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마음 : 분노 (화)
하루를 보내다 보면 화날 일이 생긴다. 새로 산 하얀 운동화를 신고 즐거운 마음으로 외출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내 신발을 밟았을 때, 심지어 미안하다고 인사도 안 하고 일행들과 웃으며 그냥 가버릴 때 화가 날만하다. 지하철 안에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조용히 가고 있는데, 마스크를 내리고 큰 소리로 전화하는 사람이 있을 때, 심지어 마스크를 제대로 써달라는 요청에 싫다며 욕할 때 화가 날만하다. 이럴 때 우리는 화날만한 상황이니까 화내야 할까? 아니면 화내는 행동이 나쁜 행동이니 참아야 할까?
6세기의 교황 대그레고리오 1세는 화내는 행동은 사람을 죄와 불행에 빠지게 한다고 경고했다. 동양의 많은 스승들도 화내지 말고 참을 것을 당부했다. 내 어머니도 나에게 성질 좀 죽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참아야 할까? 그런데 화를 참으면 내 마음이 아프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화를 억지로 참기만 하면 화병이 난다. 그래서 6세기와 달리 오늘날에는 심리적 병이 생길 수 있으니 화를 무조건 참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화내라는 말인가? 화내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후회와 죄책감이 들 때가 더 많다. 또한 화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해결은커녕 작은 싸움이 큰 싸움이 될 때가 더 많다. 진퇴양난이다. 참으면 화가 안에서 독이 되어 속병을 만들고, 참지 않으면 독이 밖으로 뿜어져 싸움과 갈등을 만든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화의 목적은 통제, 승리(열정의 고취), 복수(앙갚음), 자기 권리보호이다.
화는 기쁨, 슬픔과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감정이다. 그리고 모든 감정이 그렇듯이, 화 역시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통제, 승리, 복수, 자기 권리보호이다. 자신의 계획과 통제가 무너지고 혼란할 때, 경쟁에 져서 열등감을 느낄 때, 상대방에게 상처받았을 때,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화가 난다. 그래서 화낸다, 타인과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경쟁과 시험에서 이기려는 열정을 얻기 위해, 나에게 상처 준 상대에게 앙갚음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아들러의 감정수업. p85~89)
알프레드 아들러는 화가 품위 있고 성숙한 방법이 아님에도, 자신에게 대항하는 모든 저항을 재빨리, 그리고 힘에 의해 진압해 버리는 일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용한다고 말한다.(아들러의 인간이해. p331) 아마 대부분 화내서 원하는 것을 얻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예전에 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이었을 때, 학생들을 훈육한다는 핑계로 자주 화를 냈었다. 어느 날인가도 중학생 둘이 싸워서 소리치며 화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혼이 나는 학생들 뿐 만 아니라 센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내 눈치를 봤다. 다른 학생들은 물론이고 복지사, 급식교사, 성인 자원봉사자까지 모두가 말이다. 순간 효과적인 줄만 알았던 내 화가 얼마나 폭력적이기도 했었는지 깨닫고 충격받았다. 과연 이를 건강한 통제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보다 먼저 통제가 꼭 화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일까? 상호 간의 약속과 협력을 통해 질서와 조화를 만드는 더 나은 방법도 있지 않은가? 화의 다른 목적도 마찬가지이다. 힘으로 눌러서 패자를 만드는 승리보다, 승자와 패자 없이 모두가 이기는 승리가 더 값지고 멋지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기 때문에, 복수를 통해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관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상처를 회복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화내는 일 역시 추천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사막 수도자였던 마카리우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이웃의 잘못을 바로 잡는다며 화를 내서는 안되네.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고 자신을 멸망으로 밀어 넣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않나"(마카리우스 17) 화가 자기 권리를 되찾아 줄 수 있는지 모르지만, 화가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우리 마음과 일상에 자리 잡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화를 참으라는 소리인가? 아니다. 일단 멈추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경고등을 표시하여 점검하라고 요청하는 것처럼, 화는 우리 마음과 관계, 일상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알리는 경고등이다. 따라서 화가 나면 "준비, 땅!"하고 화낼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불편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점검하고 살펴봐야 한다. 화나는 목적이 화내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화는 그저 불편한 상황을 점검하고 해결하라는 경고등일 뿐이다. 그러니 화 낼 일이 아니라, 경고등의 불을 끌 수 있는 더 현명하고 건강한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
생각이 바뀌면 감정도 바뀐다.
화난 상태에서 화내지 않고 더 나은 방법으로 행동하라는 말에 머리는 끄덕여지지만, 마음은 고개를 흔든다. 마음에 가득 찬 화를 무슨 수로 잠재운다 말인가?
교회에서 피아노 조율사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시간이 거의 다 되어 교회가 있는 건물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마음은 급한데 앞에서 내려가던 차가 너무 천천히 가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운전자가 전화나 딴짓을 하는 것 같았다. 지하 5층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약속시간에 늦게 될 것이다. 짜증 났고 화가 났다. 그때 문득 조율사 선생님의 연세가 많다는 것이 떠올랐고, 앞의 차 운전자가 조율사 선생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 내 안에 있던 화가 다 사라졌다.
앞 차 운전자가 핸드폰을 보거나 딴짓을 하면서 천천히 간다고 판단한 것이, 연세 많으신 분이 낯설고 좁은 공간에서 주차 공간을 찾으며 운전해서 천천히 간다는 판단으로 바뀐 순간, 내 화는 미안함으로 변했다. 화를 만들어낸 생각과 판단이 달라졌기 때문에, 감정도 화에서 미안함으로 달라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얼마든지 화를 다른 감정과 태도로 바꿀 수 있다. 오히려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과거와 다른 사람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일어난 사건은 바꿀 수 없고, 다른 사람 역시 내 마음대로 바꾸기 어렵다. 그에 비하면 나 자신과 내 마음을 바꾸는 일이 훨씬 더 빠르고 쉽다. 그러니 화를 내서 과거와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말고, 차라리 내 생각과 판단을 바꿔 화를 잠재워보자.
자신의 화를 만나자.
평소에 어떤 상황에서 화내는가? 통제, 승리, 복수, 권리보호 중 주로 어떤 목적으로 화내는가? 화내는 방법도 윽박지르기, 짜증내기, 부정적으로 반응하기, 우울해하기, 무시하기처럼 다양한데, 어떤 방식으로 화내는가? 한 걸음을 물러나서 자신의 화가 어떤 모양인지 자세히 살펴보자. 그리고 점수 매겨보자.
지역아동센터에서 근무했던 나를 한 번 더 예로 삼아보겠다. 그때 나는 주로 내 계획과 통제가 무너지고 벗어나는 순간에 타인과 상황을 다시 통제하기 위해 인상을 쓰고 소리를 지르며 화냈다. 이러한 내 화는 통제하는 일에 있어서는 빠르고 효과적이었을지라도, 성숙과 건강 면에 있어서는 낙제점이다. 마치 자신의 방식에 따르지 않는 국민들을 군대로 장악해버리는 독재자의 폭력과 닮았다고 할까? 각자의 화는 어떤가? 다시 생각해도 화낼만한 상황이었는가? 화내는 방식이 정당했는가? 과장되거나 폭력적이진 않았는가? 화내서 기분이 좋아지고 일이 해결되었는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더 많은 이들이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과거이고, 과거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 대신 앞으로 화났을 때, 더 건강한 방법으로 화내면 된다.
가장 먼저 화날 때, 화를 만들어낸 자신의 판단과 생각이 합리적이고 정당한지 점검하자. 생각보다 내 생각과 판단은 정확하지 않다. 심하게 자신 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편파적이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역지사지의 자세로, 내 자리가 아니라 상대방의 자리에서 같은 사건을 다르게 바라보자. 만약 그럼에도 화가 날만한 상황으로 판단되면, 화를 내서 얻으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해보자. 화의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화내는 것이 아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질서를 부여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전달하고, 침해당한 권리를 되찾고,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 화의 진짜 목적이다. 이를 얻기 위해서 과거의 나처럼 인상 쓰고 소리 지를 필요 없다. 찾아보면 더 좋은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도 여전히 화를 내야겠다면, 몇 가지만 조심하자. 일단 대상자에게 직접 화내야 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많은 경우 종로에서 빰을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밖에서 난 화를 가족들에게 풀고, 가족에게 얻은 화를 부하직원에게 푼다. 이런 화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만약 화나게 한 사람에게 직접 화낼 용기가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화내지 말고, 차라리 도움을 청하자. 다음으로 화내다 보면 목적은 놓쳐 버리고 화만 남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전할 말을 미리 적어서 최대한 감정을 조절하여 전달해보자. 상대방에 대한 비난보다는 자신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전하거나, 유머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말이야 쉽지, 실제로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여전히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인상을 쓰면서 화내는 나 자신이 그 증거다. 다만 전에는 상대방이 잘못했기 때문에 화내는 것이고, 그렇기에 화내는 나는 잘못한 점이 없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화내는 일이 내 문제라는 점을 알게 되었고, 그렇기에 다음에는 더 나은 방법으로 대처하겠다고 다짐하는 점이 다르다. 이 정도면 절뚝거리는 느린 걸음이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화를 참아서 속병이 나지 않으면서도, 화를 내서 갈등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화가 보낸 신호에 건강하게 응답할 수 있지 않겠는가? 천천히 걸어가 보자!
하나. 화는 우리 안에 무언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알리는 경고등이다. 그러니까 '준비, 땅!' 하고 화내지 말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점검하자.
둘. 화의 목적은 자신과 타인에게 화내는 일이 아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질서를 부여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전달하고, 침해당한 권리를 되찾고,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 화의 진짜 목적이다. 그리고 이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 화내는 행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셋. 화날 만한다고 여겼던 내 생각과 판단은 얼마든지 틀 릴 수 있다.
넷. 생각과 판단을 바꾸면, 얼마든지 화를 멈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