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짧고 배가 나와서 포옹이 어색한 펭귄처럼

해시태그 문학선 #생태_시를 읽고 내 팔이 짧고 배가 나왔음을 알게 되다

by 세미한 소리


환경에 관한 책을 구입하기 위해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해시태그 문학선 #생태_시”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평소에 시는 잘 읽지 않는 편이었는데, 웬일인지 그날은 그 시집이 제 마음에 쏙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환경 전문가들의 옳지만 부담스럽고, 맞지만 딱딱한 글에 지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생각하고, 경험이 선택하기 전에, 마음이 재빠르게 먼저 책을 고른 거죠.


마음이 선택한 책이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시"가 가진 고유의 힘 때문이었을까요? 머리로만 고민했던 환경 문제들이 하나 둘 가슴으로 내려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렇다고 시가 전하는 환경 이야기가 감성적이고 추상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며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시구로 읽는 이들을 잡아 놓은 다음에, 그 어떤 책과 소논문보다 크고 날카로운 소리로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정희성, 숲, 1978)


정희성 시인의 시 '숲'은 환경문제의 근본적인 이유가 사람들이 다른 생명들과 더불어 숲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임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최승호 시인은 사람들이 숲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주는데, 팔이 짧고 배가 너무 나왔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이기심도 있다고 본다
공동체의 이기심 속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이기심도 있다고 본다
펭귄들의 포옹이 어색한 것은 팔이 짧고 배가 너무 나왔기 때문이다
세상도 팔이 짧고 배가 너무 나왔다 나도 그렇다
남극 눈보라 속에 손을 잡지 않는 펭귄 공동체가 있다
저마다 홀로 서는 펭귄 공동체
뿔뿔이 흩어진 채 모여 사는 펭귄 공동체

(최승호, 손을 잡지 않는 펭귄 공동체, 2018)


만약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이 이 시를 읽으면 억울해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팔이 짧고 배가 나와서 포옹은 하지는 못할지라도, 다른 방법으로 더불어 숲을 이루며 살기 때문입니다. 황제펭귄은 영하 30도가 넘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 둥그렇게 모여 한쪽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입니다. 이때 바깥쪽에 있던 펭귄들의 체온이 떨어지면 안에서 몸을 녹인 펭귄이 다시 밖으로 나가고, 밖에 있던 펭귄은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를 ‘허들링’이라고 부르는데, 펭귄들은 포옹 대신 허들링으로 혹한의 남극에서도 자신들의 아름다운 숲을 만듭니다.


이에 반해 사람들은 충분히 서로를 안을 수 있는 긴 팔을 가졌음에도 다른 생명을 품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만, 내 가족만, 우리나라만, 내 종교만, 인간들만, 내 반려동물만 잘 살면 된다는 마음과 생각의 짧은 팔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황제펭귄과 달리 사람들은 안정적이고 포근한 자신의 자리를 경계 밖 추운 현실에서 떨고 있는 불쌍한 이들과 함께 나누려고 하지 않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이라는 못생긴 뱃살이 축 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가 아니라 제가 그렇습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제 팔이 참 짧고, 제 배가 참 많이 나왔다는 것을 부끄럽게 깨닫습니다. 다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마음과 생각의 팔은 펭귄의 마음처럼 넉넉하게 늘리고, 못난 뱃살은 다이어트를 해서 나무처럼 멋지게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러면 나무처럼 우리도 더불어 숲을 이룰 수 있겠지요. 그때에는 펭귄처럼 어려운 현실을 함께 이겨낼 수 있겠지요.




*사진 출처 : 주간동아(구글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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