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채집가의 하루

by 여산희

나는 게으른 채집가다. 뭔가를 모으겠다고 먼 곳으로 떠나지 않는다. 낯선 곳에 홀려 발길을 서두르는 일도 거의 없다. 어디로 가든 결국은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잠시 삶터를 벗어나 자유를 누릴 뿐이니까. 그저 느긋한 마음만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채집할 것인가? 일상의 휴가, 하루를 살면서 생겨나는 작은 겨를들이다. 이것을 놓치지 않고 채집하려면 나름대로 노하우가 필요하다. 2023년 7월 7일 금요일, 하루 동안 꽤 쓸 만한 몇 가지를 낚았다. 내 마음속에 쟁여 둔 그것들을 다시 꺼내 본다.


나는 출근길에서부터 채집망을 들었다. 첫 번째 과녁은 자전거를 타는 설렘이다. 한 달 전에 미니벨로 자전거를 장만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전거 타는 재미를 되찾고 싶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자전거를 타면 고작 30분 거리.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길엔 늘 신바람이 분다. 장마철이라 비 소식에 신경이 쓰는 편인데, 아침부터 햇살이 쨍쨍했다. 그래서 두근거리는 첫 채집은 가볍게 성공했다.


우리집은 광명시 하안동.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사무실에 가려면 안양천 둔치를 달려야 한다. 이날 자전거로 10분쯤 달리자 부용화의 웃음꽃이 손짓을 했다. 바로 자전거를 세웠다. 흰색, 분홍색, 빨간색 꽃들을 감상하며 스마트폰으로 담았다. 부용화는 색도 곱지만 해바라기처럼 큰 꽃송이가 인상적이다. 마치 잔웃음 짓지 말고 시원스럽게 웃으라고 권하는 듯했다. 나는 그 웃음을 잽싸게 채집했다.


점심때는 어김없이 금천체육공원 뒷산을 걷는다. 산이 나직한데다 데크길이 조성돼 있어 걷기에 그저 그만이다. 2년 넘게 걷는 동안 여러 가지 산책 코스를 계발하기도 했다. 이 사간에는 이어폰을 끼고 KBS 클래식 FM ‘생생 클래식’을 듣는다. 윤수영 아나운서의 밝고 싹싹한 진행과 클래식 음악이 잘 어우러져 듣는 내내 기분이 좋아진다. 이날은 ‘뚱보새’라는 동요를 들려줬는데, 웃음이 절로 나왔다. 뚱뚱보가 될까 걱정하는 참새가, 이쪽저쪽 가지를 옮겨다니며 몸무게를 잰다는 노랫말이었다. 산책하며 음악을 듣는 기쁨은 애쓰지 않아도 내 채집망으로 들어왔다.


퇴근길에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법사의 그림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여름낮 하늘의 주인공은 단연 구름이다. 여름 동안 얼마나 많은 구름이 하늘을 흐르고 있는가. 여름 구름의 각양각색, 변화무상은 마주할 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이날은 큰 구름이 호수를 두 개 품고 있었다. 호숫물이 어찌나 푸르든지 마음이 덩달아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욕심을 내려놓고 구름 한 조각만 낚았다.


한 주를 매듭짓는 금요일 하면 역시 불금이다. 대체로 금요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내와 함께 술을 마신다. 아내는 맥 주 두 캔, 나는 막걸리 한 병. 술은 다르지만 목 넘김은 똑같이 시원스럽다. 한 주 동안 애썼다고, 서로 격려하는 시간이자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나는 아스파탐 없는 ’느린마을막걸리’만 마시는데 한 모금만 들이켜도 감칠맛이 돈다. 이날의 채집은 술 한 잔의 여유로 산뜻하게 마무리했다.


나 비록 게으르지만 멈추지 않는 채집가가 될 것이다. 머나먼 곳을 꿈꾸지 않고 가까운 일상을 우직하게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고개를 내미는 자잘한 휴가들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라는 보물 창고를 넉넉히 채우기 위해서.

2023년 7월 11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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