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몇 십억 자산가라는 말이 좋지만은 않았던 이유

공유재산 관리 이야기

by 장유미 변호사

가슴속에 남몰래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루를 살면서도
생채기로 얼룩지는 것이
인간의 삶이거늘
- 정연복, <상처> 중에서





젊은 자산가의 말 못 할 고충

그분은 다섯 남매 중 막내였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평생 모은 재산이었던 건물 한 채는 남은 가족들에게 공동상속되었습니다. 법적으로는 모두의 것이 되었고, 장부 위에서는 그분도 젊은 자산가가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부러움 섞인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벌써 몇 십억 자산가네.”
“부럽다. 상속 한 번 잘 받았네.”

하지만 그분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웃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건물에는 남들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얹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속은 되었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것

어머니의 유산인 건물은 법적으로는 여섯 명 공동상속인의 공유가 되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아버지 한 사람의 전유물처럼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사회적 체면을 가장 중시하는 분이었습니다. 철마다 좋은 옷을 사셨고, 지인들 앞에서는 늘 잘 나가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밥값은 늘 아버지 몫이었고, 종교단체에도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하며 아버지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남긴 10층짜리 건물은 공실 없이 운영되었습니다. 매달 임차료는 꼬박꼬박 들어왔습니다. 그런데도 통장에 남는 돈은 없었습니다. 상속세를 납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대출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어났습니다.


자녀들은 알면서도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독불장군 같았고, “내가 알아서 한다”는 말 앞에서 누구도 쉽게 반기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말해야 했습니다

보다 못해 그분이 나섰습니다. 집안의 막내였고, 가장 조심스러운 위치에 있었지만, 더 이상 본인과 다른 가족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남들은 자식이 왜 그러냐고 하겠죠. 그래도…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죽하면 그래도 내 아버지인데, 이러겠습니까.”


그분이 원했던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아버지가 더 이상 건물 관리를 단독으로 하지 않는 것.

총 공유자는 여섯 명이기에 법적으로 보자면 아버지는 소수지분권자였고, 공유물의 관리 방법은 공유자 지분 과반수의 결의로 언제든지 정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법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였습니다.


법보다 내용증명을 먼저

저희는 바로 소송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부모 자녀가 얽혀 있는 사연이기에, 이기고 지는 문제로 접근하면 회복할 수 없는 균열을 남길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내용증명이었습니다. 감정을 자극하는 문장이 아니라, 법적 구조를 차분히 설명하고, 이미 결정된 관리 방식의 변경을 안내하는 방식으로요.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공유자 과반수의 결의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점을, 임차인들에게는 건물의 관리 주체와 방식이 변경된다는 사실을 각각 알렸습니다.


막상 내용증명을 발송을 하자, 그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실행은 했는데… 아버지가 무섭습니다.”

그날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앞에 서겠습니다.”


아버지가 찾아오셨습니다

이튿날, 그분의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애들이 착한데… 이런 일을 할 애들이 아닌데, 뭔가 이상한 것 같아서요.”


그분의 아버지는 사무실로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대신하여 내용증명을 보낸 취지를 하나하나 설명드렸습니다. 법적인 구조, 공유관계의 현실, 그리고 지금의 관리 방식이 지속될 수 없는 이유를요.

아버지는 크게 반발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어찌할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계신 듯했습니다. 다만, 이후 건물을 단독으로 매도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그분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물론 소수지분권자가 단독으로 건물을 매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변호사의 마음에서

이 사건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은 법리보다는 그분의 말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인데요…”


그 말 한마디에는 수많은 흔들림과 망설임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찌할 수 없어서 최후의 수단으로 법을 내세웠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많이 아프게 하고 싶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의지는 꺾었어야 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들 마음이 편치는 않을 거라고요.

그래서 상담 과정에서 간혹 나온 소송 이야기도 더 이상 불이 지펴지지 않도록 애썼습니다. 만약 그분의 아버지가 끝내 협조하지 않았다면, 과거 임대수익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 공유물 분할청구 소송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그 길은 법적으로 가능했지만, 가족에게는 너무 먼 길이었습니다. 그 길까지는 가지 않도록 그분과 아버지 사이를 여러 번 조율하였습니다.


관계를 끊지 않고, 문제만 분리해 내는 것.

저는 오늘도, 소송으로 가기 전에 관계를 지켜낼 수 있는 지점을 함께 찾는 변호사로 서 있습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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