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베이비붐세대란 1955년생에서 1974년생까지를 일컫는다.
또한 한국에서의 X세대라고 하면 서태지가 데뷔하던 1992년 당시 10대였던 1974년생~1984년생까지를 가리킨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아동 학대를 받고 자랐다는 사실은.
아마 적어도 X세대를 가리키는 1984년생까지는
부모도 사회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시대적 배경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사는 한국은 6.25와 함께
찢어질듯한 가난을 겪었으며,
불과 50년 전 만해도
필리핀에서 도움을 받던 나라였다.
못 살던 그 시대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존 본능만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경제강국으로 오는 그 과정에
우리 대한민국에는 인구밀도를 탄탄히 한
‘베이비 붐 세대’라는 큰 업적이 있다.
그 베이비 붐 세대는 살기 어려운 시대에
한 가정에서 다둥이로 태어났으며
곱게 자라기란 여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의견을 말하고 실행하는 건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을 것이며
최소한의 감정마저 묵살당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입에 풀칠해야 하는 의식주가 최고인 시대에서
삶의 버거움이 고스란히 나약한 아이들에게 갔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게 당연하다 여기며
본인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였을 것이며
당시의 아이들은
학대 아닌 학대를 당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것이 무의식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인권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으며
민주화가 되어가는 과정의 불협화음은
끝이 없었으리라.
실제로 필자는
국민학교 시절에 아빠 엄마의 학력이나
이혼여부, 자가와 전월세 등을
모두가 눈 뜬 가운데 거수로 조사하는
학교를 다녔었다.
중학교에서는 머리 길이 제한이 있었고
무서운 학생과장 선생님은 교문에서 가위를 들고
귀 밑 4cm(규정) 머리보다 긴 학생들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머리를 마구잡이로 자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고등학교 때의 성적 공개는 당연한 것이었으며
틀린 개수만큼 맞거나 두배로 맞는 것도
일상적이었다.
이뿐이랴?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따귀를 때리거나
폭행을 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 하에..
아마.. 더한 사건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때는 이러한 것들이
당연한 걸로 받아들여졌었다.
이것이 인권과 관련 있다는 사실도
이것이 아동학대라는 사실도
우리는 몰랐다.
지금은.. 안다.
이것이 아동학대였다는 사실을.
이것들이 우리의 정서적 안정에 끼친 영향을.
어린이 인권, 학생 인권, 청소년 인권 등
우리 사회는 이것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그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리할 수 있음을.
그래야 그들이 선한 영향력으로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음을.
서점에 가면 이러한 글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엄마를 죽여버렸으면 좋겠다.’ 혹은
‘아동학대받은 내가 아동학대를 안 할 수 있을까?’
‘가족이 없었으면 좋겠다.’,
‘바람도 유전이라라는데.’,
‘가족과 인연 끊기‘ 등..
아마 누군가는 이러한 책 글귀를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뛸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처럼..
또 누군가는 위로받을 것이다.
나 말고도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 번이라도 위와 같은 생각을 안 한 사람이 있을까?
매번 우리는 학대 속에 바른 생각만 했을까?
학대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내 아이를 마주하고 당황하는 중일까?
이제야 학대한 부모들을 이해하는 중일까?
아님 아직 날 학대한 내 부모를 원망하는 중일까?
나는 어느 만큼 왔을까?
그 어떤 경우에도 괜찮다.
정말 괜찮다.
왜냐면..
우리는 경험의 되물림을 끊어낼
단단한 세대니까..
내 아이를 더 단단하게 키울 수 있는
지혜의 세대니까..
난.. 그렇게 칭하고 싶다.
그러나
받은 대로 준다고 했던가.
무의식이 의식을 항상 이긴다고 했던가.
우리가 받지 못한 대우를 해주느라 힘든 세대.
받아보지 못한 대우를 대접을 해줘야 하는 일이 쉬운 일일까?
물론 불공평하다.
가끔 못견디게 화가 날 것이다.
내가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대우를..
왜 난 주기만 해야할까?
내 자식에게 해주면서 느끼는 분노들..
왜 난 못 받았던 걸까?
헌데,
우리의 윗 세대는
더한 대우를 받고도 견디고 이루어냈듯
우리 또한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
부모가 되어본 사람들은
이 불공평이란 단어가 더 잘 이해되리라.
‘인생=불공평’
그러면 어떠한가?
반드시 공평한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란 것도 안다.
그냥~ 인생인 것이다.
충분하게 받아보지 못한 세대들이
작은 마음들과 배움을 통해
내 아이들에게 되물림을 끊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시기임을 느낀다.
위상 높아진 대한민국의 내실이 건강해지려면
우리 세대에게 끊어내어
세련된 문화를 만들기 위한 공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로 해결하지 못하는
악순환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작은 노력들로 이어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이 작은 파동은 사회를 움직일 테니..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믿으면 이루어지리라.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다음 세대에게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돌려주려는
마음이 자라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반란(斑爛)은
어디에 반하여 내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아롱질 반’, ‘빛날 란’
여러 빛깔이 섞여서 아름답게 빛난다는 뜻으로
급변하는 역사 사이 간극을 메꾸는 세대로서
여러 빛깔을 섞어 그 빛을 아름답게 내는데
일조하는 그런 세대이지 않을까..?
우리의 반란~ 시작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