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 부모를 무시해 본 적이 있는가?
‘정말 왜 저래?.. 기타 등등’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나쁜 마음을.. 혹은 나쁜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지금은 그 마음을 모두 통과하여
그 시절의 부모를 이해하고
‘부족한 환경임에도’라는 생각으로
내 부모를 존경하는 마음까지.. 왔을까..?
누가 훌륭한 부모일까?
자본주의 안에서 부 (富)를 성공한 사람들은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아이의 행복을 얘기한다.
명문대 진학, 의대 입학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부 (富)에 있어서는 전자보다 못한 경우들이라 할 수 있다.
충분한 부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부의 축적이 필요 없어서
아이의 행복만을 바라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행복을 목표로 두기 때문에
남다른 공부를 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목표가 명문대나 의대 진학이 아닌
행복하기 위한 도구로, 과정으로 쓰고자 할 뿐이다.
도구나 과정은 목표를 위해 바뀌거나 수정되기도 하며 최종의 목표가 아니기에 충분히 수용도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최고의 교육은 무엇일까?
수많은 사례들이 있고 다양한 교육이론들이 있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것은
본받을 만한 부모상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거창한 이 말에서 거품을 빼자면,
엄마 아빠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아마 아이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훗날 그렇게 자랄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고민 없는 가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애초에 정답이란 없다.
그런데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고 믿고
그걸 이루기 위해 희생을 자초한다.
그러나 희생은
본능적으로 보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쳇바퀴에 갇힐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정답을 찾으려는 우리의 그 노력을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나의 쓸모없는 여러 가지의 그 욕구를 다스리는데 쓰면 어떨까?
그걸 보고 자란 아이는
스스로를 조절할 줄 아는 엄마를
닮지 않을까?
우리가 그렇게 원망하고 싫어했던 순간의
엄마 모습을 나에게 보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모두들 잘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것이 쉽지 않을뿐..
여기서 잘해야 하는 대상은 누굴까?
바로 ‘나’이다.
내가 잘하기 위해서
그래서 아이의 시선을
느껴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