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에서 ‘신더’를 빼면 ‘엘라’가 된다!

리베카 솔닛이 다시 쓴 신데렐라 이야기 ‘해방자 신데렐라’

by 세미한 소리

리베카 솔닛이 다시 쓴 신데렐라 이야기 ‘해방자 신데렐라’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옛날 옛적에 신데렐라라는 소녀가 살았어. 신데렐라(cinderella)라는 이름에는 이런 뜻이 있어. 장작이 거의 다 타서 꺼져 가는 깜부기불을 ‘신더’(cinder)라고 하거든. 신데렐라는 저택의 부엌 벽난롯가에서 잠을 잤는데, 그러다 보면 신더에서 불똥이 튀어 옷에 구멍이 나곤 했어. 옷이 낡고 너덜너덜해졌고 그래서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거야.



그토록 많이 들었던 신데렐라가 본명이 아니라니 충격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작 날라 온 깜부기불 따위가 진짜 이름을 빼앗고 숨겼다니 화도 납니다. 그리고 신데렐라처럼 밖에서 날라 온 깜부기불로 진짜 이름과 자기다움을 빼앗긴 이들이 현실 속에 너무나 많다는 것에 서글픕니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이름을 학교와 성적으로 대신하고, 회사와 연봉이 일하는 이들의 자기다움을 빼앗으며. 주변의 기대와 요구에 많은 마음과 이야기들이 가려집니다. 그리고 신데렐라를 덮친 깜부기불이 탐욕과 사치에 눈이 먼 새엄마를 위해 요리하던 부엌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어쩌면 오늘의 탐욕과 사치가 만들어 내는 돈, 성공, 풍요 따위도 깜부기불이 되어 우리를 덮칩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빼앗는 깜부기불은 무엇입니까? 그 깜부기불을 때어 버릴 때 우리는 진짜 이름과 자신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 신데렐라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제 신데렐라라는 이름은 쓰지 않는대. 이제는 불똥이 튀어 구멍이 나고 재가 묻은 드레스 차림이 아니니까. 그래서 이제는 다들 원래 이름으로 불러. 이렇게 ‘엘라’(ella)


이처럼 ‘해방자 신데렐라’는 신데렐라가 자신의 이름을 숨겨 버린 ‘신더’(깜부기불)에서 해방되어 ‘엘라’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예쁘지만 불쌍한 소녀가 왕자의 선택을 받아서 공주가 되는 이야기보다 훨씬 유익하지 않습니까?


의미는 좋아도 딱딱할 것 같다고요? 아닙니다. ‘해방자 신데렐라’는 웬만한 동화보다 더 아름답고 따뜻합니다. 무엇보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꽃인 파란 요정이 신데렐라에게 드레스와 마차, 구두 등을 마법으로 만들어 주는 이야기는 그대로 나옵니다. 다만 마법의 목적이 신데렐라를 왕자가 첫눈에 반할 정도로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요정은 신데렐라에게 마법의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가 자유롭고 가장 자기 다운 모습이 될 수 있게 돕는 것이 진짜 마법이야.


그래서 신데렐라는 아니 엘라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왕자와 결혼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대신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꿈인 케이크 가게를 차려서 여전히 낡은 누더기 옷을 입고 맛있는 케이크를 만듭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자유를 구속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도와주며 살아가지요.


이처럼 자기다움을 찾은 이들은 엘라뿐만이 아닙니다. 예쁜 옷에 관심이 많았던 의붓 언니 팔로마는 재봉사가 되고, 화장과 미용에 관심이 많았던 펄리타는 미용사가 됩니다. 궁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힘겨운 왕자는 농사일을 하면서 땀 흘려 일하는 기쁨을 얻고, 마법으로 말이 된 쥐들 중 한 마리는 새끼 쥐들이 기다린다며 다시 쥐가 되기로 결정하고, 마차꾼으로 변한 큰 쥐는 자기 새끼 쥐들은 다 자랐기 때문에 자신은 마차꾼으로 남아서 새로운 모험을 하겠다고 결정하지요. 이처럼 모두가 자기답게 살기 위한 선택을 하고, 바로 그 선택의 순간이 마법의 순간이 됩니다.



‘엘라’를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만들었던 ‘신더’는 엘라 바로 앞에 붙어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를 나답게 살지 못하게 만들고,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앞에 있겠지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용기를 내어 내려놓아 봅시다. 자유와 나다움을 선물하는 마법의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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