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 쳇바퀴처럼 반복된 하루 속에서 무미건조함은 커져갔다. 바로 그때 베트남 주재원선발공고가 떴다. 이거다 싶었다. 그간 쌓아온 강점으로 베트남 시장이라는 무대 한복판에서 뛰어보겠다는 당찬 생각.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다는 예술가 혼을 빗댄다면 너무 건방졌을까.
그렇게 지원서를 작성하고 면접까지 봤다. 결과는 쿨하게 낙방. 아쉽지만, 다음기회를 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날, 베트남 학원에 등록했다. 부족한 것을 채워 다시 도전하기 위한 나만의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재도전을 위해선 하나가 더 필요했다. 다음 공고가 있을 때까지 지금 자리에서 더 근무해야만 했다. 지점장님께 인사상담을 드렸고 인사부 앞 해당 내용도 전달하였다. 그렇게 인사철이 도래했다.
그즈음 현재 근무지가 타 지점과 통폐합작업 중에 있었다. 우연 속 행운이었을까? 통폐합되면서 팀장자리 하나가 생겼다. 운이 좋게도 내가 그 자리를 맡게 됐다. 주재원선발 낙방이 도리어 전화위복이 되었다.
'내가 팀장이라니!'
조직에서 나를 알아준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마음이 이상했다. 좋기만 할 줄 알았던 발령이 조금씩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어진 일에 익숙했던 나에게 ‘팀장’은 어느새 부담처럼 다가왔다. 주어진 일만이 아닌, 팀원들을 리드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주변에서 나를 쳐다보는 눈빛도 확연히 달라졌다.
나는 과연 팀원들의 리더가 될 수 있기는 할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자신이 없다. 특히 업무지식에 대한 자신감 결여가 컸다. 여타 팀원보다도 내가 더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팀원일 땐 일을 수행하면서도 놓치거나 짚어내지 못했던 부분을 팀장은 짚어냈다. 그래서 안심이 됐었고 의지할 수 있었다. 업무지식이 완벽하지 못했던 내가 마지막 배후가 되어줬던 그들처럼 할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또 다른 두려움도 있었다. 팀장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말이다. 그간 모셨던 팀장들의 좋은 점만을 기계적으로 모아본다면 해볼 만했다. 하지만 그건 이론적 조합이었음을 이내 깨달았다. 다른 사람의 모습들로 흉내 내다간 어느 순간 크게 브레이크가 걸릴 것 같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면 시행착오라 하기엔 나 자신의 신뢰와 진심이 훼손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라는 사람으로 흉내가 아닌 서툴더라도 나답게 하자고 결론짓게 된 이유다. 예를 들어, 팀원들과는 어떻게 지내고 적시에 적합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내려야 될까. 업무적 지식은 평소 성격대로 돌파하면 되겠지 싶었다. 모르면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알려달라고. 혹은 함께 답을 찾아보자고 했던 것들이 기존 내 스타일이었다. 서서히 ‘찐’ 고민의 실체가 엄습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