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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현 Apr 12. 2024

(5) 시한부로 산다는 건..


일~이주일 상간에 예약하기 힘든 병원

신촌세브란스, 서울대병원,

아산병원, 삼성의료원, 국립암센터까지

명의들에게 예약을 하고 진료를 봤다.

다 같은 말씀이시더라..

‘위암은 개복을 해봐야 안다고..’

그중 나는 복강경 수술이 가능한

그리고 제일 믿음이 가는

신촌 세브란스를 선택했다. (위암 명의-형교수님)

수술날 까지는 한 달 반을 기다려야 했다.


암선고 이후 2박 3일쯤 원 없이

울어본 것 같았다.

난 집으로 다시 돌아왔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보냈고

난 다니던 발레도 갔다.

그리고 암선고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하지 못했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 어떤 위로도 받고 싶지 않았고

같이 슬퍼하는 표정을 짓는 건

더 싫었다.


우린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아니 돈을 주고 체험을 하기도 한다.

만일 내가 시한부라면..

만일 내가 한 달 후에 죽는다면..

만일 내가 일 년 후에 죽는다면..


24시간 내내..

잠자는 시간까지도 생각한 거 같다.

여행을 갈까,

이루지 못한 사랑을 만날까,

가고 싶었던 두오모 언덕에 가볼까,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걸 해볼까…


생각하면서.. 생각하는 동안..

생활은 안정되어 갔고

그때 알았다!

일상의 행복을…


난 똑같이 아이들의 밥을 만들고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리고..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로봇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들과 놀이터에 나가서 놀고..

놀이터 엄마들과 잠깐의 수다도 하고..


남편이 오면 밥을 차렸다.

숟가락을 놓고.. 치우고..

남편도 똑같았다.

평일엔 손도 까딱 안 하고..

오로지 매일 음식물 쓰레기는 버리고..

남편도 주말엔 대청소를 하고..

우린 평상시에는 암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나 자신이 암이란 걸 까먹은 걸까’ 하는

의심이 될 정도로..

(사실.. 너무 무서워서 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변화하고 싶지 않았다.

난 겁쟁이.. 쫄보니까..)


난 일상을 보냈다.

아침에 눈뜨면 ‘일상이구나’ 하고

행복한~ 숨을 쉬었다.

그리고 안 좋은 생각이 들 때면..

아이들을 안고 아이 살냄새를 맡으며

마음에 안정을 찾곤 했다.


단지,

라면을.. 정크 푸드를.. 먹기 시작했다.

억울했다.

친정아빠는 나보고

‘우리 지현이는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야’

하며 말씀하셨는데..

난 정말 몸에 좋은 거라면

혐오 식품도 먹었고..

몸에 나쁜 건 웬만하면 먹지 않았다.

친가, 외가를 포함하여

암병력은 그 어디에도 없었으며

한 번도 말라 본 적 없는

건강한 미듐 사이즈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 반은 쏜 화살처럼 지나갔고..

수술 이틀 전 안동에서 시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수술과 입원기간에 아이들을 봐주시기 위해~

 

평온하던 내 감정이 터진 건

시어머니와 둘이 있을 때 시어머니의 질문이었다.

“얘! 애미야~ 이제 수술하고 나오면..

애비 반찬은 어떻게 하니? 밥은 어떻게 하니?”

순간! 멍했다..

나도 모르게..“제가 하죠..”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와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미친 듯이 울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나 무서워서 죽을꺼 같은데..

어머님이 오빠 밥 걱정하신다고..’

남편은 ‘당장 내려가시라고 해!’라며

쌍욕이 나오기 일보직전이었다.

깜빡했다.. 나의 중학생 아들의 상태를..

어머니께 전화하지 말란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참을…

차 안에서 목놓아 울었다.

내일의 입원이 무서웠던 것일까?

그간의 불안하고 무서웠던 내 마음을 털어 버리듯..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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