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남성 전용 헤어 컷트 전문점으로 오세요(3)

by oksusu mi

사방팔방 쏘다니던 눈빛들이 마주쳤다. 거울 속의 얼굴이 그토록 신경 쓰였던 이유는 필연적으로 있었다. 본능 같은 것이었다. 치부를 들키기 싫은 본능. 아까의 공포와 불안함은 그런 본능이 매우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었다.

마주친 눈은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아까 전과는 달리 너무 방황하지 않아서 문제였다. 뛰쳐나가고 싶었으나, 다리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다 됐다."

사장님이 남자를 덮던 천을 걷어주며 말했다.

"아이고, 머리 멀끔하게 잘 됐네. 돈은 됐으니까 얼른 집으로 가봐. 어여. "


남자는 짧게 친 머리를 한 번 털어주고 뒤를 돌아봤다. 남자는 나를 지나치 듯 보고는 태연히 나갔다.

'뭐지? 못 알아본 건가?'

당혹감과 안도감이 들었다. 정말 나를 못 알아본 것이라면 너무 다행이지만, 동시에 조금.. 섭섭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사람은 나를 기억해 주길 바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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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충한 여름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좁은 우산 아래 어깨를 꾸기며 나와 발을 맞춰 걷는 남자 애가 있다. 빗방울이 우산을 때리는 소리만 가득한 정적을 깨고 내가 입을 뗐다.

"나 이사 가. 너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흠칫 놀라는 남자의 숨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왜?"

"사정이 생겨서. 가족사라 자세히 말은 못 하겠다. 미안."

어이가 없는지 아님 허탈한 건지 남자는 작게 웃더니 발걸음을 멈췄다. 이마에 차가운 빗방울이 닿자 나도 멈춰 섰다.

"아, 차가워. 뭐야. 갑자기 왜 멈춰?"

남자는 대꾸 없이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잊은 말을 곰곰이 고민하는 사람처럼 미동 없이 발 앞에 생긴 웅덩이를 뚫어져라 봤다.

"야. 왜 멈추냐고.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말해서 그래?"

"..."

"아니, 나도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너한테 미리 말해줄 틈이 없었어. 일어나고 보니 이사를 가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

"진짜.. 미안하다.. 응? 야, 시우야. 대답 좀 해봐."


남자의 어깨를 살짝 치며 대답을 재촉했지만, 반응은 여전히 없었다. 계속된 무응답에 슬슬 답답함이 몰려왔다.

"뭐 하자는 건데. 무슨 말이라도 해 제발."

"..."

"하. 됐다. 나 먼저 간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지퍼를 잠궜다. 정말 갈 것이라는 신호였다. 그럼에도 시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냥 가라는 건가. 그런 뜻으로 시위를 하는 건가. 답답함에 져, 빗길로 발을 옮기려 할 때 그가 내 팔을 잡았다.

머뭇거림 끝에 시우는 누군가는 해야만 했던 질문을 던졌다.

"... 그럼.. 우리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누군가는 해야만 했던 질문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회피했던 말이었다. 폭탄 돌리기처럼 주체 되기를 회피하기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손끝의 떨림이, 그가 잡은 내 팔로 전해질까 재빨리 팔을 뺐다.

"뭐가."

마음과는 달리 날카로운 어투가 튀어나왔다.

"무슨 말하는지 알잖아. 우리 관계. 우리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우리 관계? 그게 뭔데. 우리가 무슨 사이야?"


우산을 들던 그의 손이 휘청였다. 그의 어깨로, 나의 머리로 빗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우리가 아무 사이가 아니야? 정말 아니야? 너 자꾸 회피하지 마."

"내가 뭘 회피해. 사실이잖아."

그땐 그 어떤 관계도 될 수 없었다. 그 어떤 관계도 되게 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볼 때 동정 같은 감정이 섞여있지 않길 바랐다. 내 과거를 아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를 찌르던 가시들이 나에게 기어코 다가오겠다는 인연을 찔렀다.

"아님. 설마 너 나 좋아해?"


잠잠했던 남자의 눈에 배신감이 서렸다. 깊은 상처가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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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가 유독 더러웠던 나름의 첫사랑이었는데.. 정말 나를 그는 깨끗하게 지운 것일까. 그럴 수 있었나. 떠난 사람은 나였는데 내가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청소 일을 도와준다고?"

사장님이 계산대에서 성큼 나오며 말을 걸었다. 다시 현실로 정신이 돌아왔다. 멍한 얼굴을 치우고, 다시 자본주의의 똘망한 가면을 썼다.

"네. 원하시면 카운터도 도와드릴 수도 있고 가벼운 드라이 정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사장님은 얇은 손가락을 의자의 낡은 가죽 위로 툭툭 치며 잠시 고민을 하더니 말했다.

"혹시 평일 날에 다 시간이 될까요? 안 그래도 안사람 몸이 시원찮아서 미용실로 데려와서 돌보려고 하거든요."

"아.. 하루 종일 말하시는 거예요? "

"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좀 부탁해도 될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최대한 시급도 많이 쳐줄게요."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야, 낮에는 피아노 알바가 있으니 시간이 겹쳤다. 하지만 슬슬 학생들의 질문들로 숨이 막혀왔던 차라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그만둘 때 원장 선생님이 불편한 눈치를 주시겠지만, 시급도 세고 삐약거리는 초등학생에게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릴 순 없었다.

"가능합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일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진이 빠진 채로 미용실을 나섰다. 어느새 시간은 12시가 지나있었다. 허겁지겁 장바구니를 메고 집으로 향하려고 할 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사 간다는 게 여기일 줄 몰랐네."


최악이다. 나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생각 따위를 애초에 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오늘은 정말 일진이 제대로 최악이다. 머뭇거리다 뒤로 돌아봤을 땐,

윤시우. 애증의 얼굴을 다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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