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달동 이야기
11월이다.
가을이라기에는 겨울 같고, 겨울이라기에는 아직 가을 같은 달. 가을의 낭만과 겨울의 쓸쓸함 사이에서 생명과 조락이 함께하는 풍요롭고도 공허한 달이다.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따사롭고 옅어진 빛이 긴 그림자를 그리며 철쭉과 블루베리 잎새에 붉은색을 입혀간다. 수리산 빛도 황갈색으로 부드러워졌다.
11월엔 바람도 시를 쓴다.
들판을 지나온 바람이 뽕나무 잎새를 흔들며 서걱거리고, 쌩하니 솔가지를 스치며 솔잎 하나 떨구고 간다. 메리골드 꽃밭에서 잠시 머물던 바람은 진한 향기를 실어다 놓고는 다시 들판으로 휘돌아 나가 텅 빈 논가에 서있는 억새를 춤추게 한다.
일찍 벼를 벤 앞 논에는 그루터기에서 움벼가 청보리처럼 올라오고, 마당 텃밭엔 떡 벌어진 김장 배추가 속을 채워가고, 파란 청무 이파리 밑으로 튼실한 연둣빛 무가 올라와 있다.
무서리에 호박잎들이 맥없이 주저앉았고, 말라가는 구절초 옆자리에서 노란 국화가 해맑게 웃는다. 따신 햇살에 계절을 잘못 알고 올라온 샤스타데이지도 보인다. 마지막 남은 꿀을 모으려는 벌들이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며 옮겨 다니고 있다.
11월의 햇살이 그리는 그림 속에서 바람이 쓰는 시를 들으며 나도 가을걷이로 하루해가 짧았다.
추위에 약한 생강 먼저 캤다. 생강이 있던 자리는 흙에서도 생강 냄새가 나고 손에도 생강 향이 배인다. 생강 몇 포기가 주는 알싸한 향긋함에 호미질이 즐거웠다.
호박덩굴을 정리하며 서리 맞은 호박 두 덩이를 건졌다. 까치밥으로 남겨두었던 대봉감도 가지치기로 알뜰하게 챙겼다.
묵은 씨앗을 뿌렸더니 성글게 올라온 총각무가 제법 굵었다. 큰 무 사이에서 자라지 못한 모지리 무도 골라 뽑았다. 바로 절이고 쪽파와 함께 버무려 아삭하고 맛있는 총각김치 한 통을 담았다.
오늘도 속달동 마당에서 거두고 비우며 햇살을 듬뿍 받았다.
두 장 남은 달력을 보며 아쉬워하기보다는 아직 한 달이 더 남았음을 감사하고, 마지막 남은 가을볕을 아끼는 마음으로 11월도 즐겁게 누리며 머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