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휴가를 강원도로 갔습니다. 그때 딸이 자신의 핸드폰을 제게 보여줬습니다. 딸 친구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었죠. 사진 속 딸 친구가 유럽의 멋진 건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딸은 또 다른 친구의 프로필 사진도 보여줬습니다. 푸른 바다의 아름다운 해외 휴양지 사진이었습니다. 우리도 해외로 휴가를 가자는 무언의 압박이었죠. 올해에는 강원도에서 재미있게 놀고 내년에는 꼭 비행기 타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휴가는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갑니다.
가족들과 여러 후보지를 고민한 결과, 일본 도쿄와 베트남 푸꾸옥이 최종 후보가 되었습니다. 가족 단톡방에서 투표를 진행했는데, 3대 1로 일본 도쿄가 이번 여름 휴가지로 선정되었습니다. 일정은 7월 말로 정했고, 좋은 가격의 항공권을 구입하기 위해서 4월에 미리 항공권을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호텔과 필요한 것들도 하나 둘 예약했습니다. 그런데 6월 초가 되자 한 명 두 명씩 7월에 일본 여행은 위험하지 않겠냐며 잘 알아보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지진이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일어났고, 뉴스에서도 일본 지진에 대해 계속 보도했습니다. 갑자기 7월에 지진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언제 지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본이기에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가족투표를 했고, 3대 1로 도쿄여행을 취소하자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취소 수수료가 아까웠지만, 불안해하면서 여행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도쿄 여행의 모든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베트남 푸꾸옥 항공권을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나름 괜찮은 항공권을 찾아서 결제했는데, 바로 취소되었습니다. 전산오류로 구입할 수 없는 항공권이라는 안내가 떴는데, 아마도 20일 정도 남은 시점에서 저렴한 항공권에 사람들이 몰려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 뒤로도 3번이나 결제와 취소가 반복되었고, 제 마음은 점점 더 급해졌습니다. 그러다가 한 예약 사이트에서 항공권을 결제했고, 취소도 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라고 여기고, 이제 푸꾸옥 호텔을 알아보려고 하는데, 예약한 사이트에서 쿠알라룸푸르 호텔 광고가 떴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계속 쿠알라룸푸르 관련된 내용이 올라왔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의 예약'을 눌러서, 제가 결제한 항공권을 확인했습니다.
쿠알라룸푸르! 제가 푸꾸옥이 아니라 쿠알라룸푸르 항공권을 구매한 것이었죠. 지금도 왜 그리고 어떻게 푸쿠옥이 아니라 쿠알라룸푸르를 결제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급하게 하다가 실수한 것이겠죠. 그렇다고 취소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미 일본 여행 예약을 취소하면서 상당한 수수료를 지불했거든요. 그래서 그냥 쿠알라룸푸르로 여름휴가 갑니다.
지난 4월에 도쿄 항공권을 살 때에는 7월에 도쿄로 가는 일이 확실했습니다.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핸드폰으로 푸꾸옥 항공권을 급하게 구매할 때에는 푸꾸옥으로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도쿄도 아니고 푸꾸옥도 아니고 쿠알라룸푸르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준비하고, 계획하고, 선택했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변수와 실수가 겹치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하고 선택해도 변수는 늘 있습니다. 실수도 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늘 불확실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불확실성을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러면 불확실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제가 쿠알라룸푸르를 결제하고 멍하게 있으니까, 옆에 있던 딸이 자신이 처음에 여행 어디로 갈지 찾아봤을 때 쿠알라룸푸르도 찾아봤는데, 여행지로 괜찮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들도 자기 방에서 나와서 완전 부루마블이라며, 평생 이야기할 추억거리가 생겼다고 웃으면서 말해주었습니다. 아내는 일본 여행을 취소해서 계속 일본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갑자기 쿠알라룸푸르로 여행을 가게 되어서 지금은 일본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가족들의 말이 저를 진정시켜 주었습니다. 만약 혼자였다면 쿠알라룸푸르로 여행 가는 일에 대해 자책하고, 화내고, 걱정만 했을 텐데, 가족이 함께 하니까 불확실한 쿠알라룸푸르 여행이 오히려 기대되었습니다. 불확실한 인생을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 불확실한 미래로 걸어가야 한다면 너무 겁나고 불안합니다. 그러나 함께 걸어가면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불확실함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을 얻게 됩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혼자 말고 함께 삽시다. 어느 것 하나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함께 나아가면 즐거운 여행길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