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우울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 아니다

네 번째 마음 : 무기력 (우울)

by 세미한 소리

*이미지 출처 : 한겨레, 생각은 축복이지만 행불행을 가른다.


우울증이 감기처럼 흔한 시대이다. 소아 청소년 우울증, 취업 우울증, sns 우울증, 육아 우울증, 노인 우울증처럼 생의 전 연령기와 일상의 많은 일들에 우울증이 턱 하고 달라붙는다. 이처럼 예전에 비해 우울증이 많아진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지금 사회가 예전에 비해 우울증을 많이 만들어 내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물질과 결과 중심의 사회, 과도한 경쟁, 소비를 장려하는 문화, 보이는 모습이 중요한 분위기. 이러한 환경은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고, 스트레스는 우울증의 좋은 먹이가 된다. 스트레스를 먹고 자라는 공황장애, 번아웃 증후군도 함께 많아진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편 반대 지점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명현현상은 장기간에 걸쳐 나빠진 건강이 호전되면서 나타나는 일시적 반응인데(다음 사전 참고), 우울증이 갑자기 많이 드러나는 현상을 사회적 명현현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잘 몰랐던 이전 사회에서는 우울증이 우울증인 줄 몰랐지만, 이제는 예전보다 우울증에 대해 잘 알게 되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우울증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사회는 예전에 비해 우울증에 취약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울증에 잘 대처하는 중이다.


그러다 문득, 또 다른 생각을 해본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우울증 중에 우울증이 아닌데 우울증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슬픔과 우울증은 다르다.


프로이트는 ‘슬픔과 우울증’(Trauer und Melancholie)이라는 논문에서 병리적 우울증을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 슬픔과 비교한다. 정상적인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그 원인을 본인이 알지만, 우울증 환자는 그 원인을 알지 못한다. 슬픔은 의식 영역에서 다루는 감정이지만, 우울증은 무의식 영역에서 작동하는 심리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상(사람, 사랑, 돈, 일, 신념 등)을 상실하여 슬픔을 느낄 때, 정상적인 경우는 그 상실을 인정하지만, 우울증 환자는 그 상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실을 받아들인 이들이 애도의 시간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반면에, 상실을 인정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는 애도를 하지 못한 채, 계속 깊은 슬픔에 남게 된다. 그 결과 우울증 환자는 대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자아) 상실한다.


정상적인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슬프지만 동시에 삶의 욕구를 느낀다. 먹고 싶고, 졸리고, 무언가를 하고 싶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는 욕구를 잘 느끼지 못한다. 식욕이 없고, 잠도 잘 못 자고, 무기력해진다.


정상적인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남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도움도 받지만, 우울증 환자는 남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법이 없고, 도움을 준다고 해도 거절한다.


이처럼 슬픔과 우울증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만약 우울증을 정상적인 슬픔으로 착각하면, 상황이 악화되어 손쓸 도리가 없어지게 되고, 반대로 정상적인 슬픔을 우울증으로 착각하면, 환자가 아님에도 억울하게 환자처럼 살게 된다. 따라서 우울증과 슬픔을 혼동하지 말고 구분해야 하는데, 이를 사막에 살던 수도자에게 배울 수 있다.



슬피 울면서도 우울증에는 걸리지 않았던 수도자들에게 배우자.


수도자를 생각하면 기쁘게 웃는 모습보다 슬프게 우는 모습이 떠오르겠지만, 실제 수도자들은 슬픔을 경계했다. 수도자들이 경계한 슬픔은 헬라어로 루페(λπη)인데, 자기 연민으로 생기는 고통을 참지 못해 우는 것을 의미한다. 언뜻 보면 자기 연민으로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행동이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로 보이겠지만, 실은 그 반대이다. 자기 연민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혐오를 불러내고, 자기혐오에 빠진 이들은 점차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수도자들이 슬픔과 무기력을 경계했고, 6세기 교황 대그레고리오 1세 역시 무기력을 7가지 죄(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마음) 중 하나로 제시했다.


그러면 수도자들이 슬픔과 무기력을 경계하면서 했던 일은 무엇일까? 깊이 슬퍼하며 울었다. 다만 루페라는 자기 연민의 슬픔이 아니라 펜토스(πένθος)라는 또 다른 슬픔으로 말이다. 루페는 자기 연민으로 울지만, 펜토스는 자기 죄 때문에 운다. 루페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다 점차 자신을 비하하지만, 펜토스는 자기 죄를 속상해하다가 점차 반성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루페의 끝은 무기력과 우울증이지만, 펜토스의 끝은 용서와 기쁨이다. 그래서 펜토스를 기쁜 눈물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수도자들은 좋은 슬픔으로 위험한 슬픔을 막아냈다. 자신의 슬픔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그 슬픔이 어디로 가는지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수도자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울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사랑할 수 있었고, 그 누구보다 슬피 울면서 동시에 진정으로 기뻐할 줄 알았다.


수도자처럼 우리도 각자의 슬픔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 모든 감정이 그러하듯 슬픔 역시 사람이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슬픔은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다만 루페와 우울증 같이 병든 슬픔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수도자들이 루페와 펜토스를 구분하며 자신의 슬픔을 살핀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슬픔을 잘 살피고 돌봐야 한다. 내가 느끼는 슬픔의 원인 무엇인지, 그 슬픔이 나를 어떤 상태로 만드는지, 시간이 지나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슬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그 대처가 적절한지를 날마다 점검해보자.



우울한 사람이 우울증이 걸리는 것이 아니다


항상 슬퍼하며 울었던 수도자들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점을 보면서, 우울한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아님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우울증은 왜 걸리는 걸까? 프랑스 정신분석가 장-다비드 나지오는 “우울증, 누구에게 찾아오나요?”라는 책에서 우울증이 생기는 4단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장-다비드 나지오가 만든 '우울증 생성 도식'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1) 아동기에 경험하는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은 성인이 되어 겪는 여러 가지 심리 문제의 근본적이 원인이 된다. 그중 가장 빈번한 형태는 세 가지이다. 아동기에 애정결핍을 경험하거나 방치, 유기된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 공포와 불안에 취약하고, (유기 트라우마 → 공포 장애) 정신적 혹은 신체적인 학대를 당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 강박 장애로 고생하며, (폭력 트라우마 → 강박 장애) 성적 학대나 성에 관련한 부정적인 경험을 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 히스테리 장애를 얻을 확률이 높다.(성적 학대 → 히스테리 장애)


(2) 트라우마를 경험한 아동은 자신의 상처를 진정시키고, 불쌍한 자신을 보상하기 위해 병적이고 과장된 자기애적 환상을 만든다. 예를 들어 자신을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전능한 인물로 상상을 하거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이들과 달리 지금 혹은 앞으로 관계할 이들은 천사처럼 자신을 대하고 완벽한 사랑과 보호를 해주리라 상상한다. 또한 직장, 돈, 건강, 신념 따위를 지나치게 이상화시켜 숭배한다.


(3) 가까운 사람의 죽음, 배우자의 불륜, 가족 갈등, 금전손실, 해고와 같이 감정 쇼크를 불러오는 큰 일을 경험하면, 무의식에 숨어 있던 과장된 환상이 화산처럼 폭발한다. 폭발과 함께 하늘 높이 치솟은 용암과 화산 분출물들이 다시 땅으로 낙하하는 것처럼, 병적으로 이상화시켰던 과장된 환상은 이제 쓰라리고 지독한 자기 환멸로 추락한다.


(4) 감정 쇼크로 인하여 발생한 자기 환멸이 우울증을 만든다. 그래서 장-다비드 나지오는 우울증을 슬픔과 우울함 같은 감정 장애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이 소멸되어 생기는 환멸의 질병이라고 정의한다.


아동기에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장-다비드 나지오는 아동기에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의 과반수만이 잘못된 환상을 갖게 되고, 잘못된 환상을 가진 사람 중 과반수만이 감정 쇼크 후 자기 환멸을 동반한 우울증에 빠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과반수는 정확한 확률이라기보다 절반의 기회가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로 읽힌다. 비록 어렸을 때 트라우마를 경험했을지라도 잘못된 환상이 아닌 건강한 환상을 선택할 수 있고, 비록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아픈 사건을 경험할지라도 자기 환멸로 추락하지 않을 수 있고, 비록 우울증에 빠진다고 해도 얼마든지 회복하고 남은 인생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메시지 말이다.



우울한 감정이 아니라 우울한 생각을 고치자.


장-다비드 나지오의 '우울증 생성 도식'은 우울증이 우울한 감정이 아니라, 잘못된 환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치료 역시 우울한 감정을 제거하는 방법이 아니라, 잘못된 환상을 수정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무의식에 자리 잡은 환상을 수정하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난가을 몇 주 동안 운동도 하고 단풍구경도 할 겸, 아침마다 집 앞에 있는 구룡산에 올라갔었다.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고 약수터까지만 다녀오는 코스라서 조금 빠르게 걸었고, 정상까지 긴 호흡으로 천천히 산에 오르는 분들을 만나면 추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경험을 했는데, 내가 추월했던 사람이 나보다 먼저 약수터에 와 있었다. 등산로가 하나뿐이라 그 사람이 나를 추월해야만 나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는데, 나를 앞서 추월한 사람이 없었다. 이상했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혼동했겠지 하며 넘어갔는데, 며칠 뒤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귀신이었을까? 너무 힘들어서 헛것을 보는 걸까? 답을 얻지 못하고 내려오다가, 멀리서 올라오던 사람이 갑자기 길에서 벗어나 산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봤다. 빠르게 그 장소로 가보니 거기에 샛길이 있었다. 원래는 길이 아니었지만, 몇몇 사람들이 반복해서 다니다 보니 아는 사람만 다니는 샛길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어떤 의미로 잘못된 환상을 수정하는 일은 마음에 샛길을 만드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트라우마와 잘못된 환상이 우울증으로 가는 큰길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건강하고 좋은 생각으로 우울증을 우회하는 작은 샛길을 만들면 된다.


- 지금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환상이나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 지금 경험하는 실패와 상실이 나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망가뜨릴 수 없다.

- 모든 것에 완벽할 필요 없다. 나는 불완전하지만 충분히 괜찮다.

- 꼭 가져야 하고, 꼭 해야 하는 일 따위는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이 행복의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칭찬할 때 행복해진다.

- 돈, 명예, 성공 따위가 내 전부가 될 수 없다.


위의 생각들은 예시일 뿐이다. 이것이 아니라도 자신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생각이 있다면 모두 버리면 된다. 반대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생각이라면 뭐든 반복해보자. 길이 없는 숲에 처음 들어가는 일은 무섭겠지만, 반복해서 들어가고, 걷고 또 걷다 보면 반드시 길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생각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마음에 작은 산책길이 생길 것이다. 용기 내보자.



도움받고 도움 줄 용기를 내자.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우울증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분명하게 말해야겠다. 우울증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요인 말고도 유전과 뇌신경의 문제로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우울증에 걸렸을 때 혼자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니 우울증에 대해 자신만만해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우울증이 의심된다면 전문가와 주변의 도움을 받자. 장-다비드 나지오는 우울증의 증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1. 불안과 증오에 찬 슬픔이 지배적이라면

2. 머릿속이 온통 자기 폄하적인 반추로 꽉 차 있다면

3. 어떤 의욕도 없고 지치고 처지는 느낌이라면

4. 나는 인생을 망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느낀다면

5. 자살하고픈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면

6. 식욕이 없고 잠을 못 이루다면

7. 이런 힘든 상태가 몇 주간 지속되는데도 역설적으로 이런 상태를 즐기고 있다면


만약 여러분이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전문가를 찾아가서 상담받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도움받으면 괜찮아질 수 있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도움을 받자.


그리고 만약 여러분 주위 사람에게서 이런 모습을 발견했다면, 비난하거나 몰아세우지 말고, 존중하는 태도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해보자. 반박하거나 가르칠 필요도 없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말이 아니라 마음일 테니까 말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챠우챠우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노래는 록밴드 델리스파이스가 평론가에게 악평을 듣고 만든 노래라고 한다. 신인가수에게 평론가의 악평이 얼마나 아팠을까? 주변 사람들의 무시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 애를 쓰고 막아 봤지만 평론가의 악평이 끈질기게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델리스파이스는 계속해서 들리는 그 소리에 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소재로 노래를 만들었고, 큰 성공을 얻었다. 아마도 이제는 악평을 한 평론가에게 델리스파이스의 노래가 끈질기게 들릴 것이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환상과 생각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소리친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해도 너무나 선명하게 들린다. 그러니 우리도 델리스파이스처럼 그 소리를 막으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내 안에 있는 더 아름답고 강인한 노래를 부르자.





하나. 나의 슬픔과 우울한 마음을 인정하고 친해지자. 슬픔이 우울증을 만들지 않는다.


둘.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과장된 환상, 부정적인 생각, 잘못된 판단에서 벗어나자.


셋. 건강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도구로 마음의 샛길을 만들자. 그 과정을 통해 건강하고 긍정적인 태도가 근육처럼 생긴다.


넷.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도움을 받자.




참고도서

슬픔과 우울증.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 열린책들

우울증, 누구에게 찾아오나요? 장-다비드 나지오 / 한국임상정신분석연구소

아들러의 감정수업. 게리 D 맥케이, 돈 딩크마이어 / 시목

모래와 함께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 방성규 / 이레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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