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몫이 있다는 것
잠을 깨우는 핸드폰의 알람 소리다. 오전 5시 반 오늘도 잊지도 않고 울린다. 이 녀석은 머리가 좋은 것일까? 아니면 멍청해 요령 피울 줄 모르는 것일까? 쉬어 가는 법이 없다. 귀찮은듯하면서도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아침기도를 이부자리에서 드린다. 2024년을 위한 기도 제목이 있다. 가족을 위한 바람이다. 기도가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구한다. 하지만 타자를 기도보다 욕심으로 가족을 위한 “해주세요” 식 일방적 바람이 많다. 일어나면 의무적으로 물을 마신다. 비몽사몽으로 화장실에서 몸에서 정제된 소변을 몸에서 버린다. 시원함과 졸음을 멀리 보내고 고구마를 열심히 수세미로 문지른다. 고구마는 껍질에 영양분이 많아 껍질과 함께 먹어야 한다. 흙을 제대로 씻지 않으면 아내의 불호령을 감당하기 어렵다.
아침을 제공해 줄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 속 뜨거운 불에 누이고 따뜻한 물을 만들기 위해 이번에는 커피포트에 물을 담는다. 최소량이 있고 전기를 낭비하지 않으려면 물량 조절도 아무렇게 하면 아내의 잔소리에 귀가 상처를 입는다. 물량은 가족이 먹고 조금 남아 차 한잔 정도 해결할 양을 끓어야 한다. 마시는 그것은 아주 뜨거운 물이 아니므로 100도의 물을 만들고 컵에 따르는 건 60%, 40%는 생수로 온도가 적정하게 맞추어져야 한다. 물컵으로 사용되었던 컵은 재활용되어 우유를 따르고 고굼 씨(고구마)와 함께 궁합을 맞추어 먹는다.
고구마로 탄수화물을 공급하고 단백질의 보고인 달걀도 빠질 턱이 없다. 전에는 아침마다 달걀을 삶았다. 따뜻하게 먹으려는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가스비가 인상되고 매일 가스를 사용하는 건 가성비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되어 지금은 한꺼번에 한판 정도를 오크(찜기)에 구워버린다. 처음엔 구운 달걀이 약간 냄새가 비위를 건드렸지만 역시 인간은 환경에 적응을 잘한다. 이제는 불평 없이 일주일씩 단백질 공급원으로 구운 달걀을 먹는다.
약방에 감초로 등장하는 아침 메뉴도 있다. 견과류인 구운 아몬드다. 견과류의 파트너도 우유다. 뜨거운 열기에 지칠 대로 지쳐 고이 생기를 잃은 고굼씨(고구마)를 살며시 부러지지 않게 소중하게 다르며 접시에 예쁘게 담는다. 테이블 가운데 주인공 자리에 놓는다. 일 년 가족 아침을 책임지는 주메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어디에 가도 대접을 받는 것 같다. 구운 달걀은 껍질을 속껍질이 남지 않게 소심하게 잘 벗겨야 한다. 아침 식사를 하는 가족에 대한 기본 배려이다. 물론 아내의 잔소리를 피하는 길이기도 하다.
60분의 시간 속에 나의 주어진 몫의 아침상 차림이 끝이 난다. 예쁜 아내는 눈을 비비며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며 따스한 몸을 포개며 물부터 찾는다. 오늘은 온도가 적정한지 한 컵을 유유히 마시고 화장실로 바쁘게 도망간다. 아마도 육체 속에 물이 많이 채워진 듯하다. 함께 마신 컵에 우유를 따른 후 난 결혼식에 신부 기다리듯 다시 더 예쁘게 세수하고 나올 아내를 기다린다. 아내는 어린이집 조리사다. 7년 전까지는 전업주부였지만 나의 패업이 그녀를 세상으로 나갈 기회를 주었다. 가족을 위해 30년 전 배우고 자격증을 취득했고 잠깐의 출장 요리사 경력이 있다. 그 요리 실력을 어린이에게 사용하리라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아침을 책임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가족을 위해 내게 주어진 몫이 있어 더욱 감사하다. 회사를 정리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시간이 지나며 깨닫는다. 아픔과 고통의 시간은 사람 됨됨이 숙성되는 시간이다. 인간의 가치숙성은 무궁무진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낸다. 나의 숙성시간은 물질이 전부가 아니고 몸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기회를 발견한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던 에너지를 가치를 위한 사회활동을 하며 만족하는 삶으로 바뀌었다. 오늘 내게 주어진 것이 있어 고맙다. 내일 또 다른 감사를 만들어내는 감사제조기의 삶이다. 지금은 아침 주방의 조리사가 되어 내게 주어진 몫이 있었음에 어깨가 으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