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시리즈 첫 번째 챕터.
“남성 전용 헤어 컷트 전문점으로 어서 오세요”
누르스름한 전단지 위에 빨간색으로 굵게 써진 저 문장 하나에 눈이 갔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 미용실 하나 어디 있는지 몰라서 머리를 잔뜩 기른 채 등교한 남동생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만 해도 내가 잘라준다고하자, 기어코 싫다며 눈을 반쯤 가린 앞머리를 푸욱- 날숨으로 넘기며 문을 나섰다. 아빠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까맣게 때가 탄 와이셔츠를 걸치곤 ‘아침부터 무슨 소란이냐, 으이그 저 놈…’하며 혀를 찼다.
동생과 아빠가 정신없이 집을 나서면 기껏 차린 아침을 드는 사람은 나와 엄마 밖에 없었다. 삐걱거리는 식탁 위로 차가운 밥 세 그릇과 한 여름 아스팔트 도로 위에 아지랑이처럼 김이 피어오르는 국이 뻘쭘하게 놓여있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이제 밥 먹자. 아빠랑 준우 갔어”
안방에 죽은 듯 누워있던 엄마가 주섬주섬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한 입 가득 집어넣었다. 급하게 먹은 탓에 입천장이 다 데일 뻔했다. 고소하고 짭짤한 된장의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오랜만에 만들었음에도 다행히 아주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엄마, 어때? 나 이제 된장찌개 잘하지?’ 씁쓸한 뿌듯함이 묻은 나의 질문에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내 얼굴만 바라보며 싱긋 웃을 뿐이었다.
엄마는 밥을 먹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내가 먹고 있는 된장찌개를 보고 있는 건지, 된장찌개를 먹고 있는 나를 보는 건지 모르겠으나, 엄마는 그렇게 웃고만 있었다.
“엄마, 준우 여기 미용실 한번 데려가야 될 거 같아. 걔 머리 너무 많이 길었어. 엄마도 봤지? 내가 잘라준다니까… 하여간 말 진짜 안 들어. 엄마는 걔를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키운 거야? 나 같으면 진작에 버렸다.”
엄마는 고개만 까닥까닥 흔들었다. 다 안다는 듯이, 다 이해한다는 듯이.
“국 짜니까, 국물 먹지 말고 건더기만 건져서 먹어.”
늘 엄마가 하는 잔소리였다. 나는 퉁명스럽게 알겠다고 답하며 눅진해진 당근과 애호박을 건져 밥과 함께 목으로 넘겼다. 맛있었지만, 알고 있는 사실을 계속해서 말하는 저 잔소리가 싫었던 걸까. 저 별것도 아닌 말에 괜히 심술을 부리곤 했다.
“좀 있다가 나랑 여기 미용실 같이 가보자. 장 보러 갈 겸, 들렀다 오면 되겠네. 혹시 알바 구하는 지도 물어봐야겠다. 아무래도 알바라도 하나 더 뛰어야 될 거 같아.”
나는 말하면서 엄마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상상이 가서 차마 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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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아빠의 사업 실패로 한순간에 빚더미에 나앉았다. 나름 중산층이라고 불리던 우리 집이 처참히 무너져버린 것이다. 준우는 아끼는 축구화와 게임기를, 나는 꿈을 그리고 엄마는 건강을 잃었다. 덕분에 가족을 잃을 뻔한 아빠는 엄마의 용서로 그 죄를 겨우 면할 수 있었다. 몇 개월째 방구석에서 술만 퍼마시던 아빠의 정신을 차리게 해 준 것도 엄마였다. 나는 그런 엄마가 이해 가지 않았지만, 미워할 수 없었다.
다행히, 엄마의 지인 중 프린트 회사를 창업한 사람이 있었고, 엄마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빠는 꽤 빨리 취직할 수 있었다.
나는 잘 다니던 대학교를 관두고,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이 사실을 엄마에게 곧바로 알리지는 않았다. 마음 아파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얼른 취직을 한 다음에 알려야 엄마가 그나마 덜 울 것 같았다. 그러나 취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스펙도 별로 없는 스물한 살짜리 여자애가 잘 다니던 대학교를 관두고 자기 전공과는 상관없는 사무직에 취직하려고 하니, 사실 좋은 자리에 취직하려는 것이 욕심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피아노 전공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나는 일단 되는대로 알바부터 시작하려고 했다.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조교로 들어갔다. 물론, 원장 선생님에겐 퇴학이 아니라 잠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휴학 중에 있다고 뻥을 쳐야만 했다.
불과 몇 주 전엔 받기만 했던 피아노 레슨을 내가 하고 있으니 어색했다. 학원에서 내가 하는 일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레슨실 청소, 초등부 아이들의 이론 문제집 채점과 그들이 오답하는 것을 돕는 것. 또, 중•고등부 아이들의 연주곡 연습을 봐주거나 가끔 원장 선생님의 부탁으로 연주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최대한 아이들과 친해지지 않으려 묵묵히 일만 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희망하는 전공학과의 대학생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나 보다. 틈만 나면 나에게 연신 질문을 해댔다.
“언니, 피아노 입시 많이 빡세요?”
“누나, 누나는 콩쿠르에서 상 얼마나 탔어요? 얼마나 타야 대학 들어갈 수 있어요?”
“선생님 대학에서는 뭐 배워요? 선생님 학교네 교수님은 누구예요?”
“저는 선생님만큼 못 치는데 대학 갈 수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그냥 때려치우고 공부하는 게 좋을 같아요?”
“선생님 피아노 전공하려면 돈 많이 깨지지 않았어요? 선생님 집 잘 살아요?”
등등…
가끔은 놀라울 정도로 무례한 질문들도 서슴없이 물어봤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대충 있어 보이는 말을 늘어놓는 것뿐이었다.
나도 입시에 대해 모른다. 당연하다. 학원에선 학원이 하라는 대로, 집에 오면 엄마 아빠가 하라는 대로 연습했다. 그렇게 누가 시키는 대로 충실히만 따르다 보니 콩쿠르에서 대상도 몇 번 탔고 그 덕에 스펙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더러 생겼다. 컨설턴팅 선생님이 시키시는 대로 공부하고, 연습하고, 공부하고 연습하고.. 그러다 보니 피아노 학과로 유명한 대학에 운 좋게 예비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글쎄, 나는 그냥 연습만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라는 건조한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궁금증으로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이 나를 옭아매는 것처럼 느껴졌다.
던지지 않은 돌에 맞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다. 조약돌 같은 질문들은 걷잡을 수 없는 파동을 일으켰다. 파동은 파도를, 파도는 해일을 만들어 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닷가 바닥에 납작이 엎드려 해일이 잠잠해질 때까지 버티는 것, 그것뿐이었다.
관심이 불편해도 알바를 관둘 수는 없었다. 다른 알바에 비해 시급이 높았고, 전공생이어서 그런지 나를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첫 월급을 받은 뒤에서야 나는 비로소 엄마에게 퇴학 소식을 알렸다. 학교에 간다고 속여가면서 번, 나의 10년이 꼬질꼬질 묻어있는 한 달 월급을 엄마의 손에 쥐어주면서 나는 덤덤히 알바를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겠다는 계획을 말했다. 엄마는 내가 말하는 동안 한마디가 없었다. 손에 쥐어준 돈 봉투만 내려다봤다. 무미건조한 미래 계획을 듣고 난 후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품속에서 드러난 엄마의 갈비뼈가 내 가슴에 깊이 부딪혀왔다. 덩달아 엄마를 안은 내 팔은 볼품없이 남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날 밤, 나는 엄마의 맥없는 기침 소리와 흐느낌을 자장가 삼아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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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다가 알바 가야 되니까, 아침에 빨리 장 보러 갔다 오자 엄마."
나는 빠르게 마지막 한 숟갈을 입에 쑤셔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그릇과 손도 데지 않은 나머지 접시들을 싱크대로 옮겨놓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눈동자로만 따라가다 이내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엄마 나랑 같이 나갈 거면 얼른 준비해!"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다시 시체처럼 누워있을 것이 뻔했다. 안방에 꿀단지라도 숨겨놓은 건지, 밥 먹을 때 빼고는 저기서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가자미처럼 바닥에 힘 없이 누워 숨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쉬었다. 납작 엎드려 해일이 지나가길 바라며, 나와 같은 바다에서, 끝없는 기다림을 버티고 있었다. 그 캄캄한 심해 속에서, 파동하나 닿지 못하는 그 심해 속에서, 엄마가 천천히 질식해 가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