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아동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오늘의 나그네이다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 :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를 읽고

by 세미한 소리


미등록 이주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렸을 적에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왔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체류자격이 없는 아동을 말합니다.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책을 은유 작가가 썼는데, 제목이 “있지만 없는 아이들”입니다. 책 한 권의 내용을 아니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을 오롯이 담아내는 제목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미등록 이주아동의 "있음"을 잘 몰랐으니 그들은 제목처럼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과 상관없이 실제로는 2만 명이라는 많은 수의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 없지만 있는 아이들입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라서 미등록 이주아동들에게도 학습권이 주어져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고, 그 기간에는 추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되면 아이들은 자신이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혹은 어렸을 적에 아주 잠깐 살았던, 심지어 그 나라 언어를 알지도 못하고 보살펴 줄 사람도 거의 없는 나라로 쫓겨나게 됩니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 은유. p6-9)


"스무 살이 되면 강제로 내가 전혀 모르는 나라에 가야 한다는 사실, 그로 인한 극도의 불안감이 오히려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들더라고요."

(p41. 마리나. 이주아동)


"전에는 저희가 지나가면 길에서 이유 없이 화내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한 번은 엄마랑 제가 뭘 사고 계산을 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뜬금없이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한 적도 있어요."

(p178. 달이아. 이주아동)


“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으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이 질문을 한 사람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어요. 그럼 왜 당신은 한국에 살고 계시나요? 똑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사는 거죠.”

(p82. 페버. 이주아동)


“미등록 아동은 모든 법과 권리,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어요. 이 아이들은 계속 음지에서 성장을 하게 돼요... 미등록 아동의 부모까지 국적을 주자는 것도 아니고, 체류자격을 주자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평생을 살고 공교육을 받은 아이들을 여기서 살게 해 주자는 거예요.”

(p150. 석원정. 이주인권활동가)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한국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고도 해요. 그런데 여기만 해도 농사짓는 분들이 많은데 항상 일손이 부족해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와서 채워줘요. 농촌에는 여전히 일자리가 많거든요. 젊은 사람이 없을 뿐이지... 저희는 한국에서 평생을 생활하고 있잖아요. 태어난 건 죄가 없는데 왜 차별당하고 고통받고 꿈도 못 이루고 살아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돼요.”

(p163-4. 카림. 이주아동)


“한국에서 미등록 상태로 18년을 사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근 20년을 살고 있다는 것은 한국도 이 사람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인 거죠.”

(p91. 이탁건 변호사)


"사회에는 난민도 있고 일반인도 있고 외국인도 있어요. 누구라도 어떤 이유로 난민이 될 수 있어요. 저도 한국에 왔을 때는 그냥 외국인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난민이 된 경우예요. 난민이나 이주노동자들을 무조건 한국에 돈 벌러 온 사람, 우리의 일자리를 뺏으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이들도 그냥 사람이에요. 일자리를 뺏는 것도 아니죠. 취직을 할 수 있는 데가 정해져 있어요. 전문직이 아닌 단순노동이고, 한국인들이 잘 안 하는 일자리로 가야 해요."

(p127-8. 김민혁. 이주아동)


“아버지는 정신과 의사였어요. 몽골에서 좀 알아주는 사람이었죠... 러시아로 가서 화학을 전공했어요... 몽골에 있는 제약회사에 들어갔어요... 1994년에 IMF 외환위기까지 터지면서 제가 다니던 제약회사도 문을 닫았어요... 한국에 가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광고가 나오더라고요... 브로커가 한국사람이었는데... 다 속아서 미등록이 됐어요... 이혼하고 나니까 제가 혼자 벌어서 애들을 키워야 되잖아요. 몽골은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선택지는 또 한국밖에 없더라고요... 우리는 이렇게 숨어서 숨 쉬고 살아야 돼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상이 되세요? 아들이 비자 하나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걸 매일매일 지켜봤어요. 그렇게 장장 25년을 겪었어요. 호준이 한국에 데려온 것 정말 너무너무 후회해요. 이건 사는 것도 아니고 안 사는 것도 아니에요.”

(p196. 인화 이주아동 부모)


“애들 상황이 너무 힘든데 그걸 듣는 귀가 없어요. 아이들은 말할 힘이 약하고요. 듣는 귀라도 커야 그 작은 목소리가 들릴 텐데, 그렇지 못하니까 아이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전해보자, 그래서 썼어요.”

(p207. 이란주. 작가, 이주인권활동가)



책에서 은유 작가가 들려주는 이주아동, 이주아동의 부모이자 이주노동자,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활동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슬픔이 차오릅니다. 그때 문득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성경 개역개정. 신명기 10:1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하신 명령은 성경책에 여러 번 나옵니다. 여기서 나그네는 여행하기 위해 집을 떠난 자가 아니라, 집을 잃고 떠도는 난민이고 이주민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옳고, 정의롭고, 공동체에 이익이 되어 사랑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약하고 힘없고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만약 성경을 2022년 대한민국 상황에서 다시 쓰면, "너희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사랑하라 전에 너희 중 많이 이들도 미국 땅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이었음이니라"가 되지 않을까요?


있지만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사랑하는 일은 사실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건물을 만드는데 부품이 작고 보잘것없어 보인다고, 다른 부품과 다르게 생겼다고,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곳이나 잘 보이지 않는 내부에 쓰인다고, 그 부품을 사용하지 않고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실공사로 건물이 언젠가 무너질 것입니다. 아무리 작아도, 다르게 생겼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쓰여도 건물이 튼튼하게 서 있기 위해서는 모든 부품이 다 필요합니다. 있지만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들도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와 다르다고 해도, 그 수가 적어도, 있지만 없는 취급을 받는다고 해도, 대한민국이라는 건물이 튼튼하게 서 있기 위해서는 이 아이들 역시 꼭 필요합니다. 만약 그들을 쫓아내 버린다면, 대한민국은 부실공사로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행히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일시적이고 제한적이긴 하지만 2021년 4월에는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시행방안'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 중 만 명이 넘는 아동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나라로 쫓겨 갈 것을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나은 법이 제정되어, 부디 모든 아동들이 이 땅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성경 표준새번역. 출애굽기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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