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프로이드의 "쾌락 원칙을 넘어서"(Jenseits des Lustprinzips)에 나오는 짚신벌레 이야기는 신기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미국 학자 우드러프는 분열에 의해서 두 개의 개체로 재생되는 단세포 생물 짚신벌레를 배양하는 실험을 했는데, 무려 3029번째 세대까지 배양에 성공합니다. 우드러프는 이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짚신벌레가 자신의 신진대사 노폐물에 의해서 상처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만약 짚신벌레를 자신의 노폐물이 가득한 곳에 그냥 두면 결국에는 배양을 이어가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신기한 것은 짚신벌레가 그들과 관계가 먼 종의 신진대사 노폐물 안에서는 상처받지 않고 배양을 이어가며 번성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홀로 있는 짚신벌레는 자신의 노폐물에 의해서 죽게 되고, 다른 종과 함께 있는 짚신벌레는 계속 살 수 있는 것이죠.(참고: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쾌락 원칙을 넘어서" p321~323. 열린책들)
짚신벌레의 신기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번에는 프로이드의 글을 직접 소개하겠습니다. “만약 두 마리의 짚신벌레가 노쇠의 징후를 보이기 전에 접합, 혹은 <교미> 할 수 있다면 (그 직후 그들은 다시 한번 분리된다), 그들은 늙는 일로부터 구원받고 <도로 젊어지게> 된다.”(위의 책. p322) 두 마리의 짚신벌레가 서로 접합했다가 분리되기만 해도 다시 젊어진다니 놀랍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위의 이야기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함께 있는 짚신벌레는 서로와 접합하여 젊음과 새 힘을 얻을 수 있지만, 혼자 있는 짚신벌레는 젊어질 수 없고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이죠.
짚신벌레 이야기를 읽으면서 ‘만약 사람도 이렇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사람이 진심을 다해 서로 안아줄 때, 실제로 젊어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가족끼리, 연인끼리, 이웃끼리 서로 안아주며 오래오래 사이좋게 살아갈까요? 아니면 내가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너랑은 못 안겠다고 하며 떠날까요? 또 다른 상상도 해봅니다. 짚신벌레가 자신의 신진대사 노폐물에 상처를 받지만, 다른 종의 노폐물에서는 살 수 있는 것처럼, 만약 사람이 자신이 하는 말, 표정, 몸짓, 행동에는 상처를 받지만, 다른 사람이 그것을 대신 처리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상대방이 쏟아내는 것들을 감당하며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살아갈까요? 아니면 상대방이 쏟아내는 것을 못 견디고 도망칠까요? 우리가 못 견디고 안기 싫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반대로 함께 하며 안아 주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다정한 사람! 다정한 사람과 서로 안으며 함께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다정한 사람에게 자신의 약하고 불편한 것을 내어 맡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정한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정한 사람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디플롯)라는 책 제목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책은 소개란에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개는 개체 수가 늘어만 가는데, 늑대는 왜 멸종 위기에 처한 걸까?" 여러분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늑대처럼 사납지는 않습니까? 서로 안아 준다고 젊어지지는 않지만, 서로 안아 주고 살아갈 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서로 안아 줄 만큼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로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노폐물로 인하여 상처받고, 곤경에 처하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내가 한 말과 행동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내 안에 가득한 화와 슬픔, 불안과 욕심 때문에 아프고 괴로운 적은 또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그 누구도 이런 상처를 혼자서 다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함께 하면서 서로의 상처와 약함을 보살피고 서로 보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상대방의 약함과 노폐물을 처리해주고, 상대방이 내 노폐물을 처리해 주는 것이죠. 노폐물을 처리하라니 불편한가요? 그러니 지금보다 다정해야겠지요. 다정하다면 얼마든지 서로의 불편함과 약함을 주고받으면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 모두 조금만 더 다정해집시다. 그래서 살아남읍시다. 살아남아서 행복합시다.