종훈은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어요.
“너… 이름이 뭐니?”
작은 개는 낯선 종훈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손을 조심스레 핥았어요. 종훈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어요.
개는 아무런 판단도, 의심도 없이 맑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넌 참… 나를 알아봐 주는구나”
종훈은 마치 속삭이듯 혼잣말을 했어요.
그날 이후, 종훈은 그 골목길을 자주 찾았어요. 개의 이름은 ‘모모’였어요. 모모는 그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주었고, 종훈은 그 순간마다 조금씩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모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종훈에게 마법 같은 순간들이었어요. 그가 혼자일 때 느끼던 공허함이 모모와 함께하면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 한구석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어느 날 종훈은 모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모모야 네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어. 학교에서 성적이나 숫자로만 존재하는 내가 아니라, 진짜 ‘나’가 누구인지 말이야. 이제야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알 것 같아”
종훈의 눈빛은 어느새 확신에 차 있었어요.
“펫시터라는 직업이 있더라고. 사람들이 집을 비울 때,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거야. 그런 일을 하면 좋을 것 같아. 널 돌보는 것처럼 말이야”
모모는 여전히 맑은 눈동자로 종훈을 바라보았어요.
종훈은 모모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만의 꿈을 그려가기 시작했어요. 펫시터가 되어 동물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자신도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결심했어요.
“모모! 덕분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았어. 고마워!”
그렇게 종훈의 꿈은 구체화하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동물을 돌보는 것을 넘어, 그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안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펫시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과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답니다.
#햇살을 만난 작은 별 루루
반야 식당의 마당 한구석에는 목줄을 길게 늘어뜨린 채 손님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루루가 있었어요.
늘 반복되던 평범한 하루 속에서, 어느 날 작은 변화가 찾아왔어요. 그날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어요.
한 가족이 밝은 햇살을 안고 식당으로 들어왔어요. 휠체어에 탄 아저씨와 그의 아내, 그리고 해맑은 미소를 띤 어린 딸과 아들이었어요. 아이들이 루루를 발견하자마자 외쳤어요.
“엄마, 강아지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어요. 우리랑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신나서 외쳤어요.
루루는 그들이 다가오는 걸 보며 긴장한 듯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손을 뻗어 루루를 쓰다듬을 때마다 루루의 눈빛은 점점 더 부드러워졌고, 아이들은 한층 더 기뻐하며 웃음을 터뜨렸어요.
“아저씨! 이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식당 주인에게 아이들이 물었어요.
“루루란다”
“루루? 이름도 예쁘다. 루루야, 우리 공놀이 하자!”
아이들은 차에서 공을 가져와 루루와 함께 공놀이를 하기 시작했어요. 루루는 마치 어린 강아지로 되돌아간 듯 활기차게 뛰어다니며 즐거워했어요.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식당 주인은 휠체어에 앉은 민재 부부에게 다가가며 말했어요.
“아이들이 루루랑 참 잘 노네요. 이렇게 활기차게 뛰는 건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루루가 함께 노는 풍경은 그들 모두에게 따뜻함을 선사했어요.
잠시 후, 식당 주인은 조심스럽게 민재에게 물었어요.
“혹시… 죄송하지만, 왜 휠체어를 타게 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민재는 잠시 망설이다가, 깊은숨을 내쉬며 차분히 대답했어요.
“번지점프 사고 때문이에요”
식당 주인은 놀란 듯 물었어요.
“번지점프요?”
“네, 젊었을 때는 아내랑 번지점프를 자주 했어요. 스릴을 좋아했거든요”
민재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보려 했지만, 입가에 미묘한 슬픔이 스쳤어요.
“하지만 마지막 번지점프에서 사고가 났어요. 장비가 오래돼서 끊어지는 바람에 아래로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됐죠”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아이들과 마음껏 뛰어놀 수도 없고… 하지만 이렇게 루루가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뛰노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네요”
식당 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민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아이들이 루루를 이렇게 좋아하니, 데리고 가서 키워보는 건 어떠세요? 식당일이 워낙 바쁘다 보니 루루에게 신경을 못 써줘서 미안했는데, 이 아이들이라면 루루랑 잘 지낼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뛰노는 루루를 바라보던 민재는 마음속에 있던 무거운 돌덩이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어요.
민재와 아내는 따뜻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식당 주인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루루는 새로운 가족과 함께 반야 식당을 떠났어요. 한때는 마당 구석에서 외롭게 지냈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웃음과 사랑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루루에게도 드디어 진정한 가족이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