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인연'
산은 바다에, 바다는 산에 운다죠
닿을 수 없는 연에 운다죠
영겁 같은 시간이 자신을 깎는 동안
산은 울지 않았습니다
파낸 핏줄 같은 길로
폭포가 흐르고, 계곡이 흐르고
그 물은 흘러흘러 강에, 호수에,
마침내 바다에 닿을 테니까요
매끈했던 비탈에 칼자국을 새기며
너울너울 떠나가는 파도,
헤엄쳐내려 가는 저 파도,
그 무연의 운률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산은 흥겹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음애(陰崖)가 나면
산이 하릴없다- 울며
물이 흐르지 않는,
그 상처를 나무로, 흙으로
바다에게서 감추곤 했죠
드넓은 창해는 하늘에 비친 자신을,
그리고 자신에 비친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방편 없이 흘러가기만 하는 대해는
해연 아래, 그리고 심해 아래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짚으며
떠내려가는 자신의 무게를 버텨도 보았죠
그러나, 어느새 산은 지척에 있고,
바다는 자신을 자신에게로 옮기며, 옮기며
더 머나먼 대해로 휩쓸려갔습니다
희미하게나마 닿는 산의 눈물로,
물살을 버티는 바다의 땀으로
서로는 그리워한다죠.
무연,
모든 필연은 그곳에서 시작한다죠.
산과 바다는
자신을 깎고, 버티다
서로의 품으로 녹아들었습니다.
필연으로 흩어진 잔해에
그들은 눈물을 적시지 않았습니다.
무연
필연
그리고 그 사이 우연,
어쩌면 모든 이는 서로에게
기나긴 우연이었으면
그렇게 하늘은 붉은 실을
비에 씻겨내렸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