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비 지원과 쉼의 회복

by 김동일

경기도 고시공고에 경기관광공사와 함께 비정규직과 특수 형태 노동자의 휴가를 도와주기 위해 휴가비 지원 사업의 공고가 났었다. 2,200명에게 자부담 15만 원에 지원금 25만 원을 포함해 11월까지 40만 원의 휴가비를 사용할 수 있다. 휴가 일자를 자신이 원할 때 사용할 수 있고 자금도 적게 드리면서 혜택도 받을 수 있는 기회다. 정보를 접하면 빠르고 능동적으로 행하는 게 우선이라 판단했다. 난 프리랜서로서 당당하게 특수 형태 노동자로 지원했다. 물론 지원금을 공짜로 주는데 서류가 복잡하다는 것은 받아들여야 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귀찮다는 것의 문제에 걸려 포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귀찮고 짜증 날 정도를 견디고 참아내야 한다. 그래야 언덕을 넘어설 때 서광이 비취듯 혜택이 보인다. 누릴 수 있을 때 놓치지 말고 누리자는 생각으로 지원했고 당당히 휴가비를 얻었다.


휴가는 돈만 준비된다고 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이 동반되어야 한다. 물론 함께 여행을 즐길 동지가 있다면 더욱 멋진 휴가가 된다. 기쁨은 나눌 때 진가가 발휘된다.

“나 경기도에서 주는 휴가비 행사에 당첨되었어”

“정말 그럼 우리 어디로 휴가를 갈까?” 아내가 반긴다.

“8월은 아버님 추도식 때문에 강원도 동해로 가니 9월까지 계획 세워 떠나봅시다.”

가족의 동의도 얻었다. 문제는 시간이다. 아내는 실업 기간 중 내일 배움 카드를 이용해 요양보호사 교육 중이다. 수료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격시험 과정이다. 60점을 넘으면 합격이지만 고시 공부하듯 열정적이라 평일에 여행은 말도 꺼낼 수 없는 형편이다. 가족이 함께 사간을 맞춰 휴가라는 게 그리 쉽지 않다. 가정경제가 어려워 맞벌이와 주말에도 근무해야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 경험하지 않으면 타인의 아픈 사정을 모른다. 비정규직이 시간을 내고 휴가를 떠난단 것이 돈을 떠나서 마음대로 행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시간이 돈이고 여유로운 시간이 녹녹히 주어지지도 않는다.


동해로 휴가를 겸해 부친이 영면해 계신 하늘정원을 찾았다. 올해는 휴가비를 이용해 고급 호텔에서 잠을 청했다. 어차피 기간 안에 사용해야 한다면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가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처럼 자유롭게 시간을 내고 휴가비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특수노동자가 얼마나 될까는 미지수다. 우리 사회문화는 그동안 휴식을 등한시한 게 사실이다. 노동자의 덕목으로 근면함과 성실로 포장된 우수사원 표창은 일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현실을 반영했었다. 이런 모습이 과거의 기성세대의 모습이라는 것에 아니었다고 할 사람은 없다. 과거 휴가는커녕 휴일도 노동을 강요당했다. 산업화 시대엔 가족을 위해 그렇게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세대 노동에 의한 고통의 시간을 물 흐르듯 지나갔다. 휴일근로를 하겠다고 선약을 하고 일만 있으면 야간작업, 연장근로를 밥 먹듯 했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아직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고통받고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휴일에 근로를 강요당하고 휴가비를 쓰기에는 가정 형편을 돌아볼 수밖에 없는 계층은 지금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가 시행한 비정규직과 특수노동자를 위한 휴가비 지원 사업은 잘한 일이다.


휴가는 지친 일상을 벗어나 자신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홍보가 잘되고 많은 근로자가 도움을 받고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을 동반해 돈과 상관없이 휴가를 즐길 수 있게 자부담을 조금 더 줄이면 좋겠다. 노동자도 시간을 억지로 쪼개어 둥지에서 해방되어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권을 가지고 태어났다. 돈과 시간이 인권을 억제하는 수단이 되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자.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가 쉼의 자유를 회복하고 몸과 마음을 추슬러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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