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가족들은 강시같았다.
물론 나는 공중에 떠 있는 강시같았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상황을
밤새 혼자 그 작은 머릿속에 재연하느라..
밤새 소리없이 우느라..
그러나 해는 어김없이 떴고
그냥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었다.
아침은 나를 더 현실로 데려다 주었다.
나의 비장함은 안 보였겠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는 안쓰러움이었으리라..
“엄마 나 오빠랑 좀 나갔다 와도 돼?”
점심까지 먹은 나는 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남편이랑 같이 커피숍에 갔다.
“오빠! 내 말.. 잘 들어요.. “
난 이 한마디 했는데 목이 메이고 말았다.
이제 신파극은 그만하고 싶었다.
어쩌면 장기전으로 들어갈지도 모르는 이 상황을
내가 먼저 계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린 서로 쳐다볼 수 조차 없었다.
남편은 테이블을.. 난 허공을 쳐다본 채..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잖아~
만에 하나!
내가 잘못되면…
꼭 재혼해!
(이 말을 할 때는 입술을 깨물어도 눈물이
나오더라.. 잠시 쉬었다가..)
오빤 절대 혼자 아이 못 키워!
아이 둘~ 잘 키워 줄 수 있는 여자로!
꼭 재혼해!
원래 나 먼저 가면..
오빠 절대 재혼 못하게 유언하려고 했는데..
내 세끼들.. 엄마 없는 아이들 절대! 못 만들어!
꼭 아이들 잘 키워 줄 수 있는 여자로 골라서
결혼해…
남편은 말이 없었다.
없을 줄 알았다.
남편은 오리지날 경상도 남자이다.
(어떤 엄마에게 남편이 경상도 남자라 힘들다고 하소연하니..‘괜찮아요. 안동도 있는데요.. 뭐.. 안동보다 낫잖아요’하며 위로하시더라.. 근데요.. 저희 남편 안동이에요 ㅋㅋ)
계속이어 나갔다.
그리고
부천에 재개발 예정인 조그마한 집이 있어요.
그거 오동(첫째 태명)이 거예요!
크면 꼭 오동이 줘요~!
이 말까지 하며 몇 번을 쉬었는지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장 이성적일 때
가장 중요한 뜻을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땐 내 목숨보다
두 핏덩이의 앞날이 더 걱정됐다.
처음 알리는 나의 자산공개..
남편도 놀랐으리라..
난 남편과 만난 지 7개월 만에 결혼했다.
결혼당시 엄마가 사위에게 해 준 것 이외에는
난 밥숟가락 하나 들고 가지 않았다.
그렇게 계획했던 것도..
못해갈 형편도 아니었는데..
그 당시.. 정말 신기하게 모든 걸 남편이 했었다.
그리고 또..
내가 혹시 항암을 하게 되면..
혹시 힘들게 되면..
시골로 내려가는 게 나을지..
친정으로 들어가는 게 나을지..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나 혼자 내려갈지..
실은.. 마지막 혼자 내려가는 상황은
말하지 못했다.
혼자만의 대비책이었다.
그렇게 모든 경우의 수를 대략적으로나마
남편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내 남편’은
‘중학생 아들’이었다.
우리 아들이 당황하지 않게
미리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 아들이 딸 둘을 데리고 살아가는 걸
밤이 새도록 그리고 또 그려봤었다.
그림 하나 그리고.. 울고..
또 하나 그려보고.. 울고..
그러다 밤이 지나가 버린 거다.
더 이상 듣고 있으면
최악의 상황을 자꾸 그려보게 되어서일까?
남편은 그만 들어가자고 했다.
난..
“장기전이 될 수도 있어..”
라고 말하고..
일어났다.
장기전!
맞다!
어쩜 내가 가장 무서웠을..
긴 병에 효자 없는데..
긴 병에 남편은 있을 리 없다. 가
나의 또 다른 걱정이었으리라..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