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희극(洋襪 喜劇) / 한분순

양말을 신으며 웃는다

by 여산희

양말 희극(洋襪 喜劇) / 한분순


구멍 난 양말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타인의 생을 감싸 올올이 헤어져도

이별에 사무침 없이 입을 벌려 웃는다


이따금 양말을 떠나보낸다. 구멍이 나면 그날로 사라진다. 가만히 보면 구멍이 나는 부위는 정해져 있다. 대부분 엄지발가락 쪽이다. 아내는 걸을 때 엄지발가락에 너무 힘을 주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걷기를 좋아하고 빨리 걷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새 양말을 종종 만나게 된다. 양말을 가리지는 않는다. 그저 아내가 사 놓은 것을 신는다. 평일에는 구두에 검정색 양말을, 주말에는 운동화에 흰 양말을 신는다. 생각해 보면 양말은 신발과 마찬가지로 인생 행로를 함께하는 소중한 벗이다. 양말이 발을 감싸 주지 않는다면 걸음이 얼마나 미끄럽고 불편할 것인가. 그동안 너무 무심하게 대했다는 생각이 스친다.


시인은 양말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양말은 군소리 한 번 없이 누군가의 인생을 감싸 준다. 감당하지 못하는 무게에 신음하거나 땀범벅을 묵묵히 견뎌야 할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러다가 몸이 부서져도 불평하지 않는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 떠날 때조차 허허하며 가볍게 웃어넘긴다. 양말은 한결같은 삶, 밑그름이 되어 주는 삶, 낙관적 삶을 넌지시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양말을 신으며 괜히 웃음을 짓는다. 우리네 나날엔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지만 양말은 한 가지만 말한다. 모든 일을 아울러 희극으로 꽃피우는 것이 삶이라고.

2024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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