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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권이 없으면 화나고, 선택권이 있으면 불편하다

by 세미한 소리


얼마 전 병원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진료 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진료실에서 나오면서 큰 소리로 역정을 내셨습니다. “아니, 의사 선생님이 정해줘야지, 그걸 환자한테 정하라고 하면 어떡해!” “그게 아니라, 의사 선생님은 그 주사가 비급여 주사이고, 또 비용도 조금 비싸서, 환자분께 강요하지 않고 선택을 하라고 하신 거예요.” 간호사 선생님이 상냥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셨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큰 소리로 말하셨습니다. “나 돈 있어! 병원에 돈 가지고 왔어! 카드도 있어! 여기서 제일 비싼 주사가 얼마인데 그래?” 예상하지 못한 할아버지의 말씀에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비싸건 아니건 환자인 내가 그 주사가 필요한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의사 선생님이 맞으라면 맞는 거고, 맞지 말라면 안 맞는 거지, 안 그래요?”


아마도 의사 선생님이 진료실에서 환자분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주사가 있는데, 필요하시면 맞고 가셔도 되고, 괜찮으시면 그냥 가셔도 된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환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비싼 주사를 강요하기보다 소개만 한 의사 선생님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그 배려가 오히려 힘들었던 할아버지 마음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환자인 우리가 정확하게 판단하고 선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그런데 만약 반대로 의사 선생님이 비싼 주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환자에게 그에 대한 설명이나 동의 없이 주사를 처방했다면 어땠을까요? 몇 천 원의 병원비를 예상하며 계산하려는데, 갑자기 몇 만 원의 진료비가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오히려 반대로 의사가 환자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비싼 주사를 처방했다고 역정을 내지 않으셨을까요?


할아버지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으면 억울해하면서 화를 냅니다. 그런데 막상 선택권이 주어지면 당황하면서 힘들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오늘날은 예전에 비해서 선택지도 다양해졌고, 정보도 넘쳐납니다. 그래서 좋은 선택을 하려고 하면 공부할 것도 많고, 고민해야 할 점도 많습니다. 그냥 대충 선택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습니다.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필요한 주사인데 맞지 않은 것은 아닐까? 반대로 필요 없는 주사인데 맞은 것은 아닐까? 선택하지 않았던 일이 더 좋은 것은 아닐까? 내 선택이 손해를 가져오면 어떡하지? 이러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선택을 망설이게 하고 어렵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선택권을 포기하고 타인에게 넘겨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최선 정보와 다양한 선택지를 무시하고, 예전부터 하던 안전하고 뻔한 선택만을 고집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어떡해야 할까요?


완벽한 선택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당장 좋은 결과를 가져온 선택이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골칫거리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당장은 손해지만 나중에 큰 도움을 주는 선택도 있습니다. 완벽히 좋기만 한 선택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나쁘기만 한 선택도 없습니다. 따라서 선택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대충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선택에 너무 심각해지고 모든 것을 걸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조금은 가볍고 경쾌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선택한 결과가 똑같이 좋지 않아도, 그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은 다음에 비슷한 선택의 순간에서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에 대해서 남 탓과 상황 탓만을 하는 사람은 다음 기회에도 꽝일 확률이 높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선택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조금 더 가볍고 경쾌하게, 그 대신 조금의 책임감을 더하고 선택하면 어떨까요? 여러분의 선택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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