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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타자에게 투수의 구질을 알려주는 낭만에 대하여

by 세미한 소리

은퇴한 프로야구 선수들이 야구팀을 만들어서 아마추어 야구팀(고교, 대학, 독립리그)과 야구 경기를 하는 스포츠 예능 <불꽃야구>를 즐겨봅니다. 그런데 보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나왔습니다. 은퇴한 레전드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고, 고등학생 투수가 던진 공에 헛스윙을 했습니다. 그러자 타자가 포수에게 방금 투수가 던진 공이 슬라이더인지 체인지업인지 커브볼인지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상대편 고등학생 포수가 방금 던진 공의 구질을 타자에게 알려줍니다. 상대편 선수에게 자기편 투수가 던진 공의 구질을 알려주는 모습이 이상했습니다. 레전드 선수가 물어봐서? 예전부터 팬이어서? 예의가 바른 고등학생 포수라서? 혼자서 이런저런 이유를 고민하고 있을 때, 더 이상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타석에는 고등학생 타자가 있었고, 레전드 선수가 공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고등학생 타자가 한 참 선배인 은퇴한 포수에게 투수가 방금 던진 공의 구질을 물어봤고, 포수는 고등학생에게 그 구질을 알려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레전드이고 선배라서가 아니라, 야구 경기에서 상대 타자가 포수에게 방금 던진 공의 구질을 물어보면 알려준다고 합니다.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동업자이기 때문에 나오는 낭만적인 장면입니다.


동업자 정신이 만든 낭만적인 장면을 보면서 문득 예전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 가면서 경험한 일입니다. 주문진 해수욕장을 가기 위해 국도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이 우리 차량을 향해 상향등을 여러 번 켰습니다. 어린 제가 봐도 저희 차를 향해서 상향등을 켰다는 점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경험상 비슷한 경우에 다툼이 일어났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오히려 상대 차량에 고마워하면서 아버지도 그 차량을 향해 상향등을 켜서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경찰관들이 단속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맞은편 차량이 앞에서 단속하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죠. 어린 제가 보기에는 뭔가 어른들의 낭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어떤 낭만과 동업자 정신은 개인을 넘어서 사회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캐나다 출신 의사 프레더릭 그랜트 벤팅은 인슐린을 발견한 공로로 존 제임스 리카드 매클라우드와 함께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낭만 넘치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벤팅이 자신과 함께 연구한 조교 베스트가 공동 수상하지 못한 일에 화를 내면서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다는 일화입니다. 물론 캐나다 출신 첫 노벨상 수상을 기뻐하는 분위기 속에서 벤팅은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대신 상금의 절반을 조교 베스트에게 나눠줍니다. 동업자 정신이 보여준 낭만입니다. 그러나 진짜는 따로 있습니다. 당시에 당뇨병은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당뇨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벤팅은 당뇨병 환자들을 위해 단돈 1달러 50 센트라는 명목상의 금액만 받고 인슐린 정제 특허권을 토론토 대학에 기부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그 기술을 독점했다면 큰 부를 누릴 수도 있었지만, 벤팅은 수많은 생명을 위해 자신의 기술을 공유합니다. 고귀한 낭만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낭만의 추억이 있습니까? 무엇을 나누고 공유하십니까? 모든 일을 다 나누고 알려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투수가 이미 던진 공의 구질을 알려주면 낭만이지만, 투수가 아직 던지지 않은 공의 구질을 사인을 훔쳐서 알아내면 불법입니다. 며느리에게도 안 알려주는 양념장 비법 같은 나만의 경쟁력을 가지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경쟁자이기 전에 동업자입니다. 그리고 동업자 정신으로 함께 살아가면 더 낭만 넘치는 하루를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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