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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나> 함께 피난 가도 되나요?

by 세미한 소리

지난 화요일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그림책 한 권을 구입했습니다. 청소년 소설 <순례 주택>를 쓴 유은실 작가가 글을 썼고, <그림자 너머>로 2014년 볼로냐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된 이소영 작가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 <전쟁과 나>입니다. <순례 주택>과 <그림자 너머>를 모두 읽었기에 고민 없이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습니다. 40대 성인 남자가 그림책 한 권을 손에 들고 계산대 앞에 줄 서 있는 모습이 어색해 보일 수 있었겠지만, 저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 찼습니다. 서점에서 돌아와 바로 읽었는데, 책 소개글처럼 ‘아주 특별한 평화 그림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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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저학년 박온은 할머니, 할아버지랑 셋이 삽니다. 할머니가 집에 나온 불개미를 킬라를 뿌려 죽이면서 “난리 나겠다”라고 말합니다. 할머니가 말하는 난리는 전쟁입니다. 할머니가 아홉 살 때 6.25 전쟁이 났었는데, 전쟁이 나기 전에 지금처럼 불개미가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말에 온이는 겁났습니다. 어제 뉴스에서 ‘한반도 전쟁 위기’라는 말을 봤기 때문입니다. 온이가 전쟁 나면 어떡하냐고 할머니에게 묻자, 할머니는 피난 가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전쟁 나면 온이를 삼촌네 집에 딸려서 피난 보내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피난 가지 않고 집에 남겠다고 말합니다.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타서 걷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온이는 전쟁과 피난도 겁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가지 못하는 점도 슬프고 싫습니다. 그러다 큰 차가 있으면 피난을 함께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큰 차를 가진 이웃집을 다니면서, 만약 전쟁이 나면 자신과 할머니, 할아버지를 태워서 함께 피난 가달라고 부탁합니다. 과연 이웃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이온이의 부탁을 들어주었을까요? 직접 읽는 기쁨을 남겨두기 위해서 결말은 생략합니다.


책을 읽고 나서 많은 감정과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온이 할머니는 살아오면서 불개미 떼를 얼마나 자주 봤을까요? 그때마다 매번 전쟁 트라우마가 떠올랐을까요?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을까요?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저로써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상처입니다. 그런데 이 아픈 상처를 만드는 무서운 전쟁이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전쟁들은 그곳에 살고 있는 9살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극복하지 못하는 끔찍한 상처를 내겠지요?


이 끔찍한 전쟁을 어떡해야 막을 수 있을까요? 참 속상한 질문입니다. 평범한 한 사람이 무슨 힘으로 전쟁을 막겠습니까? 그러면 대신 다른 질문을 해볼까요? 만약 여러분에게 이웃집 아이가 와서 온이와 같은 부탁을 하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저도 진지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목사인 제게는 교회 승합차량이 있기 때문에 이온이가 얼마든지 찾아와서 물어볼 수 있거든요. 아마도 저는 이온이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을 거 같아요. “전쟁이 나면 걱정하지 말고,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함께 교회로 오세요.” 비록 상상이지만 목사답게 대답한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스스로 칭찬하고 있는데, 문득 제 깊은 곳에서부터 다른 질문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온이네 말고 다른 사람들도 찾아오면 어떡하지? 교회 승합차와 개인 승용차를 탈 수 있는 인원을 넘어선다면 누구부터 거절해야 하나? 양가 부모님들과 가족도 있는데, 다른 어르신과 사람들을 모시고 피난 가는 것이 맞을까? 그저 상상일 뿐인데도 제 깊은 곳에 망설이고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실제 상황이라면 아까처럼 웃으면서 목사답게 답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고, 이제는 칭찬대신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반대 상상도 했습니다. 만약 우리 차가 망가져서 피난 가기 어려워졌다면, 누구에게 함께 피난 가자고 부탁해야 할까? 그 사람은 내 부탁을 들어줄까? 여러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여러분을 태워 줄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이라면 태워 주시겠습니까?


책을 읽고 한 제 질문은 다소 어둡지만 책 자체는 유쾌하고 가볍습니다. 무엇보다 책이 알려준 사실이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전쟁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따뜻한 마음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때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해서 전쟁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낼 수는 있습니다. 조금만 더 따뜻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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