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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을 편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입니다.

by 세미한 소리

얼마 전 속상한 기사를 접했습니다. 지난 7월 29일 이태원 참사에 출동했던 소방관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8월 20일에도 이태원 참사 출동 후 우울증을 앓던 소방관이 실종된 지 열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관련 기사였습니다. 159명이나 목숨을 잃어버린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직접 마주해야 했던 광경, 비명소리, 살려달라는 외침, 냄새와 촉각, 그 모든 것들은 얼마든지 트라우마를 만들 만큼 파괴적이었습니다. 더욱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위험도 감수하는 책임감 있는 소방관들이기에, 눈앞에서 생명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그들의 마음을 갉아먹었습니다. 이런 속상한 일은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한 이들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15년부터 2025년 8월까지 10년간 자살한 소방관이 무려 141명인데, 순직 소방관의 숫자보다 무려 두 배나 많은 수치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상담이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소방관들의 마음을 돌보기에는 부족한 현실입니다. 소방관들에게 보다 더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하고, 동시에 인력 확충과 근무 개선도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변해야 하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소방관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증세와 같은 심리적 문제를 마음 편하게 털어놓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소방관이 지닌 강인한 영웅 이미지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영웅이라고 여기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실망하고, 약하다고 비웃으며, 나아가 소방관 답지 않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소방관들은 심리적인 문제가 있어도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괴로워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경찰관도 비슷합니다. 2020년부터 2025년 7월까지 경찰관 131명이 자살했습니다. 자살의 직접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강인함을 요구하는 경찰관이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기 꺼려하고 심리적 문제를 자기 혼자서 안고 있어야 하는 분위기가 자살의 큰 요인 중 하나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각자의 약함을 드러낼 수 있나요? 목사인 저 역시 소방관이나 경찰관처럼 제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밝히고 드러내는 일이 두렵습니다. 만약 저의 약함이 밝혀지면, 무능하고 영성이 부족한 목사로 낙인찍힐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마 여러분 역시 각자의 약함과 심리적 문제를 밝히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일이 자신의 삶을 망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숨길 수록 삶이 망가지고,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면 삶이 회복됩니다. 소방관도, 경찰관도, 목사도, 그리고 여러분도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 약해지고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지나면 해가 떠오르듯이, 인생의 어두운 시간도 때가 되면 지나갑니다. 그러니 자신의 약함을 숨길 필요 없고, 창피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듯이 마음이 아프면 마음을 치료하면 될 일입니다. 각자의 아픔과 약함을 용기 내어서 드러냅시다.


그리고 반대로 다른 이들에 대한 시선도 바꿔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다른 이들의 약함과 실수에 너무 매정하고 가혹합니다. 찬사를 보냈던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이 조금만 잘못하고 약하고 못난 모습을 보여주면, 무섭게 돌변해서 그들을 비난하고 공격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다른 이들의 실수에 버럭 화를 내는 일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약하고 작은 이들은 무시하고 소외시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더 다른 이들의 약함과 실수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상대방은 물론이고 나 역시도 그만큼 편안하게 각자의 약함을 드러낼 수 있고, 그만큼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러니 나와 남을 위해서 조금만 더 너그러워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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