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장래 어떤 일을 하고 싶니?”
“으음 똘똘한 직업 하나 가지고 작가가 되고 싶어.” 늦둥이 대답이 마음에 맴돌았다. 60년 전 가졌던 꿈과 판박이라 놀랐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담아 온 내 꿈은 작가였다. 어려서 계모 슬하에서 마음 조이며 살면서 터트리고 싶었던 가슴속 말들을 쏟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도 변하지 않은 진실, 글 쓰면 변변히 목에 풀칠하기도 힘들다는 현실이 장벽이었다. 잠자리 전 하루를 반성하며 쓴 일기는 마음을 표현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보는 유일한 통로였다. 감정에 복받쳐 울며 쓴 날들도 허다했다. 세월이 지나 그것이 문장력을 키운 훈련의 과정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산업의 역군으로 살며 글과는 인연이 끊겼었다. 가진 것 없이 혼자 벌어 부모를 부양하며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옆을 돌아보거나 곁눈질할 틈이 없었다. 가끔 종이에 시를 습작한다며 글을 끄적거려 보긴 했다. 그러나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언감생심이었다. 마음을 누르고 있던 짐은 거대한 바위였다. 3대 독자, 부모님 빚, 무주택, 등 변명으로 합리화시킬 수 있는 내용들은 알사탕처럼 줄줄 있었다. 현실의 탈을 벗고 일어나 뜻대로 꿈을 펼쳐볼 용기도 없었다. 이렇게 글쓰기는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 흐리게 사라져 갔다. 그런데 전화위복이 이럴 때 사용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열심히 살아온 덕에 토목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사장까지 갔지만 9년을 견디고 폐업의 쓴맛을 보았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를 주었다. 회사가 망한 게 글 쓸 기회를 주다니 꿈에서도 상상 못 한 일이다.
코로나19로 출판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 문체부는 청소년 멘토 작가를 공모했다. 한 직장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게 조건이었다. 근무할 직장도 없으니 편하게 도전했다. 혹시나 했는데 도전은 성공했고 3개월을 전문 작가의 도움을 받으며 글을 쓰게 되었다. 60년 만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는 역사를 이루었다. 너무 좋고 기분이 얼떨떨해 시간이 지나가는 줄 모르고 구름 위에 살았던 날들로 기억한다. 출판까지 이어지지 못해 아쉽지만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글을 써 다음 세대에 영향력 있는 멘토가 되려면 방통대 국문학과를 편입해 글쓰기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선한 욕심이 밥솥에 뜨거운 수증기 피어오르듯 가슴에 채워졌다.
글을 쓰면서 관심을 가지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수기 공모가 보였다. 노인 일자리 활동 중이니 경기도 노인복지에서 공모하는 수기에 참여했었다. 65세 갓 노인이 된 심정을 솔직하게 글로 옮겼다. 생각지도 못한 수기 종목 최우수상을 받았다. “평소에 글을 많이 쓰시나 봐요. 축하합니다.” 심사하신 분의 덕담이 글을 열심히 써야겠다는 마음에 불을 지폈다.
두 번째 도전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평생교육 수기 공모가 있었다. 여세를 몰아 무작정 글을 쓰고 공모했다. 경기도가 아니고 전국이니 참여라도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않은 우수상이었다. 뭐야 내가 끼가 있는 건가?
“브런치 스토리 작가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꿈에 그리던 작가라는 단어를 받아보았다. 브런치 스토리는 용인 중앙도서관 에세이 글쓰기 모임에서 처음 들었다. 궁금했지만 참고 수업이 끝나고 강사에게 물었었다. “수업 시간에 브런치 뭐 어쩌고 하시던데 그게 뭐예요?”
“아 네 브런치 스토리 에세이 작가 되는 방법인데 제가 자세히 알려드릴게요”이렇게 도전하게 된 브런치 스토리 에세이 작가가 되었다니 만세가 저절로 나왔다.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꿈을 이루기에는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작가라는 닉네임은 글을 쓰게 만드는 하나의 족쇄로 작용한다. 다른 작가의 글을 읽으면 내 글을 써야겠다는 욕구가 생겨난다. 정성 다한 내 글에 작가들의 하트는 활화산처럼 글쓰기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때론 시원한 음료처럼 글을 촉촉이 적셔준다. 하트 숫자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빠르게 승부를 낼 생각도 없다. 천천히 체력에 맞게 글을 쓰며 자족하려고 한다. 작가의 꿈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이름이 들어간 출판이 꿈이다. 브런치 스토리와 함께 꿈을 꾸고 이루어 가는 내가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